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3류 공무원들에게 바란다

KPI뉴스

go@kpinews.kr | 2025-01-02 16:08:36

새해 벽두부터 자극적인 제목을 단데 대해 용서해주길 바란다. 공무원을 3류라 칭한 것은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특파원들 앞에서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한 발언에서 빌린 표현이다. 무려 30년, 한 세대 전의 일이다.

 

그때 이 회장은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힘 있는 정치권과 정부 공무원들로부터 괘씸죄 치도곤을 당했지만, 이 일갈은 요새 웬만한 00법사나 무속인보다 훨씬 더 신통력 있는 만트라(주문)가 됐다. 이 회장의 속내는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1류 선진국 경쟁기업과 목숨 건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국내 지원군은 제대로 돕지 않는다'는 한탄이었을 것이다.

 

▲ 지난달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 무안 제주항공기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조기가 걸려 있다. [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치닫고 수출과 내수가 병목에 갇혀 제2외환위기를 걱정하는 요즘 한국 경제의 정치 리스크를 예언이나 한 듯한 통찰이었다. 아마 이 회장이 지금 상황을 봤다면 "정치는 5류"라고 한 단계 더 신용 강등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1류 국민을 감당할 1류 기업과 공무원, 정치인은 언제나 올 수 있을까. '빨리빨리'와 세계 1등에 목맨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줄줄이 탄핵으로 인한 권한승계 3순위를 세계 최초로 달성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에 이어 세 번째로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대행과 총리 대행까지 맡게 된 것이다. 연말에 터진 무안공항 참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까지 겸임하게 된 그를 두고 언론은 '1인 4역'이라며 정상적인 업무 수행 여부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재난본부 회의에 참석해 유가족 명예훼손 엄단을 지시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과감하게 임명한 최 대행을 보며 적잖이 안심이 되는 이 심리는 무엇일까. 앞서 대통령의 돌발 계엄과 탄핵안 가결로 이어지는 약 2주간의 초비상 시국 때 우원식 국회의장의 침착한 대응에 호감을 표시하는 국민이 꽤 됐다. 비록 4류라도 정치는 한 나라의 국민 합의와 갈등 해소의 최상류에 위치한 기능이다. 쉽게 말해 '어린 백성'을 돌봐야할 '어른' 역할을 기대하는 게 보통이다. 국가 지도층이란 말이 바로 그렇다.

 

지도는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뜻이다. 어른은 본보기를 보이고 당황함 없이 '어른답게' 처신하는데서 진가가 나온다. 가장 어른이어야 할 대통령이 국민 동의 없이 함부로 통치권을 휘두르는 모습에 백성은 크게 실망했다. 우 의장은 이와 달리 여야의 정치논리 대결과 상관없이 중심을 잡고 어른에게 기대되는 언행을 함으로써 국민 불안을 다소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정파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중립적인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면모는 찾기 어려웠다. 바로 이때 최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고가 터진 무안 현장에 두 번이나 방문해 유족을 위로하고 사고 수습을 지휘했다. 국가 애도기간과 분향소를 마련하고 국가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전력지원을 다짐했다. TV에 비친 그의 표정과 말투는 국민을 조금 안심시켰다. 나는 20여 년 전 경제부 기자로서 최 대행이 기재부 국장일 때 만났던 경험이 있다. 내 기억에는 최 국장이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로 '반듯한 공무원'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최상목 찬가를 부르려는 게 아니다. 엄중한 국가 위기 때 국민이 믿고 기댈 수 있는 건 정통 공직자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30년 기자생활 내내 공무원 비판 기사를 써왔다. '복지부동' '이현령비현령'이 단골 제목이었다. 그러나 최 대행을 보며, 사고를 수습하는 국토교통부 공무원을 보며 튼튼한 관료 시스템이 국가의 척추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못 박혀 있듯, 국가공무원법 1조를 보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해놓았다. 대통령도, 국회도 아닌,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게 대한민국의 명령이다. 엄중한 시기에 나라를 지키는 일은 물론 주인인 국민의 제1의무이겠지만, 공복(公僕)이 그 일을 도우며 봉사해야 한다. 정치 머슴이 주인 눈치를 보지 않고 둘로 나눠 패싸움을 제멋대로 하더라도 공무원 머슴은 마지막까지 주인을 지켜야 한다.

 

케케묵은 단어를 끄집어 내 새삼 당부한다. 솔선수범과 불편부당은 공직자의 덕목이다. 믿음직한 관료 사회 덕분에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은 이제 1류 국민과 1류 관료 덕분에 1류 기업과 1류 정치까지 갖게 될지도 모른다. 군군신신부부자자(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라고 한다. 모두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다 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국격에 걸맞은 모습으로 정상 복귀할 것이다.

 

▲ 노성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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