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을 식혀라"…AI 냉각 기술 새 먹거리 급부상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01-07 16:12:18
정유업계 앞다퉈 냉각유 출시
LG전자, 냉방기 '칠러'로 MS와 데이터센터 공략
AI 시대의 새로운 먹거리로 냉각 기술이 급부상하고 있다. 서버의 열을 통제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인데 정유업과 전자업계가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SK그룹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전자전시회 CES 전시관을 공개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까지 AI 기술 전반의 '풀스택'(Full Stack)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는데, 그 한 켠에 '냉각유에 담긴 서버'가 전시됐다. 액침 냉각 기술이다.
AI 가동 시 서버의 열은 추론 속도에 영향을 미치므로 에어컨 등 공기를 차갑게 하는 방식으로 통제해 왔다. 하지만 전력 소모가 많고 공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서버 내부에 특수 액체를 넣거나 아예 액체에 완전히 담가 열을 제거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윤활유 업체인 SK엔무브는 2022년 국내 최초로 냉각 플루이드(액체와 기체를 아우르는 용어로 흐르는 성질이 특징) 개발에 뛰어들어 세계 최대 액침냉각 시스템 기업인 미국 GRC에 투자했고, 이듬해에는 델 테크놀로지스와 액침냉각 상용화를 위한 협약을 맺는 등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통신에서 AI 기업으로 확장을 꾀하는 SK텔레콤은 계열사의 냉각 기술을 앞세워 데이터센터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실적 설명회에서 자사의 AI 가속기 블랙웰 사용을 위해서는 액체 냉각 등 획기적인 발열 통제 솔루션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용되는 액체가 일종의 윤활유이고 대안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정유업계가 가장 적극적이다. 고환율과 정제 마진 약화 등으로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지난해 3분기 합산 영업 손실은 1조4000억 원대에 달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로 화석 연료 사용의 끝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업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HD현대오일뱅크의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는 지난달 GRC로부터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했다. 아직 공인 제품 규격이 미흡한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시장에서 신뢰성 높은 지표로 평가받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이를 기반으로 액침냉각 사업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GS칼텍스는 2023년 말 액침냉각유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 S'를 출시했다.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발열 통제가 필요한 여러 분야에 맞는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에쓰오일(S-OIL)도 지난해 10월 섭씨 250도 이상의 고인화점 액침냉각유 'e-쿨링 설루션'을 출시했다. 상대적으로 안전 규제가 엄격한 동북아 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커지고 있는 제품이다. 다양한 제품군을 구축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리서치업체 마켓샌드마켓(MarketsandMarkets)은 액침 냉각액 시작이 2023년 18억 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8.2%씩 성장해 2030년 32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AI 산업의 최대 국가인 미국이 주된 시장인데 한국은 2023년 34억5000만 달러를 수출해 접경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은 3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미래 가능성이 크다.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은 "액침 냉각 기술은 데이터센터와 배터리, ESS 등 다양한 고발열 장비의 열 관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무독성, 생분해성을 갖춘 친환경 제품을 고려해야 하며, 시장 전략 차원으로는 데이터센터 외에 다양한 응용 분야에 맞춘 전용 냉각유 개발을 통해 점유율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전자업계도 냉난방 공조(HAVC)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다. LG전자는 7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전격 발표했는데 핵심이 AI 데이터센터 분야다. LG전자의 초대형 냉방 기술인 '칠러'(Chiller)를 기반으로 한다.
차갑게 만든 물을 열교환기로 순환시켜 시원한 바람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대형 상가, 오피스 시설, 발전소 등에 들어가는 다양한 칠러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분야 글로벌 5위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조직 개편을 통해 냉난방공조 사업본부를 별도로 꾸렸다. 기존 생활가전 본부에서 분리해 독립시켜 비중을 높이고 더욱 박차를 가하려는 것이다.
정부도 힘을 보탰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LG전자 평택 칠러 공장을 방문해 "발열 이슈를 해결하는 솔루션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냉각 시스템을 우리 수출의 주역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칠러 등 냉각 시스템에 대해 3500억 원 규모 수출보험,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1300억 원, 액침 냉각 실증 등을 위한 180억 원 등 지원책을 제시했다.
정부는 냉각 시장이 지난해 85억 달러에서 연평균 13%씩 성장해 2030년 172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인용하기도 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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