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가족의 삶...연극 ‘두 번째 시간’
이성봉
| 2018-11-09 16:10:01
기록된 역사가 담지 못하는 평범한 개인의 역사
박근혜 후보자의 대통령 당선 뉴스가 자막과 함께 무대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극 중 인물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여기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까요?”라고 묻는다.
서울문화재단(대표 김종휘) 남산예술센터는 2018년 시즌 프로그램 하반기 네 번째 작품으로 연극 <두 번째 시간>(이보람 작, 김수희 연출, 극단 미인 공동제작)을 오는 15일부터 25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은 박정희 정권 당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장준하 선생(1918~1975)의 부인인 고 김희숙 여사(1926~2018.7.2.)의 삶을 연상시킨다. 이보람 작가(32)는 인터뷰에서 “2012년 시사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편을 봤다. 그때 극의 모티브를 얻었다. 김 여사의 이야기를 그대로 극화한 것이 아니기에 좀 다르게 느낄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역사적 사실을 보면 항상 그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했다. 성당에서 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극 중 장면은 실제 이야기다. 자녀 중에 넷째아들은 가상 인물이고 며느리라고 주장하는 이도 등장한다. 그래서 실제 삶이 아닌 두 번째 가상의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라고 작품의 의도를 전한다.
아울러 작품의 배경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가 배경이고, 김희숙 여사는 지난 7월 별세했다. 제작진은 연극이 이미 계획된 것이라 애초 의도는 아니지만 그분의 삶을 추모하는 의미가 더해질 것으로 여기고 있다. 공연 때 가족들도 초대할 계획이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연극은 가족들 말처럼 그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초 공연을 준비하면서 장호권 월간 사상계 대표(69. 고 장준하 선생 장남)도 작가와 전화하면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많은 이가 의문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게 되길 바란다”라는 희망을 전했다.
이 작품은 2016년 남산예술센터 상시투고프로그램 ‘초고를 부탁해’에서 선정된 뒤 이듬해 있었던 <서치라이트 2017>에서 낭독공연으로 선보이며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음으로써 올해는 시즌 프로그램으로 채택됐다.
‘초고를 부탁해’ 심사 과정에서 “안정적인 장면 구성과 대사, 비극의 당사자가 아닌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지긋한 시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는 균형감이 느껴진다”라는 평을 받았다. 이번 정식 공연은 각 장면과 인물 등을 보완해 더욱 탄탄하게 다듬은 것으로 지난 낭독공연보다 더욱 흥미롭게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연극 <두 번째 시간>은 기록된 역사가 미처 담지 못한 평범한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 <두 번째 시간>은 남편이 의문사 당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 모든 게 바로잡혔더라면 존재했을 또 다른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동안 금기시했던 의문사 사건을 바탕으로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고서도 살아내야 하는 부인의 삶, 평범한 개인이 굴곡진 역사를 버텨내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보람 작가는 2017년 서울연극센터 ‘뉴스테이지’와 우란문화재단 ‘시야 플랫폼: 작가’, 2015년 서울시극단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에 선정되는 등 연극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인이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 여성의 삶을 그린 <여자는 울지 않는다>(2015), 14세 소년 살인범의 이야기 <소년B가 사는 집>(2014) 등으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과 뛰어난 필력을 보여준 바 있다. 올해 동료들과 <보편적극단>을 창단해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극단을 창단한 이유는 연극 작업을 오래 하려면 조직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김수희 연출가는 ‘극단 미인’의 대표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으며, 정치극 페스티벌 ‘권리장전’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기도 하다. <소년B가 사는 집> 이후 3년 만에 이보람 작가와 다시 만났다.
작품의 주인공 부인 역에는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2018), <툇마루가 있는 집>(2017), <빨간시>(2011) 등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배우 강애심이 나선다.
17일 공연이 끝난 뒤엔 이보람 작가, 김수희 연출이 함께 관객과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당일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남산예술센터 누리집(www.nsac.or.kr)에서 알 수 있다.
입장권은 전석 3만 원, 청소년 및 대학생 1만 8천 원. 남산예술센터, 인터파크, 예스24공연, 옥션 예매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예매 및 문의: 02-758-2150)
K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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