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방송사고, 방송이 하이잭킹 당하다"
윤흥식
| 2018-07-24 15:20:29
인터뷰 시작하는 순간까지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 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즐겨보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폭스 뉴스가 23일(현지시간) 최악의 방송사고를 냈다. 엉뚱한 인물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다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허겁지겁 방송을 중단해버린 것.
이를 두고 얼마나 무성의하게 방송을 준비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비판과 함께, 자신이 인터뷰 섭외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 정치인이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방송에 얼굴을 내민 것은 ‘사기’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여론이 함께 높아가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폭스뉴스의 인기프로그램 '폭스 & 프렌즈 퍼스트'는 23일 앤 커크패트릭 전 애리조나 의원(민주당)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민세관단속법’(ICE)에 대한 지지여론을 들을 계획이었다.
미국은 워낙 주(州)가 많고 정치인들의 수도 많기 때문에 유명 방송 진행자라 하더라도 각 주의 정치인들 얼굴까지 모두 알기는 어렵다. 폭스뉴스 진행자 롭 슈미트는 생방송으로 연결된 여성 정치인에게 준비된 질문을 던졌다. "이민세관단속법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러자 전혀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이 말을 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이민세관단속법은 불법일 뿐 아니라, 비인간적입니다. 사실 저는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바바라 리탤리언입니다."
당황한 방송진행자가 트럼프의 무관용 정책이 사실상 철회된 사실 등을 언급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리탤리언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속사포처럼 이어나갔다. 결국 폭스뉴스는 생방송 인터뷰를 황급히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진행자 롭 슈미트는 인터뷰를 중단한 뒤 카메라를 향해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라며 입맛을 다셨고, 이 장면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폭스뉴스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다른 인물이 출연하게 된 것은 제작진이 연락처를 제대로 업데이트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폭스뉴스는 커크패트릭 전의원에게 생방송 출연요청을 하기 위해 방송사가 갖고 있던 취재원 리스트를 보고, 케이츠라는 언론담당 보좌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는 자리를 옯겨 리탤리언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케이츠가 방송사의 '실수'를 자신의 '기회'로 활용키로 함에 따라 이같은 소동이 벌어지게 된 것.
미국 정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할 말이 있다면 폭스 뉴스를 찾아가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뉴스를 즐겨 시청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리탤리언 의원과 그의 보좌관은 인터뷰 섭외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폭스뉴스에 출연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한편 방송가에서는 이번사고에 대해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반응과 함께, "방송사의 실수를 이용해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려 한 리탤리언 의원의 행동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방송 사고 뒤 진행자 롭 슈미트는 자신의 트위터에 "바바라가 방송을 하이젝킹했다"는 비난성 글을 올렸고, 케이츠 보좌관은 이 글에 대해 "폭스뉴스가 오늘 몇 년만에 처음으로 '정통 뉴스'를 내보냈다"는 답글로 응수했다.
K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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