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출신 감사, '개미' 보호장치 유명무실…지배구조 메스 대는 이유들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4-10-02 17:25:40

상장사 감사 20%, 6년 초과 장기 재직
내부 이사 출신, 횡령·배임에도 무풍지대
집중투표제 도입은 공기업 위주 미미

국내 상장사 감사 5명 중 1명꼴로 6년을 넘어 장기 재직하고 있으며 많게는 30년 넘은 '고인 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내부 이사를 지냈거나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해도 바뀌지 않는 등 감사의 견제 역할에 의문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소액주주를 위한 대표적 장치인 집중투표제 도입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배경이다.

 

2일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감사를 선임하고 있는 1584개(코스피 324개사, 코스닥 1260개사) 상장사의 감사 1630명 중 6년 초과 재직이 342명으로 21.0%를 차지했다. 코스피가 22.6%로 코스닥(20.5%)에 비해 소폭 높다. 평균 재직 기간은 4.07년이다. 코스피는 4.48년, 코스닥 3.96년으로 조사됐다. 

 

▲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뉴시스]

 

장기 재직 감사가 있는 기업 337곳 중 6~10년이 204곳으로 63%가량이었다. 10년 넘게 감사가 바뀌지 않은 기업도 120곳에 달했다. 24개 기업의 감사는 20년 초과 재직인데 이 중 1곳은 30년을 넘길 정도였다.

 

'거수기' 지적을 받아온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2020년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6년으로 임기를 제한한 바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감사의 장기 재직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6년 초과 장기 재직 감사 중 같은 회사의 등기이사로 재직했던 이력이 확인된 사례도 16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18년 이상 감사로 재직 중인 경우도 있었다. ESG기준원은 "독립적 위치에서 경영진을 견제하고 내부 감사를 수행하는 감사의 책무를 고려했을 때 독립성 훼손이 우려된다"며 "경영진 간 친밀도 형성 및 유착 관계로 인해 내부감사시스템이 독립적 위치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짚었다. 

 

친인척 등이 장기 재직 감사로 있는 사례도 있다. 상법상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 범위를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까지 넓게 정하고 있으나, 상근감사는 '주요 주주 및 그의 배우자와 직계 존속 비속'으로 좁게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장기 재직 감사가 있는 기업 중에는 횡령이나 배임 사건 발생, 외부감사인의 한정, 의견거절 등 적정 외 감사의견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한 코스피 기업의 경우 감사가 2014년 3월 임기를 시작했고, 이듬해 부회장의 횡령 혐의 유죄가 확정됐으나 10년 넘게 감사 자리는 유지됐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단순투표제와 달리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를 3명 뽑는다면 100주를 가진 주주가 300표를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상법상 3%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청구할 수 있으나 회사가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다보니 실제 채택 비율이 극히 낮은 게 현실이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올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하고 핵심지표 준수 현황을 첨부한 코스피 상장사 169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집중투표제 채택 기업은 포스코홀딩스,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 포함된 9곳(5.3%)에 불과했다. 15개 핵심지표 준수율이 63.5%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통과를 공언한 기업 지배구조 개혁법에는 집중투표제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8월 민주당 오기형,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공동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 청구 시 정관으로도 배제할 수 없도록 하고, 새로 정관 변경을 하려 하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합산 3% 초과 지분 의결권을 제한토록 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는 3년만에 내놓은 지난해 기준 평가에서 한국을 12개국 중 8위로 선정한 바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잭키 웡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칼럼에서 한국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수익률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삼성, 현대 등 재벌의 힘이 주가 상승을 제한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는 지배구조 순위와 주가 상승률의 상관관계가 불분명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일 '아시아 각국 지배구조와 주가지수 상관관계 연구'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시점인 2020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5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아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지배구조 규제가 밸류업의 핵심이자 만능열쇠로 여겨지며 각종 법안이 우후죽순처럼 발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규제만 강하게 도입하면 외국 기업과 자본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거나 상장할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지고, 국내 시장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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