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100년 전 케인스의 질문, 오늘의 정책결정자는 준비됐는가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6-01-09 14:39:01

케인스 제시 이상적 덕목, 여전히 우리 시대의 정책결정자 조건
인사혁신 함의···융합 역량, 정책협력 리더십, 정책결정문화 전환

문명사적 패러다임 대전환기 정책 실패의 본질은 무엇인가. 논리학에서 말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다. 부분적으로는 옳아 보이는 판단이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이다. 스테이블코인, 인공지능(AI), 기후위기는 금융, 생산, 성장의 틀을 바꾸고 있지만 더 근원적인 변화는 이들이 동시에 작동하며 정책 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재정정책, 통화정책, 금융정책을 더 이상 분리된 영역으로 다룰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예컨대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삼는 스테이블코인은 재정에는 새로운 수요 기반을 제공하고 통화정책에는 재정지배 완화라는 가능성을 열어주며 금융정책에는 새로운 리스크 관리 과제를 던진다. 어느 하나의 정책 논리만으로는 전체 효과를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논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구성의 오류를 넘어서기 위해 정책결정자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즉 어떤 유형의 정책결정자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 100년 전 케인스의 통찰을 다시 소환하게 된다. 1924년 케인스는 스승 앨프리드 마셜에게 헌정한 에세이에서 이상적인 경제학자이자 정책가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덕목을 제시했다.

일반의 관점에서 특별을 고려하고, 추상성과 구체성을 같은 생각의 궤적에 두며, 미래의 목적을 위해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공부하고, 인간의 본성과 제도에 항상 관심을 두며, 목적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지니고, 예술가처럼 초연하되 정치인처럼 세상과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다.

 

▲ 스테이블코인, AI, 기후위기와 정책결정자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100년이 지난 지금 이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 시대의 정책결정자에게 필요한 조건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스테이블코인, AI, 기후위기가 얽혀 있는 오늘날의 정책 환경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 인간의 행동, 제도의 설계, 정치적 제약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문명사적 패러다임 대전환기의 정책은 단일 정책의 산물이 아니며 정책 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이 때문에 정책결정자의 고뇌는 구조적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케인스가 마셜에게 헌정한 에세이를 통해 제시한 정책가의 이상형은 하나의 역량이 아니라 긴장 관계에 있는 여러 덕목을 동시에 품는 능력이다. 일반의 관점과 전문가적 통찰, 추상성과 구체성, 과거의 교훈과 미래의 목적, 인간 본성과 제도의 이해, 객관성과 목적성, 예술가의 초연함과 정치인의 현실 감각.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정책결정자가 맞닥뜨리는 구성의 오류를 피하기 위한 조건과 정확히 부합한다. 부분 최적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고를 끊임없이 교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러다임 대전환기에서 정책결정자의 무게가 커지는 것은 구조적 필연이다. 스테이블코인을 기회로 만들 것인지 혼란으로 만들 것인지, AI를 번영의 도구로 만들 것인지 불평등의 가속기로 만들 것인지는 정책의 기술보다 정책결정자의 철학과 인문, 사유의 폭에 더 크게 달려 있다. 그래서 지금 절실한 것은 케인스가 그렸던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상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다.

정책결정자의 고뇌가 깊어지고 무게가 커진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정책이 다시 인간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100년 전 케인스의 문장이 오늘 다시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시대의 정책결정자에게도 여전히,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그와 같은 균형 감각과 인문적, 철학적 깊이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오늘의 정책결정자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부분의 논리에 갇히지 않고 전체를 살필 수 있는가. 추상과 구체, 목적과 객관, 제도와 인간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가. 이는 오늘날 인사 혁신의 기준으로도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시대의 재정·통화·금융정책 인사 혁신에 줄 수 있는 함의는 무엇인가. 우선 세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융합적 역량이다. 예컨대 법경제학적 이해, 제도경제학적 접근, 정치경제학적 감각이 필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정책결정자의 이상형은 고도의 기술적 분석 능력을 갖춘 전문가였다. 정교한 모형과 데이터 분석은 정책결정의 표준 도구가 되었다. 이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와 같은 평화로운 환경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그렇지만 패러다임 대전환기에는 정책 실패가 변수 추정의 오류보다는 정책 간 충돌과 제도적 정합성 문제 등에서 발생한다. 재정·통화·금융정책이 동시에 적용되는 정책의 여명지대(zone of twilight)에서는 정책결정자의 역할도 달라진다. 권한 배분과 책임 구조가 정책 행태에 어떤 유인을 주는지 이해해야 한다. 정책 효과가 제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읽어야 한다.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법경제학·제도경제학·정치경제학을 아우르는 융합적 역량이 요구된다.

둘째, 정책협력의 리더십이다. 정책 간의 상충 가능성을 이해하고 단순한 타협이 아닌 구조적 조정과 조화를 설계할 수 있는 정책결정자의 능력이다. 정책 간 조정과 균형을 기하려는 모티베이션과 역량을 중시해야 한다. 단일 조직 차원에서의 성과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정책 영역을 협력적,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정책결정 문화의 전환이다. 예컨대 사회적 신뢰를 정책의 소중한 자산으로 이해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정책의 지속가능성과 성공은 신뢰에서 나온다는 정책결정자의 철학이 요청된다. 그러한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고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은 정책 거버넌스의 핵심 자산이 된다. 우리 시대의 정책결정자는 궁극적으로 신뢰 설계자(trust designer)로서의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현재의 정책결정자 풀(pool)은 이와 같은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가. 기술적 분석에만 치중하는 정책결정자일수록 구성의 오류에 취약할 우려가 있다. 각 정책 영역을 자신의 모형 내에서 최적화하려 하지만 그 결과가 다른 정책 영역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면하고 있는 문명사적 패러다임 대전환기에는 정책결정자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달라진다. 기술적 경제모형을 이해하되 그것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인물, 법과 제도의 언어로 정책에 접근할 수 있는 인물, 정치적 요소를 현실 속에서 인식하면서도 내생적 질서가 작동하는 정책 원칙을 설계할 수 있는 인물이 정책을 맡을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의 인사 혁신이 한층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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