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협회 "반도체 공급 과잉, 가격 붕괴 위험"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09-05 16:42:30

뉴욕지부 분석 "세계 각국 동시에 증설"
"국가 안보 논리, 시장 원리 무시한 투자"
배터리 업계도 2, 3년 내 공급 과잉 우려
iM증권 "이미 HBM 가격 하락 진행 중"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예상한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이 나왔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며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다보니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 출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미 가격 하락이 진행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배터리도 향후 2, 3년 후 유사한 국면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시됐다. 

 

▲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 [뉴시스]

 

5일 무역협회에 따르면 뉴욕지부의 백상한 매니저는 최근 미국 통상 정책이 각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반도체 산업은 이미 글로벌 공급 과잉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이 모두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하면서 생산능력이 과잉될 가능성이 크고 가격 하락으로 뒤따를 것이란 전망이다. 

 

백 매니저는 "각국이 국가 안보 정책에 따라 시장 수요 예측과 무관하게 팹(공장) 건설을 장려하면서 향후 글로벌 공급 과잉과 가격 붕괴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K 칩스법'을 통해 국내 반도체 투자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있으며 47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고 짚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47년까지 모두 622조 원을 투자해 경기도 남부 일대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려 한다. 백 매니저는 두 회사 행보에 대해 "미국 보조금의 강력한 인력에 대한 방어적 투자로서, 한국이 '기술적 식민지'가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전략적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관세 인상으로 인해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적 안보 차원의 통상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아예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하겠다고 나서 사회주의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산업은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장 건설이 진행되면서 시장 수요를 초과하는 생산 능력이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백 매니저는 "향후 반도체 가격 붕괴와 투자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현재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 건설되는 시설들의 장기적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각국이 국가 안보 논리로 시장 원리를 무시한 투자를 진행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배터리 부문에서는 중국의 압도적 생산 능력에 더해 한국, 미국, 유럽이 동시에 확장하고 있어 과잉 공급 우려가 큰 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일부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가격 하락 압박을 받고 있어 2, 3년 내 공급 과잉 국면 진입이 우려된다"고 했다. 

 

반도체 공급 과잉 우려는 국내외에서 제기돼 왔다. 지난 7월 골드만삭스는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하향 조정해 충격을 안긴 바 있다. AI에 주로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경쟁 격화로 가격 주도권이 점차 주요 고객사로 넘어가고 공급 과잉 국면에 들어가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iM증권에 따르면 올해 HBM 수요량 전망치는 24억6000만GB인데 업계 생산량 계획치는 29억3000만GB에 이른다. SK하이닉스가 16억2000만GB, 삼성전자 8억1000만GB, 마이크론 5억GB다. 

 

HBM 생산능력 증설 전망에 비쳐보면 내년에는 생산 가능량이 44억GB 이상으로 추정됐다. 역시 수요량을 상회할 것이란 전망이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는 HBM 공급 경쟁 심화를 유도하고 수요 증가율 둔화를 이용해 HBM 가격을 분기 단위로 인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올해 2분기 D램 혼합 평균판매단가(Blended ASP)는 레거시(범용) D램 가격 상승과 HBM 판매 비중 증가에도 불구하고 1% 상승에 그쳤고 이는 이미 HBM 가격 하락이 진행 중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HBM 공급 과잉 전망과 관련해 "그걸 정확히 예측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속한다"며 "상황에 따른 대응책을 잘 가져가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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