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조재현 그리고 장자연

홍종선

| 2018-08-08 16:40:05

[홍종선의 프리즘] PD수첩, '거장의 민낯, 그 후' 방송에 여론 분기탱천 ▲ 5개월 만에 김기덕, 조재현의 성폭력 혐의를 재차 고발하는 후속편이 방송됐다. [MBC 화면 캡처]


연예계에 민감한 사건이 터지면 익명 보도가 동반된다. 장자연 리스트 속 인물들도 처음엔 익명이었고 김기덕과 조재현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름도 그렇다.

우리는 그 아방궁을 출입했다던 A, B, C씨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하고 K, E, F 성을 가진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진실에 보다 근접하고자 하는 면이 크지만 반드시 구분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전자는 가해자이고 후자는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현재 다수의 배우 혹은 배우지망생, 현장 스태프가 성폭행 또는 성추행 혐의를 주장하고 있는 김기덕은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은, 이름 없는 미투가 문제”라고 볼멘소리를 내면서 “검찰이 그 실체를 밝혀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성폭력 주장 여성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지 오래다. 지난 3월 MBC PD수첩이 처음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을 방송했을 때 숨을 죽였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조재현도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사회 전반에 확산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됐을 때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대학교 교수직 등 맡고 있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며 머리를 숙였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에서 화장실 성폭행을 주장한 일본인 배우 F씨를 상습공갈 및 공갈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밟힘이 있으면 일어섬이 있다 했던가. 지난 3월 방송분까지만 해도 소수 피해 여성들의 피해 사실을 깊숙이 다뤘다. 이에 대해 김기덕, 조재현이 “성폭행은 없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이구동성으로 강력하게 부인하자 보다 많은 피해자, 피해자의 지인들, 영화에 참여했던 스태프가 카메라 앞으로 나섰다. 입에 담기조차 안타깝고 참혹한 피해 사실 주장 내용들은 7일 방송된 PD수첩의 후속편 ‘거장의 민낯, 그 후’에 담겼다. 제2, 제3의 장자연, 숱한 피해자들의 상처가 여러 증언들의 사이에서 얼비췄다.

“무자비한 방송, 예의 없는 배우들”이라며 꾸짖던 김기덕은 마음대로 방송하면 자신 역시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조재현의 대응은 더욱 적극적이다. 3월에 방송된 내용은 “80%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조재현의 반박에 F씨와 흡사하게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일반인 H씨가 7일 방송된 후속편에 나와 매우 구체적으로 피해 사실을 고백했지만 조재현 측은 바로 다음날인 8일 “일방적 주장이며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해서 성폭행과 성폭행 미수를 부인했다.

지난 3월 공신력 있는 언론이 감독 김기덕과 배우 조재현에게 제기된 성폭력 의혹을 세상에 알렸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경찰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이고 피해자 협조가 쉽지 않은 사건이라는 게 경찰의 해명이다. 그 사이 두 사람은 되레 고소의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8월, 동일 탐사보도프로그램은 다시 한 번 더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대중은 청와대 게시판에 김기덕과 조재현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 촉구 때와 같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익명 보도. ‘거장의 민낯, 그 후’ 편에서도 무게감 있게 다뤄졌지만 지난 3월 방송분에서 용기 내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렸던 여성들은 현재 2차 피해를 받고 있다. 김기덕과 조재현의 고소에 다시금 약을 복용하고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직까지 신원 보호가 잘되고 있음에도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보태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끝까지 피해자에 대한 익명 보도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다.

정히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길 바란다면 김기덕 조재현에게 당했던 여성들의 실명이나 적나라한 피해 사실보다는, 배우 장자연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들’의 실체와 추악한 행동을 끝까지 추적하자. 더 이상 장자연리스트 관련 인사들과 김기덕 조재현을 비롯해 숱한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적반하장 큰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우리는 피해자가 겪은 잔혹한 현실만 전 국민이 공유하다 가해자가 어떻게 처벌되었는지는 잘 알지도 못 하는, 실제로 잘 처벌되지도 않는 듯한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가.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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