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제③] '고환율 구조'와 고투…"경제 체력은 탄탄"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12-22 17:56:19
해외 증권 투자, 과거 10년 평균보다 2배 급증
기업도 환전하지 않고 달러 보유 경향 강해져
증시 밸류업이 근본 해법…"건전성 우량, 원화 뒷받침"
환율은 화폐의 '상대적 시장 가격'이다. 한국 경제와 외환 수급 상황, 그리고 다양한 외부 변수들에 의해 결정된다. 정부가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개입할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우려가 있다.
최근 고환율 상황은 구조적 요인들이 야기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그런 만큼 구조적 변화가 근본적 해결책이다. 제한된 수단을 써서는 당국으로서도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다만 경제 체력 면에서 감당할만 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환율은 달러 가치에 연동되는 흐름이 뚜렷했다. 22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원·달러 환율과 달러화 지수 간 상관계수는 0.96에 달했다.
당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양적완화에 이어 가파른 금리 인상을 시행했던 시기였는데, 상관계수가 '완전한 일치'를 의미하는 1에 근접했던 것이다. 달러화 지수는 유로화 등 선진 6개 통화에 대한 평균적 가치를 나타낸다.
한은 "9~11월 환율 상승 폭 3분의 2가 국내 요인"
하지만 2023년 8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년간 상관계수는 0.60으로 하락했다. 달러화 안정세에도 원화 환율은 상승 흐름을 지속했다. 달러 가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디커플링'(비동조화)이 이미 2년여 전부터 진행돼 온 셈이다.
따라서 수급 상황을 토대로 한 진단에 힘이 실린다. 한국은행은 최근 블로그를 통해 시중 유동성과 고환율의 상관관계를 반박하며 "거주자의 해외 증권 투자 확대, 수출 기업의 외화 보유 성향 강화 등 외환 수급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 간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미국이 최근 3% 수준으로 높아져 양국 간 격차가 오히려 확대된 점 등을 고려할 때 물가 및 유동성 경로가 의미있는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반면 해외 증권 투자 규모는 올해 1~10월 1171억 달러로 과거 10년 1~10월 평균 512억 달러의 2배 규모에 이르렀다. 직전 최고치였던 지난해 1~10월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한국은행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국내 수출 기업들이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외화로 보유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또한 외환수급 불균형을 확대시켰다"고 설명했다.
실증분석 결과 지난 석달(9~11월)의 원·달러 환율 상승 폭(65원) 중 3분의 2가량이 외환 수급 등 국내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한국은행은 추정했다. 엔화를 비롯한 해외 주요 화폐들에 비해 원화 환율이 더 많이 오른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미 투자 압박은 빼놓을 수 없는 고환율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연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계획으로 인해 외환건전성 우려가 확대되며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주식 등 위험자산 가격 고평가 논란과 함께 안전자산 수요 확대가 최근 달러화의 추가적인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며 원화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달러의 공급 주체인 기업이 최근에는 증가하는 해외 투자 수요 때문에 원화로 환전하지 않은 채 들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한미 간 협상을 통한 향후 투자도 있기 때문에 '달러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많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화 보유 확대책…증시 밸류업 근본 대책
당국은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금융기관이 외화를 빌려오는데 따른 부담을 줄여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에도 3개월간 한시적 면제 조치를 한 적이 있다. 처음으로 외화 지급준비금에 이자도 지급키로 했다. 이 역시 금융기관들이 외화를 보유할 유인을 높여주는 것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지난 18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출연 영상에서 "현재 환율은 수급상 수요가 많아 형성된 결과"라며 "왜 자금이 해외로 나가는지를 이해하고 구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 주식시장의 매력도를 높이는 것이 근본적 해법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구 부총리는 벤처기업과 산업을 육성하고 주식 장기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주주 이익 보호 조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받으며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이 외환 시장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 하락 전망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한국은 대미 투자와 더불어 거대한 금융 자본 유출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며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보다 자본수지 적자로 나가는 달러가 더 많거나 대등한 상황이 고착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내년 환율을 1380~1460원으로 제시했다. 그는 "올해 하반기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최종 확정된 뒤 내년부터는 글로벌 패시브(Passive) 자금의 기계적 추종 매매가 본격화되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수를 100% 추종해야 하는 거대 패시브 펀드(연기금, 국부펀드 등)는 내년부터 매월 일정 비율로 한국 국채를 의무적으로 매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월 수조 원 규모의 환헤지를 동반하지 않는 원화 매수 수요를 창출해 외환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상수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환율발 금융위기론은 기우…채무보다 채권 많고 외환보유 세계 9위
하 연구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과도 내년에 수치로 확인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부 세법 개정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배당 소득세 부담이 완화될 경우 원화 자산 비중 확대를 위한 환전 수요를 자극하는 강력한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고환율로 인한 금융 위기 가능성까지 우려하지만 객관적 지표를 보면 기우에 가깝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대외채권은 1조1199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271억 달러 증가했다.
반면 대외채무는 7381억 달러에 그쳤다. 대외채권에서 대외채무를 뺀 순대외채권은 3818억 달러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말 순대외채권 -638억 달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건전성이 확보돼 있는 셈이다. 또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6개월 연속 증가해 4306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다.
국내외 전문기관들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2% 안팎으로 보고 있으며 고환율이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역내 거시경제조사기구(AMRO·암로)는 지난 19일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1.0%, 내년 1.9%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 허 암로 수석경제학자는 고환율에 대해 "국내 투자자의 미국을 비롯한 해외 증시에 투자 관심이 늘고 확대된 것이 요인"이라며 "한국은행이 운용하는 프레임워크 틀 내에서 어느 정도의 환율 변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폭이 GDP 대비 6% 수준으로 대외 건전성이 상당히 우량한 상황이기 때문에 원화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기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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