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곤충들이 관찰하고 기록한 여성 연인들의 애틋한 사랑"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8-16 17:18:31
누에, 톡토기, 모기, 거미가 입체적으로 기록한 '비생식' 여성
우화 형식 웃음 속에 여운 남기는 유장하고 현란한 문장들
"생식과 비생식의 기준은 자기 안의 신을 깨닫는 것"
'태초에 큰 웃음이 있었네./ 그 웃음은 무수한 침방울 내뿜었고/ 별과 우리를 온 우주에 퍼뜨렸네.'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멜라는 최근 펴낸 경장편 '환희의 책'(현대문학) 권두언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문장들을 이정표처럼 앞에 내세운 맥락은 그가 바야흐로 전개할 우화 같은 이야기들을 부담 없이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의 뜻처럼 곤충들이 기록한 두 여자 연인에 관한 이야기는 시종 흥미롭고 애틋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비생식 네트워크'에 교육생으로 참여해 인간 여성들 '버들'과 '호랑'을 관찰한 기록을 펴내기 위해 참여한 공저자 한점털보톡토기와 빨간집모기, 집유령거미 셋이다. 이 작은 생명체들이 연구원 누에나방의 지도 아래 인간(이들을 두발로 걷는, 자신들을 잡기 위해 엄지가 발달됐다고 여겨 '두발이엄지'라고 부르는), 그것도 비생식을 지향하는 여성 커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매끄러운 문장으로 현상을 기록하는 톡토기('티끌트윙클'이라는 귀여운 필명을 쓴다)의 시각,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태도를 지닌 빨간집모기('모필자'라고 자칭), 시나리오 형식으로 여러 장면을 보여주는 거미(매 장면마다 거미줄 형태의 #표시를 잊지 않는다) 등 세 공저자의 입체적인 서술 방식을 동원한다. 이들이 진술하는 문장은 유장하고 현란하며 현학적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이 귀여운 저자들의 문장을 따라가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연구원 '누선생'이 교육생들을 파견하는 대목은 짐짓 비장하다.
'나는 우리의 저술가들에게 말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사소함, 그것이 우리가 부여받은 필력이다. 가라, 톡토기답게 튀어 올라 유한한 두발이의 삶을 무한한 갉작임으로 기록하라. 모기답게 깊숙이 침을 찔러 익은 복숭아 같은 인간의 외피에서 비탄의 적혈구를 뽑아내라. 거미답게 단백질 실을 엮어 우리를 눌러 죽이는 그들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방사형 텍스트를 수놓아라!'
전화로 만난 김멜라는 "너무 인간 중심적인 사고들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자기 자신을 제일 아프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가 지금 바로 시선만 옮겨도 매미가 울고 초파리가 날아다니는데 우리 주변을 이루고 있는 그런 작은 섬세한 몸들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인간 중심의 시선을 떠나면 "우리가 좀 더 가벼워지고 편안해지고 느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조금 여유와 자유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곤충의 시선으로 확보하려고 했던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 비생식 여성 커플이 있다. 우울증을 앓는 '버들'과 때때로 죽음 충동에 시달리는 '호랑'의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 있다. '누선생'은 "왜 하필 비생식 집단이고, 어째서 우리가 그 기록을 우주 곳곳에 퍼진 무척추동물 동지들과 공유하려 하는지는 본 연구물을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될 것"이라고 언명하면서 "생식과 비생식의 기준은 자기 안의 신을 깨닫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곤충이나 다른 절지동물들과 같은 점은 자신들의 존재를 더 번식하려는 기계적인 매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그것이 마치 신처럼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근본적인 바탕인 동시에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점은 이 세계를 만들고 구성하는 원리라는 점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시각으로 따지자면 자기 물질만 소유하고 확장해 가려는, 이 세계를 피폐하게 만들고 다른 이들이나 자신을 고통받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죠."
곤충들이 관찰하는 인간 여성 버들과 호랑의 '비생식' 은 이런 잣대로 보자면 더 크고 넓은 '생식'을 지향하는 셈이다. 김멜라는 "번식만이 우리의 존재 목적인가, 우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이유인가, 가족이라는 것이 꼭 혈육으로 이어져야만 하는가, 이런 것들을 자꾸 되짚어 보게 된다"면서 "혈육의 자식을 낳지 않더라도 생명 있는 것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으로도 생식이고 창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다 같이 서로를 생식하고 유지하면서 좀 더 큰 의미의 생식으로 우리는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버들'과 '호랑'의 교류는 간절하고 애틋하다. 호랑이 버들에게 같이 죽을 수 있느냐고 묻자 버들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왜 죽고 싶으냐는 질문도 없이 다만 언제 죽을 것인지 묻는다. 곤충 저자들은 인간을 '두발이엄지'라고 편의상 명명하되 이름이 규정하는 폭력을 경계하면서 '죽음'이란 단지 '탈바꿈'이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이름이란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우리의 탈바꿈을 가둬놓는 두발이엄지의 형식이다. 우리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고 늘 다른 것으로 흐른다. 물방개와 물땅땅이는 두꺼비에게로 흘러 구름이 되고, 왕풍뎅이와 산누에나방은 동고비에게로 흘러 빗방울이 된다. 꽃과 나무는 나비로 날개를 갖고, 땅과 바위는 벼룩의 도움으로 점프한다. 느낄 수 있겠는가? 위가 들리고 밑이 빠지는 쾌감을, 삼키는 뜨거움과 씹히는 상쾌함을, 구름으로 응결되고 빗방울로 추락하는 기쁨을. 두발이엄지도 우리처럼 믿고 느끼는가?'
"항상 어떤 글을 쓸 때마다 제가 가장 부딪히는 큰 벽, 슬픔이 죽음인 것 같아요. 저의 죽음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죽음, 혹은 다른 동물이나 어떤 것들의 사라짐, 그런 상실인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을 꼭 슬픔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탈바꿈했다, 몸이 바뀌었다는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몸이 바뀌어도 우리를 이루고 있던 원자는 계속 존재하잖아요. 그렇게 본질적으로 확장하다 보니까 인간이라는 형태에 묶이지 않고 되게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슬픔도 좀 잊혀지고 어떤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 이겨낼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죽는 게 아니라 탈바꿈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버들은 한 사람의 사랑만으론 살 수 없었어. …호랑이 헛웃음을 지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어. 뭐라고 설득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막막했지. …버들이 자신에게 어떤 사랑을 주든, 그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어야 했으니까. 그래야 버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플 테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너는 언제나 세상에 지게 되어 있고, 널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세상에 두들겨 맞고 돌아온 너를 또다시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내가 아는 사랑, 너에게 배운 사랑의 방법이니까.'
김멜라는 공저자들의 관찰처럼 "사랑하면 진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한다. 그가 최근 '문학동네'에 연재하고 있는 장편에서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의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인데, 이제는 지는 게 아니라 이겨서 세상을 좋게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버들과 호랑은 둘 다 세상(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성 대결의 국면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김멜라도 이런 부분을 경계하면서 젠더를 넘어서는, 보다 넓은 의미의 '생식'을 도모하는 흥미로운 우화소설로 읽히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이즈음 젊은작가군 선두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그의 소감과 희망.
"항상 좀 더 위험하게 저를 밀어붙이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10년은 많이는 아니지만, 그 방향으로 자꾸만 더 가보자, 가보자 그랬지요. 곤충의 시점이라는 낯선 방식으로 쓴 소설이라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질 모르겠지만, 권두언에 밝힌 것처럼 하나의 우화처럼, 놀이처럼, 웃음처럼, 웃으면서도 여운이 남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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