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왕자, 신라 공주와 결혼?…그는 정말 신라에 왔을까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5-10-06 09:00:36
경주에서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 소재 공연
쿠쉬나메에 '황금의 섬' 신라에 관한 내용 많아
이슬람권 문헌 "무슬림들, 신라에 들어가 정착"
국내 사료엔 페르시아인 신라 방문 기록 없어
'2025 세계유산축전 경주역사유적지구' 행사의 일환으로 '신쿠쉬나메-동방의 노래' 공연이 지난달 16~19일 경주 봉황대 광장 특설 무대에서 펼쳐졌다. 신라 향가와 처용무, 쿠쉬나메 서사를 결합해 창작한 비주얼 판타지 공연이었다.
학창 시절에 접하는 향가, 처용무와 달리 쿠쉬나메에 대해서는 "그게 뭐지"라며 낯설게 여길 독자가 꽤 있을 것 같다. 쿠쉬나메는 지금의 이란에 해당하는 페르시아에 전해 내려온 장편 영웅 서사시다. 그런데 이 서사시에 신라 관련 내용이 적잖아 학계 관심을 모았다.
11세기경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쿠쉬나메의 역사적 배경은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이다. 오랫동안 강자로 군림한 사산조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나라는 신흥 세력인 아랍인들의 이슬람 제국이었다.
쿠쉬나메에는 패망 후 중국으로 피신한 페르시아 왕가의 후손인 아비틴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망국의 왕자 격인 아비틴은 중국을 떠나 '바실라' 즉 신라로 망명하는데, 신라 왕의 환대를 받고 신라 공주 프라랑과 결혼하게 된다.
프라랑이 임신한 후 아비틴은 예언을 접한다. 태어날 왕자가 아랍 세력을 물리치고 페르시아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비틴은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붙잡혀 처형되고 프라랑은 아들 페레이둔을 무사히 출산한다. 페레이둔은 성장해 아랍 세력을 몰아낸다.
신라 관련 주요 대목은 이러한데 전개 과정에서 신라의 지리적 상황, 왕궁과 도시 풍경, 동식물 등을 세세히 묘사한다. 쿠쉬나메가 그린 신라는 왕궁 전체를 금으로 장식할 만큼 황금이 많은 섬이다. 수도의 모든 길과 거리를 중국산 비단으로 장식한 천국 같은 곳이기도 하다.
묘사가 구체적이지만 신라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신라를 섬으로 표현한 것은 물론 한반도에 자생하지 않는 튤립 같은 식물이 신라에 가득하다고 서술하는 등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규정한 것은 쿠쉬나메만이 아니다. 이슬람권의 다른 여러 자료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대표적 사례는 9세기에 아라비아반도와 페르시아 일대, 북아프리카를 지배한 아바스 왕조의 고위 관료가 쓴 '제(諸) 도로와 제 왕국지'라는 지리서다. 후대에 이슬람 세계에 등장한 신라 관련 지리 지식은 대부분 이 책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비중 있는 저서다.
이 책에는 "신라에는 금이 많으며 신라에 들어간 무슬림들은 신라에 정착한다"고 기록돼 있다. "신라라는 이름의 황금이 많은 나라에 들어간 무슬림들은 그 땅의 쾌적함으로 인해 정착하고 절대로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대목도 있다.
또 무슬림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신라에 금이 흔해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고 썼다. 알 이드리시가 1154년 제작한 세계 지도에는 신라가 섬으로 표시돼 있다. 이 지도는 한자 문화권 밖에서 만들어진 것 중 최초로 한국을 표현한 세계 지도로 꼽힌다.
쿠쉬나메는 신라를 황금의 섬으로 묘사한 이슬람권의 지적 전통과 이어져 있다. 아울러 역사를 사실 그대로 옮긴 것과 거리가 있는 구전 서사시다. 그런 점에서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결혼 이야기를 믿기에 앞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페르시아인은 정말 신라에 왔을까."
이슬람권 기록이 정확하다면 '신라에 정착했다'는 무슬림에 페르시아인이 포함되는지 따지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학계에선 무슬림의 신라 정착 얘기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슬람권의 신라 관련 기록에 부정확한 정보가 많아 생긴 현상이다.
국내 사료에는 무슬림의 신라 정착은 고사하고 페르시아인이나 아랍인의 신라 방문을 입증하는 기록도 없다. 이들의 한반도 방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현종 때인 1024년(현종 15년) 아랍인 100명이 와서 물품을 바쳤다는 '고려사' 기사다.
하지만 국내 사료에 기록이 없음에도 아랍인이나 페르시아인의 신라 방문·정착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연구자가 적잖다. 무슬림의 신라 방문·정착에 관한 이슬람권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신라에 서역 계통 문물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 서역인 모습을 한 경주 원성왕릉 무인(武人) 석상 등 여러 유물을 통해 확인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슬림이 신라에 왔을 것이라고 보는 쪽에서 주목한 또 다른 사례는 처용 설화다. 이들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년)이 지금의 울산인 개운포에서 얻었다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동해 용의 아들 처용이 실제로는 무슬림 상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헌강왕 집권기에 중국을 뒤흔든 황소의 난(875~884년)과 관련된 주장이다. 당나라에 와서 활동하던 무슬림 상인들은 황소의 난 때 다수 학살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그로 인해 일부 무슬림이 신라로 도피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게 처용 설화로 기록된 것 아니겠느냐는 추정이다. 눈길을 끄는 해석이지만 입증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무슬림이 신라 땅을 밟았을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리지만 아랍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신라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쿠쉬나메다.
△주요 참조=이희수 논문(「고대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Kush-nameh)의 발굴과 신라 관련 내용」, 『한국이슬람학회논총』 20-3, 2010), 임평섭 논문(「아랍·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 - 무슬림 집단의 신라 내 거주 가능성에 대한 문헌적 검토 -」, 『신라문화』 60, 2022), 전영준 논문(「신라사회에 유입된 서역 문물과 多文化的 요소의 검토」, 『신라사학보』 15, 2009)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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