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①] 돈 물줄기 대전환 외쳤으나 산업현장은 "체감하기엔 아직"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6-01-02 17:53:08

투자 규모 커졌으나 업계 자금 조달 고충 여전
벤처기업 3분의2가 창업 이후 외부 투자 못 받아
중소기업 '부동산 담보 부족' 등 은행 문턱 호소
"위험가중치 낮추고 연기금 벤처 투자 유인책 필요"
생산적 금융은 '이재명 경제'의 핵심 키워드다. 부동산 대출에 치우친 돈의 흐름을 산업과 혁신으로 돌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2026 신년사에서 금융권 수장들은 예외없이 '생산적 금융'과 'AI'를 외쳤다. AI를 축으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혁신 기업이 성장하려면 자본이라는 '총알'이 절실하다. 생산적 금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필수 조건인 셈이다. 생산적 금융의 현주소와 과제, 전망을 4회에 걸쳐 입체적으로 짚어본다. 

지난해 9월 이재명 정부는 대대적으로 '생산적 금융' 전환계획을 발표했다. 부동산·담보 대출 중심에서 산업·혁신 투자로 대전환하겠다는 거였다. 이후 돈의 물줄기는 바뀌었을까. 산업현장에서 체감하기엔 아직 이른 듯하다.

 

"산업으로 돈이 더 흘러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생산적 금융이 작동하기 위한 제도 변화와 실행은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의 진단이다. 그는 "
그동안 금융권이 안정적으로 담보 위주 대출을 하다 보니까 리스크를 부담하는 대출은 부족했다"면서 "기업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제도적으로 바꿔나갈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를 15%에서 20%로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의 기업 대출을 보다 늘리려는 조치이나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는 75%, 벤처 투자는 400%에 이른다. 여전히 격차가 크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서는 보다 전향적인 변화를 바랄 수밖에 없다. 

 

금융권 스스로도 '반성'의 뜻을 보인 바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해 9월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해왔다는 국민적 비난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이는 선구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구안'을 만들기 위해 신용평가 방식을 개선하고 산업 분석 능력도 키우겠다는 다짐이었다. 

▲ 지난해 11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5 제1회 벤처주간 SW 인재매칭 페스티벌'현장 [뉴시스]

 

벤처 자금 조달 어려움 '매우 체감' 39%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연말 발표한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3만8216개 벤처기업 중 창업 이후 외부 투자를 받은 경험이 있는 곳은 37.1%에 그쳤다. 3분의2가량이 단 한 번도 투자를 받지 못한 것이다.

  

벤처기업들에게는 인력 확보나 판로 개척과 함께 자금 조달이 여전히 대표적 난제다. 이번 조사에서 경영 애로 사항을 묻자 '자금 조달'의 어려움에 대해 '매우 체감함' 비율이 38.8%로 해외 시장 개척(40.9%)에 이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내 판로 개척(30.7%), 필요 인력의 확보 및 유지 관리(27.9%),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26.8%) 등에 비해 자금 문제의 심각도가 훨씬 더한 것으로 조사됐다. 

▲ 벤처기업 경영 애로 조사 결과 [벤처기업협회 제공]

 

벤처기업들의 평균 매출액은 2020년 52억9100만 원, 2021년 59억1900만 원, 2022년 65억3900만 원으로 증가했으나 이후에는 2023년 65억4200만 원, 2024년 66억7800만 원으로 성장 속도가 더디다. 평균 고용 인원은 2023년 25.3명에서 이듬해 23.4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소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9~12일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는 비율이 40%로 '호전됐다'는 응답(13.2%)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지난해 외부 자금 이용 경험은 40.4%였고 이들 기업에서 필요한 자금 대비 확보율은 40% 이하라는 응답이 34.2%에 달했다.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 시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 '높은 대출금리'가 73.6%로 가장 많았고 '대출 한도 부족'(52.4%)이 뒤를 이었다. '과도한 서류 제출 요구'(35.0%), '부동산 담보 부족'(32.2%), '매출액 등 재무제표 위주 심사'(24.1%) 등도 주된 애로사항이었다. 

 

은행에서 신규 대출 또는 연장 신청 경험이 있는 기업 중 대출 심사 기준이 과거보다 강화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65.3%에 이르렀으며, 완화됐다는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37.0%의 중소기업들이 올해 차입 여건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호전될 것이란 응답은 6.8%에 그쳤다. 

 

그래도 생산적 금융에 대한 기대감은 살아 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전환 기조에 대한 기대치는 높게 나타났다. 금융 정책에 따라 중소기업 금융 환경이 개선될 것이란 응답이 51.4%에 이르렀고, 악화될 것이란 비율은 3.2%였다. 

▲ 벤처기업 평균 매출액 추이 [벤처기업협회 제공]


"투자 회수 IPO 편중, M&A 등 활성화해야"


산업계는 부동산 중심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제는 제도적 혁신이라고 본다. 대한상의는 지난해 9월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경제계 의견'을 통해 "기업금융과 벤처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조정하면 금융권 자금이 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흐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의 전체 원화대출금 대비 부동산 대출 비중이 2020년 66.6%에서 2024년 69.6%로 높아진 배경으로 지적했다. 정책 목적의 펀드 출자에는 위험가중치를 100%까지 낮출 수 있는 예외조항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동국대 산학협력단은 국민경제자문회의 의뢰로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국내 벤처·모험자본 시장은 양적으로 성장했으나, 투자 구조의 질적 성숙과 회수시장 기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라며 "국내 회수시장은 기업공개(IPO)를 통한 회수 선호도가 매우 높으며, 해외 국가들이 IPO 비중 대비 인수합병(M&A) 비중이 높다는 점과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회수 옵션 확충은 투자자의 만기 부담을 완화해 재투자 여력을 확대하고 단기 회수 압박 완화로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올해를 기대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투자와 대출을 연결하는 스케일업 금융을 더 강화하고, 기술·데이터·매출 성과가 금융 조건에 직접 반영되는 정교한 평가 체계를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연기금과 퇴직연금 등이 벤처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책 및 리스크 분담 구조를 명확히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방향들이 이어지면 생산적 금융 전환은 단순한 정책 구호가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되는 성장 엔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석구 본부장은 "돈이 들어오면 산업계도 좀 더 공격적으로 투자할 여력이 생기게 된다. 올해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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