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삼성의 위기, '미취업자' 이재용의 책임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4-10-11 17:16:39

국정농단 유죄로 취업제한, 미등기 유지
AI 반도체 패권 경쟁때 불법승계 재판 점철
2019년 HBM 속도 조절, 뼈아픈 실기

"대한민국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 깔려 있잖아요. PC만 켜면 언제든 할 수 있는데, 굳이 휴대폰으로까지 인터넷을 하려 할까요."

 

2000년대 말 당시 LG 계열사 관계자가 기자와 한 대화 중 한 대목이다. 지금은 잊혀져가는 '싸이언'으로 LG전자가 세계 3위 휴대폰 명가일 때였다. 애플의 아이폰 돌풍에도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미온적이었다. 뒤늦게 대규모 투자를 해가며 뒤따라가려 했으나 실기(失期)를 만회하지 못했다. 결국 2021년 휴대폰 사업에서 완전 철수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 의혹'에 대한 첫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다시 '실기'가 회자되고 있다. 이번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부진한 실적을 내놓은 지난 8일 "송구하다"며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근원적 경쟁력', 즉 AI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뒤처졌음을 자인한 것이다. 

 

삼성전자 같은 초거대 기업에서 무엇이 실기로 이어졌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사결정 주체인 리더십 측면에서 드러나는 허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재용 회장이 최고 결정권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는 법적으로 '미취업자'다.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해 최서원씨에게 86억 원가량의 뇌물을 전달한 혐의로 2021년 1월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7개월만에 가석방됐지만 5년간 취업제한 규정에 걸렸다. 그럼에도 미등기 무보수로 경영에 복귀했다. 

 

미등기 임원은 권한만 있고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정점이 '책임 경영'에서 비켜서 있는 셈이다. 

 

HBM에 일찍 뛰어든 건 SK하이닉스였으나 삼성전자는 2015년 HBM 2세대 제품을 먼저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가장 뼈아픈 시점이 2019년이다. HBM 개발 부서의 인력을 축소하며 속도를 늦췄다. 당시만 해도 가격은 비싼데 수요는 많지 않다보니 성장 잠재력을 간과했다는 평가가 많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에서야 HBM 개발팀을 신설하며 힘을 실었다. 

 

과거 반도체 부문장의 책임을 지적하는 의견도 적잖다. 하지만 궁극적 책임은 이 회장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AI 반도체의 태동부터 지금까지 치열한 패권 경쟁이 진행된 시간은, 삼성의 불법 승계 의혹 파문의 시간과 겹쳐진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엘리엇을 비롯한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발과 소송,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등이 이어졌다. 급기야 국정농단의 핵심 연루 사건으로 이 회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사법 리스크'는 자초한 일이다. 대법원은 2019년 8월 파기환송심에서 "(이 회장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그룹 차원에서 조직으로 승계 작업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두 차례 단독 면담에서 '좋은 말을 사줘라'는 요구를 받았고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승마 지원을 진행하였다"고 했다. 

 

'오너 리스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 대표 기업에서 빚어졌다는 점이 안타까운 일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속의 기로에 서서 재판을 받는데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각 파트별 책임자들의 의견에 따라갔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금도 삼성물산 합병 과정의 불법성을 따지는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내년 1월 선고 예정인데, 여러 정황상 1심처럼 무죄를 장담하기 어렵다. 유죄가 내려지면 최고 의사결정권자 책임뿐 아니라 권한조차 다시 공백 상태가 된다. 

 

물론 삼성전자 저력을 감안하면 다시 최고 자리로 복귀할 것이란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삼성의 약한 고리, 승계를 둘러싼 각종 불법 의혹이 '근원적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3세 경영의 불안도 오버랩된다. 기술뿐 아니라 지배구조 면에서도 '근원적 경쟁력'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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