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한국은 '과학 인재 보유국'인가
KPI뉴스
go@kpinews.kr | 2024-07-31 15:53:36
과학기술 일자리 부족과 낮은 처우 개선해야
'부자 과학자' 더 많이 나와야 의대 쏠림도 개선
젊은 MZ 세대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손흥민 보유국' 'BTS 보유국'"이란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월드클래스급 체육선수와 예능인이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는 뿌듯함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저서 '나의 소원'에서 남을 해치는 군사대국도, 부를 뽐내는 경제 강국도 아닌, 세상을 밝게 비추는 문화대국이 되길 원한다고 하신 바람이 어느 정도는 이뤄진 듯하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핵융합 등 21세기 첨단과학 분야에서 기술 전쟁을 벌이는 강대국 틈새로 생존과 성장의 묘수(妙手) 풀이에 고민해야할 한국은 과연 '과학 인재 보유국'인지 묻고 싶다.
최근 나온 몇 가지 통계는 우리나라가 과학 인재 유출국, 과학 인재 적자국가란 아픈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떠난 과학 인재의 연구 기여도는 한국에 유입된 인재의 기여도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 인재들이 영향력이 큰 과학 저널에 우수 논문을 게재한 수치를 종합한 기여도는 유출 인재(1.69)에 비해 유입 인재(1.41)가 많이 낮았다. 한 마디로 월드 클래스급 엘리트 인재들은 한국을 떠나고, 그보다 못한 로컬 클래스급 인재가 들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두뇌 유출(Brain Drain) 자체도 문제지만 고급 인재가 나가고 중급 인재가 그 자리를 메우니 '인재 적자'라는 게 더 큰 문제다. 현재 카이스트를 포함한 4대 과학기술원에서 연구 중인 박사후연구원(포닥) 771명 중 183명(약 24%)이 외국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인도, 베트남,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출신 연구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 연구 중인 외국인 박사들이 늘어났다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특히, 과학기술계는 국경을 떠나 초국가적 협력연구가 증가하는 게 요즘의 추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시 1960년대 경제개발 초기에 젊은 학자들이 미국과 유럽 선진 연구현장에 유학 가서 배우고 귀국해 과학입국에 이바지한 경험이 있다. 한국이 받았던 '선물'을 우리 후발주자들에게 되돌려주는 공적개발원조(ODA) 형태의 기여는 선진국 초입에 들어간 우리의 의무 중 하나다. 베트남에 설립한 베트남판 키스트(V-KIST)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로 유학 오거나 해외에서 우리 연구진의 도움을 받았던 경험을 더 많은 아시아 우방의 젊은이들이 한다면 이 또한 든든한 한국의 인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젊은 과학자들이 더 좋은 조건의 연구 환경과 자금을 찾아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현상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좌절하는 큰 이유는 국내 일자리 부족이 가장 크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국내 이공계 박사 인력의 공급과 수요를 조사한 결과, 2016~2020년 박사 배출 인력(3만1020명)에 비해 일자리(1만6804개)는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 시카고 대학 폴슨 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인공지능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났다고 한다. 이와 함께 '부자 과학자'의 탄생 가능성이 낮다는 것도 큰 약점이다. 정부 출연연구소와 4대 과기원이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되면서 인건비 운용이 유연해졌다 해도 미국과 유럽처럼 수십억 원대 수입을 거두는 스타 과학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수 인재에게 민간 기업에서 받을 수 있는 천문학적 수입을 포기하는 대신, 공공연구에 매진해도 기술 이전이나 기술 사업화를 통해 과학자 재벌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줘야 한다. 이는 해외 유출뿐 아니라, 국내에서 이공계 의대 쏠림 현상 같은 공급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이기도 하다.
| ▲ 노성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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