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친환경' 그린워싱, 대법원도 규제 나섰다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4-09-24 16:53:00
법제도, 정책적 시사점 도출 목표
국내외 그린워싱 제재, 소송 잇따라
'그린워싱'(Greenwashing)으로 불리는 기업들의 가짜 친환경 표방에 대해 대법원이 나서 법적 규제 방안을 모색한다.
24일 국가종합조달시스템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최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그린워싱 소송의 현황과 과제' 연구 용역을 공고했다.
법원행정처는 "광고와 제품 표시 등에 친환경, 100% 유기농, 저탄소, 자연, 에코, 천연 등과 같은 용어가 종종 사용되지만, 그 사용이 과도하거나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 소비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발생한다"면서 "국내 소송 및 입법 실무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를 통해 법제도와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하려 한다는 취지다.
그린워싱을 직접적으로 제재하는 법률이 없어 표시광고법이나 환경기술산업지원법의 고시 등에 근거하고 있으며, 통일된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 공시 규정이 없어 기업 책임의 입증이나 판단 기준 설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우선 그린워싱이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고 보고 법적인 개념을 명확히 하려 한다. 형법상 사기죄와 표시광고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등 유관 법제와의 연결성을 살펴 그린워싱 개념과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정리한다.
특히 '환경성'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지가 과제다. 예를 들어 환경기술산업지원법에서는 '제조·소비·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오염물질이나 온실가스 등을 배출하는 정도 및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정도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술 인증의 맥락이어서 일반 소비자의 오인을 가져오는 기준과는 다르다는 게 법원행정처의 설명이다.
표시광고법은 사실에 관한 실증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친환경' 등을 표시한 기업이 그 원료, 공정 등을 어느 정도까지 공개해 입증 책임을 부담하는지, '친환경'을 어느 정도까지 가치 개념이 아닌 사실 개념으로 포섭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를 통해 정립하려 한다.
법원행정처는 "향후 그린워싱에 관한 국내외 법률 및 규제가 정비됨에 따라 제기될 수 있는 소송에 대비해 관련 쟁점 및 판단의 고려요소 등을 사전에 정리해 소송 및 입법 실무를 뒷받침할 필요가 크다"고 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기업들에게 그린워싱은 주된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다. 환경부는 포스코의 탄소중립 브랜드 '그리닛'(Greenate) 광고가 탄소 저감 효과를 과장했다며 지난 6월 시정 행정지도를 내렸다. 지난해 10월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첫 판단 사례였다.
그리닛을 신고했던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지난 3월에도 포스코와 SK 계열사 8곳을 표시광고법 및 환경기술산업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신고했다. 이들 기업은 전기요금 외에 추가로 납부하고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을 확인 받는 '그린프리미엄' 제도로 온실가스 감축 홍보를 해왔다. 하지만 기후솔루션은 발전사업자가 감축하는 실적과 중복되기 때문에 부당한 광고라는 주장이다. SK엔무브는 '탄소중립 윤활유' 광고가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거짓·과장 환경성 표시·광고'라는 판단을 받아 행정지도를 받은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환경단체들이 환경부의 '청정수소 인증 제도'를 그린워싱으로 보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화석연료 기반으로 생산한 블루수소를 '청정'으로 분류했다는 이유였다.
해외에서는 그린워싱 소송이 빈발하고 있다. 런던정경대(LSE) '기후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2년 전 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81건의 그린워싱 소송이 제기됐다. 도이체방크 자산운용 자회사인 DWS는 'ESG 투자 선도기업'이라고 홍보하면서 ESG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등 이유로 지난해 340억 원의 벌금을 냈다. 오스트리아항공은 실제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량이 낮은데도 '탄소중립 비행에 함께 하자'고 광고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석유 기업 엑슨모빌을 상대로 그린워싱 소송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스틱 재활용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데도 이를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해왔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의 그린워싱 인식 수준은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린워싱 기준에 대해 '잘 몰랐다'는 응답이 45%에 이르렀다. 또 응답 기업의 36%는 자사의 그린워싱 대응 수준에 대해 '낮다'고, 8%는 '매우 낮다'고 했다. 관련 규정인 환경부 고시와 공정위 심사지침에 대해 '둘 다 모른다'는 응답이 57%에 달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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