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에만 기댄 K-반도체, 호황 이후 준비하고 있나
김윤경 IT전문기자
yoon@kpinews.kr | 2026-01-07 18:00:29
지나친 의존은 위험…호황 이후 전략 필요
거세지는 패권 경쟁…韓 HBM 독주 위협
"메모리 경쟁력 높이되 선택과 집중 필요"
K-반도체가 '영업이익 200조 원 시대'를 예고하며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다. AI(인공지능) 투자 확대와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증가로 반도체 실적이 크게 개선된 덕이다. 다수 빅테크 기업들이 주문형 반도체(ASIC) 개발에 나서며 HBM 인기는 더 높아진 상황. 올해도 HBM 수요는 공급을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HBM 돌풍이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HBM에만 의존하면 차기 대응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호황 국면 이후'를 내다보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HBM 의존 '리스크'의 주된 이유는 국가간 반도체 패권 경쟁에 있다. 경쟁국들이 AI 반도체를 핵심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면서 한국의 'HBM 독주'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급망 내재화를 위해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한 자국내 제조시설 유치를 진행 중이다. 인텔과 마이크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가 첨단공정에 대한 대미 투자를 이미 약속했다.
HBM 시장에서는 마이크론의 추격이 거센 상황. 마이크론은 '미국 내 생산' 이점을 내세워 엔비디아와 빅테크 기업들을 집중 공략 중이다. 설비 투자에만 올해 200억 달러(약 29조 원)를 투입하고 HBM4 생산 라인도 대폭 증설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무기로 '반도체 강국' 부활을 꿈꾸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총력 태세다. 대표 기업인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nm(나노미터) 제품 양산에 성공한다는 계획.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라피더스에 2조9000억 엔(약 27조 원)을 지원금으로 투입한다.
대만은 TSMC 중심의 견고한 생태계를 기반으로 파운드리와 패키징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AI 칩 물량을 대만이 독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가장 무서운 추격자다. CXMT(창신반도체)를 중심으로 HBM 자국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내년까지 데이터센터 칩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미국 제재로 첨단 장비가 없는데도 중국은 주요 경쟁국들과 유사한 수준의 제품을 내고 있다"며 "K-반도체가 초격차를 유지 못하면 따라잡힐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다음 승부수를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차세대 칩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 제품은 칩 내부에 연산 기능을 탑재한 PIM(Processing-In-Memory)과 메모리 용량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CXL(Compute Express Link) 반도체다. 두 제품 모두 HBM과 결합하거나 연동해 AI 연산 성능과 에너지 효율성을 증폭시킨다.
PIM과 CXL 모두 아직 표준이 확립되지 않았고 서비스 전반에 대한 최적화가 필요하지만 시장을 선점하는 제품이 표준화도 주도할 것이란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과 연동할 PIM과 CXL 제품을 개발하고 올해 대규모 양산을 시작해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메모리 경쟁력 높이되 '선택과 집중'
전문가들은 K-반도체가 호황을 지속하려면 생태계 재정립과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경쟁 심화에 따른 HBM 가격 조정과 국가간 패권 경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 2기 대만정책과 동아시아 경제 산업에 대한 영향' 보고서(2025년 10월 발간)에서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과 대만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강화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시스템반도체 내재화, 메모리반도체 기술 고도화,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등 전 주기적 R&D(연구개발) 투자"와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재정립하고 기술과 인재, 자본의 선순환 구조 구축"도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임웅지 한국은행 국제무역팀 차장은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산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정보센터가 발행한 '나라경제'(2026년 1월호) 기고에서 "지금은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기술 패권 경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면서 "압도적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인재와 전력 확보를 무엇보다 우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메모리반도체 전반을 보되 '선택과 집중 유지'도 중요 해법으로 제시된다. 'HBM 성공은 메모리 집중 전략의 성과물'이고 '칩이 강해야 연관 비즈니스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 전문연구원은 7일 KPI뉴스와 통화에서 "한국이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소재까지 다 하면 좋겠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고 일축했다.
김 전문연구원은 "경쟁 국가와 기업들도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각자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며 "HBM을 포함한 전체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제고에 주목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초격차 전략은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김윤경 IT전문기자 yoon@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