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88회를 아시나요?

김병윤

| 2018-07-26 11:28:35

국가의 일방적 강제로 프로야구 진출을 1년 유보
88올림픽 시범경기 출전 위해 희생하고 고초 겪어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의 밑거름 되기도
▲ (왼쪽부터) 조계현 KIA 타이거즈 단장, 최해명 두산 베어스 수비코치, 송진우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응답하라 1988". 아스라이 멀어져간 옛추억을 살려줘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쌍문동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이웃들의 이야기. 비오는 날 빈대떡을 부쳐 먹으며 수다떨던 동네아줌마들. 덕선(혜리)의 실감나는 서울올림픽 피켓걸 연기. 30년전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시청자들은 잠시나마 추억속에 빠져들어 30년 전 젊은시절로 돌아갔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특별한 감회에 빠진 야구인들이 있다. 이름하여 88회 모임이다 . 1988 서울올림픽 야구대표팀에 선발돼 프로진출이 보류됐던 84학번 동기들로 구성됐다. 당시 대한야구협회는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대학 졸업반이었던 6명의 프로진출을 1년간 보류시켰다.

 

조계현·장호익·최해명(연세대), 송진우(동국대), 김기범(건국대), 강영수(한양대)가 국가의 부름에 따라 프로진출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이들은 프로진출 보류에 따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보상은 커녕 일부 선수는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대한야구협회는 조계현, 장호익은 농협으로. 김기범, 강영수는 한국화장품으로 직장을 마련해 줬다. 

 

송진우,최해명은 졸업을 앞두고도 직장을 잡지 못해 방황했다. 다행히 재일교포가 대구에 설립한 세일통상이 야구단 창단을 해 가까스로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창단 몇개 월만에 선수들에게 통보도 없이 팀을 해체해 송진우, 최해명은 많은 어려움에 놓였었다.

 

88회 모임 선수들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태극마크의 소중함 때문에 불평을 접어두고 최선을 다했다. 서울올림픽때 야구는 시범종목이라 병역혜택도 없었다. 그렇다고 보상금이나 격려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한국야구를 위한 희생 정신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직업선택의 자유마저 빼앗긴 그들이 우스울 수도 있다. 그래도 88회 모임 선수들은 담담하게 얘기한다. 누군가는 겪어야 했던 희생이었다고.   

 

88회 선수들은 올림픽이 끝난 뒤 1년 늦게 프로에 진출해 그라운드를 휘젖고 다녔다. 조계현은 해태왕국의 주역으로 활약하다 현재 KIA 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송진우는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로 대전 야구장에 독수리 날개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최해명은 두산 베어스 코치로 어린 선수들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김기범, 장호익, 강영수는 야구장을 벗어난 새로운 분야에서 묵묵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1988 서울올림픽 야구국가대표 선발의 영광 뒤에는 10년 같이 길었던 고통의 1년을 보낸 88회 모임 선수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매번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면 30년 전의 어려움이 생각나 쓴 소주 한 잔을 곁들이고 있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건배사를 외친다. 병역혜택도 없고 금전적 보상도 없었지만, 우리는 자랑스런 1988 서울올림픽 대한민국 야구대표선수였다고.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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