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의 직썰] '윤석열 레임덕' 확인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 2024-07-24 16:08:36

윤석열 대통령이 졌다. 그것도 참담하게 졌다. '한동훈 압승'은 곧 '윤석열 참패'다. 여당 선거에서 대통령이 패배한 거다. 당심마저 등 돌린 '권력누수'의 확인이다.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드러낸 이면의 진실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전대에 개입했다. 더 노골적이었다. 김건희 여사까지 참전했다. 이들 부부에게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은 불길한 기류였다. 친윤 대항마로 원희룡을 급히 차출했다. 김 여사 휴대폰 문자까지 깠다. 한동훈이 당 대표 되는 꼴은 못보겠다는 속내를 절박하게 드러냈다.

 

윤심을 등에 업은 원희룡은 막 던졌다. 김 여사 문자 '읽씹'을 두고 한동훈 책임론을 물고 늘어졌다. 증거없이 '가족공천' 의혹도 제기했다. 압축하면 '너 때문에 총선 졌다'는 말이었다. 나경원, 윤상현 두 후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윤'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한동훈만이 달랐다. 과감히 '비윤','반윤'의 길을 선택했다. '채 해병 특검법'(제3자 추천방식)에 찬성했다. 피의자인 김 여사가 검사를 부른 모양새의 '보안청사 조사'도 비판했다. "국민 눈높이를 더 고려했어야 했다"고 했다. 전대 현장을 찾은 윤 대통령에게 더 이상 '폴더 인사'는 없었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국힘 비대위원장 시절 이미 선택한 길이다. 김 여사 디올백 수수에 대해서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1월18일)고 말한 순간 관계는 이미 쫑난 것이었다. 며칠뒤(1월21일) 윤 대통령은 이관섭 당시 비서실장을 통해 "비대위원장 사퇴하라"고 종용했다. 전쟁중인 장수를 물러나라고 할 만큼 그때도 '격노'했던 게 분명하다. 김 여사 문자 읽씹을 언급하며 "이런 ××인데 어떻게 믿냐"며 격노했다는 게 여권 인사들 입을 통해 진작 회자한 터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윤심이 작동하리라 기대한 건가. 그랬다면 여전히 '환상 속의 그대'를 끌어안고 사는 꼴이다. 총공세를 폈는데도, 한동훈은 압승했다. 당심도, 민심도 60% 이상이 한동훈을 지지했다. 윤심을 업은 원희룡 득표율은 20%도 넘지 못했다. '현실 속 윤심'은 더 이상 힘 쓰는 권력이 아니다.

 

누굴 탓할까. 윤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총선 참패가 누구 책임인가. 무능, 오만, 불통의 국정을 펼쳐온 건 윤 대통령 본인이다. 보수진영에서도 나오는 비판을 인정하지 않으니 참패하고도 달라진 게 없다. 반성과 혁신은커녕 되레 폭주했다. 당심마저 등돌리고, 한동훈이 압승한 이유일 터다.

 

국힘 전대는 윤 대통령의 레임덕을 공식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준석 대표를 토끼몰이하듯 쫓아내고, 자기가 원하는 김기현을 대표에 앉히려 당권주자 안철수를 협박하고 나경원을 '조리돌림'해 주저앉힌 건 까마득한 과거지사가 돼버렸다. 윤 대통령에겐 권력무상을 실감했을 법한 밤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는 순탄할까, 삐걱댈까. 여권 최대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전대 축사에서 "저와 집권여당,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며 '단결'을 강조했다. 한 대표의 지향점은 달랐다. 수락연설에서 "변화"를 외쳤다. "당원 동지와 국민 여러분들은 국민의힘의 변화를 선택했다"고 했다. '비윤','반윤'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곧 파열음이 터질 것이다. 채 해병 특검법, 김 여사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등 전선이 즐비하다. 당장 한동훈 특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윤 대통령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까? 192석을 차지한 범야당(더불어민주당 170, 조국혁신당 12석 등)으로선 꽃놀이패를 쥔 상황이다.

 

눈밖에 난 여당 대표의 '마이웨이'. 윤 대통령이 손 놓고 지켜볼 리 없다. 그간 유감없이 보여준 성정으로 볼 때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게 정치분석 좀 한다는 이들의 중론이다. 전대 전부터 '김옥균 프로젝트'설이 떠돈 이유일 터다. 

 

1884년 개화파 인사들이 청나라 간섭에서 벗어나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쿠데타(갑신정변)는 3일 천하로 끝났다. 일본으로 도피한 주역 김옥균은 10년 뒤 고종의 자객(홍종우)에게 살해되고 시신은 조선에서 다시 능지처참(신체를 토막내는 형벌)된 뒤 머리는 막대기에 걸려 전시(효수)됐다. 

 

▲ 류순열 편집인

 

KPI뉴스 / 류순열 편집인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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