고금리·‘주담대 조이기’에도 가계대출 급증, 왜?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3-10-23 17:06:00
고물가·고금리에 가계소득 줄어…“생활비 마련 목적 대출 많아”
40대 주부 A 씨는 이자 부담이 늘어난 데다 물가까지 치솟아 살림살이가 무척 힘들어졌다.
아껴 써도 적자가 나자 결국 은행에서 생활안정자금 1000만 원을 빌렸다. 주택 담보에도 금리는 연 5%에 달했다. A 씨는 “빚이 늘어 이자부담이 무겁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취급 제한 등 정부와 금융당국이 대출을 조이고 있음에도 이달 들어 가계대출 증가세는 오히려 더 가팔라졌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총 685조7321억 원으로 전달 말(682조3294억 원) 대비 3조4027억 원 늘었다. 9월 전체 증가폭(1조5174억 원)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대출은 월말에 많이 몰린다”며 “10월 말까지 전부 집계할 경우 9월 증가폭의 3배에 육박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10월 들어 19일까지 5대 은행 주담대는 2조6814억 원, 신용대출은 8871억 원 증가했다. 지난 2021년 12월부터 22개월 연속 감소세를 그리던 신용대출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대출받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조이기와 금리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기준 5대 은행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연 4.55~7.14%로 일주일 전인 지난 16일(연 4.17~7.14%)과 비교해 상단은 같지만, 하단이 0.38%포인트 뛰었다. 같은 기간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4.14~6.56%에서 연 4.14~6.73%포인트로 상단이 0.16%포인트 올랐다. 전세대출 금리(연 4.06~6.83%)와 신용대출 금리(연 4.61~6.61%)도 7% 선에 가까워지고 있다.
고금리를 감수하면서 돈을 빌려 집을 사려하기 때문일까. 그렇지도 않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까지 10월 서울 아파트 매매 신고 건수는 총 521건에 불과했다. 지난 9월 1일~21일 신고된 1006건, 8월 1일~22일 신고된 861건과 비교해 반토막 수준이다.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월(3845건)이나 9월(3269건) 수준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주담대 가운데 생활안정자금 목적 대출이 부쩍 늘었다”며 “신용대출 역시 생활비를 마련하려는 수요 영향으로 증가한 듯 싶다”고 진단했다. 먹고 살기 어렵다보니 높은 이자부담을 감수하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리는 것이다.
고금리 기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면서 이자부담은 무겁다. 물가는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
3분기 가공식품 가격은 전년동기 대비 6.3%, 외식물가는 5.4% 올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최근 소금 가격은 50% 넘게 폭등했고 쌀값도 30% 가까이 올랐다. 사과, 배 등 과일 가격도 치솟아 ‘金과일’로 불린다.
소위 ‘먹거리 물가’가 급등하니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소득은 거꾸로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479만3000원에 그쳐 전년동비(483만1000원) 대비 0.8% 감소했다. 2021년 2분기(-0.7%) 이후 8분기 만의 감소세 전환이다.
가처분소득 감소폭은 더 크다. 가계 처분가능소득은 같은 기간 394만3000원에서 383만1000원으로 2.8% 줄었다. 17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처분가능소득은 평균 소득에서 세금·보험료·이자비용 등 고정비용을 뺀 값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을 나타낸다.
가처분소득 급감은 고금리 때문으로 여겨진다. 2분기 가계 월 평균 이자비용은13만1000원으로 전년동기보다 42.4% 급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물가는 높은데, 가계가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빚에 의존하는 흐름”이라며 “빚이 늘면서 이자비용이 증가해 가계 살림이 더 쪼그라드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40대 직장인 B 씨는 “누가 연 5~6% 고금리를 부담하면서 대출을 받고 싶겠느냐”며 “다른 방법이 없으니 돈을 빌리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대출을 조인다고 해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은행에서 밀려난 차주가 제2금융권으로, 제2금융권에서 밀려난 차주는 대부업체나 개인 사채에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염려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