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수렁 빠진 트럼프發 '무역전쟁'…정부, 협상 서두를 필요 없다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5-07-14 17:32:15
"모든 나라가 같은 처지라면 한국 상황 나쁘지 않아"
외교의 기본은 신뢰다. 협상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 것이다. 전쟁은 아군을 늘리고 적을 고립시켜야 이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로 시작한 '무역전쟁'에서 이런 원칙들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
베트남은 대미 관세를 0%로 낮춰 시장을 완전개방하는 파격적인 수를 뒀다. 미국 협상단은 호의적으로 반응해 양측이 상호 관세율 11% 정도로 합의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베트남에 상호 관세율 20%를, 환적화물에는 따로 40%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국가 간 신뢰를 저버린 행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때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PI) 부소장은 "협상이 타결됐다고 생각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서서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으로 불확실성을 키웠다"고 꼬집었다.
일본은 미국 현지에 자동차 공장을 증설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산 쇠고기와 낙농품 등 축산물 수입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캐나다는 미국 테크기업을 상대로 한 '디지털세'를 철회하겠다고 양보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25%, 캐나다에 35% 상호 관세를 물렸다. 연초 제시한 수치보다 오히려 각각 1%포인트, 10%포인트 올렸다. 상대가 양보해도 대가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견제를 내세웠지만 정작 공조가 필요한 동맹국들을 무척 괴롭히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과 멕시코에 30%, 브라질에 50% 등 무차별적으로 관세 폭탄을 투하 중이다.
상호 관세와 별도로 품목별 관세도 난사하고 있다. 이미 자동차와 관련 부품에 25%, 철강·알루미늄에 50%의 품목별 관세가 시행되고 있다. 다음달 1일부터는 구리에 50% 관세를 매길 계획이다. 반도체와 의약품에도 고율 관세가 예정돼 있다.
사실상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치르며 미국은 스스로 고립됐다. 중국을 막기는커녕 되레 힘을 보태주는 형국이다.
미국과 협상을 잘 마무리한 나라는 대미 무역적자국인 영국(상호 관세율 10%)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거두는 나라는 '죽을 죄'라도 저지른 듯이 여기는 고압적 태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과감하게 자국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유일한 패권국으로 우뚝 서고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음은 전혀 모르는 듯하다. 대신 케케묵은 중상주의의 환영만 쫓고 있다.
이제 누구도 미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거나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신뢰를 저버림에 따라 무역전쟁은 수렁에 빠졌다. 무엇보다 고관세는 세계 각국뿐 아니라 미국도 짓누르고 있다.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가 침체되면서 물가도 상승하는 현상)에 처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를 까닭이 없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 겹쳐 미국과 제대로 협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상호 관세율은 25%로 다른 나라들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낮은 편이다. 지 연구위원은 "모든 나라가 비슷한 관세를 부과받고 있으니 한국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어차피 트럼프 대통령은 말바꾸기를 밥 먹듯이 하고 양보해도 관세율을 낮춰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쌀 시장 개방, 디지털 규제 완화 등을 내밀면서 애걸할 이유가 없다.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미국이 먼저 물러설 때까지 기다릴 시기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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