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버티면 침몰…M&A로 변신해야 산다"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6-01-29 16:39:47

삼일PwC "공급 과잉 구조화, 이제 사이클 없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첨단 소재로 전환 필요성
파격적 구조조정 주문도…"IMF 때 빅딜처럼"

석유화학 업종이 더 이상 경기 회복 사이클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중국발 과잉 공급이 구조화됐으므로 도태되지 않으려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방 산업과 결합한 첨단 소재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 연구·개발(R&D)에 매달리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의 인수·합병(M&A)을 가장 현실적인 전략으로 제시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석유화학 공장이 밀집한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뉴시스]

 

29일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플라스틱 등의 원료인 에틸렌과 프로필렌의 글로벌 설비 초과분은 2000~2022년에 평균 7600만 톤 수준이었는데 2023년에는 1억1800만 톤, 2024년 2억2200만 톤에 이르렀다. 과거 20여 년간 평균의 3배 규모 물량이 시장을 짓눌렀던 것인데 지난해에는 2억2600만 톤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경기 사이클에 따라 소비가 회복되면 흡수 가능한 재고 수준을 넘어서 구조적 과잉 상태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연구원은 "언젠가 돌아올 사이클을 기다리던 시절은 끝났다"면서 "중국발 과잉 공급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파고 앞에서 범용 중심으로 버티는 것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2024년부터 정부가 나서 석유화학 업종의 구조조정을 유도해 왔으며 지난해 말 16개 기업들이 제시한 사업 재편안대로라면 국내 납사분해시설(NCC) 설비의 18~25%가량이 축소된다. NCC는 기초 원료인 납사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핵심 공정인데, 각 기업별 일부 공장을 폐쇄하거나 다른 기업과의 합병 등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삼일연구원은 규모 축소를 넘어 새로운 먹거리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시각이다. 해법은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 등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있는 한국의 전방 산업 소재로 제시했다. 

 

반도체의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의 초미세 공정에 필요한 금속산화물 포토레지스트(MOR)와 고순도 특수가스 등이 대상이 된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2035년 150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 시장 형성이 전망되는 실리콘 음극재, 조선업에서는 LNG 운반선에 필수적인 초저온 보냉재가 꼽혔다. 또 도심항공교통(UAM)과 우주발사체 분야의 초고강도 탄소섬유도 차세대 핵심 소재로 제시했다.

 

연구원은 "모든 사업이 사멸 후보는 아니다"면서 "상위권 전방 산업과 공정, 성능, 안전, 탄소 측면에서 깊이 결합된 소재는 중국발 과잉 공급과 무역 장벽 환경에서도 방어와 확장이 가능한 'K-퍼포먼스'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첨단 기술을 확보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연구·개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실적 해법은 M&A나 합작법인(JV) 설립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의 JSR과 레조낙, 미국 인테그리스, 독일 머크 등 글로벌 소재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범용 사업을 떼어내고 M&A를 통해 반도체 등 첨단 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특히 레조낙의 경우 2023년 기존 '쇼와 덴코'에서 사명을 바꾸며 '칩 소재 회사'로 재정의했고, 올해까지 석유화학 사업을 아예 분사키로 했다. 

 

이 같은 재편의 첫 발로 사업 분할 매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구원은 "먼저 자산을 분리하고 팔고 돌려 재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지만 다른 플레이어에게는 시너지가 있을 수 있는 사업을 독립된 단위로 잘라내어 가치를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했다. 

 

SKC가 2022년 필름 사업 부문을 1조6000억 원에 매각하고 그 자금을 배터리 소재에 투입해 기업 정체성을 바꾼 것을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꼽았다. 

 

연구원은 "범용 자산의 과감한 사멸과 K-퍼포먼스 소재로의 피벗(pivot),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M&A와 자산 재배치는 옵션이 아니라 한국 화학·소재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강령"이라고 강조했다. 

 

관건은 기업들의 의지와 실행력이다. 성동원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석유화학 업종의 고부가가치화와 M&A 등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지만 잘 바뀌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가야 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다만 옮겨가는 사업이 언제, 얼마만큼 커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대목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은 더욱 파격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석유화학 업종의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처럼 과감한 빅딜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 "국내 여러 곳의 석유화학 단지를 하나로 통합해서 생산량을 더 줄여야 한다. 더 이상 석유화학은 우리의 주력 산업 중 하나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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