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지브리 풍과 세 번째 AI 모먼트
KPI뉴스
go@kpinews.kr | 2025-04-10 14:44:01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를 취미로 하는 분들은 더 빨리 느끼셨겠지만, 최근 자신의 사진을 인공지능 그림 생성 기능으로 변환해 보내주는 지인들이 하루에도 여러 명씩 생겼다. 초(超)연결시대 특유의 빠른 전파력으로 유행한지 불과 몇 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초상화는 물론 단체사진까지 만화로 바꾸어 "재미있지?"하며 아는 이들에게 뿌리는 게 유행이 됐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설립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영화의 화풍(畫風)과 닮은 '지브리 풍' 애니는 '디즈니 풍' '심슨 풍' '짱구 풍' 등 다른 스타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인기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같은 명작은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다. 아마 동양인의 감성에 맞는 둥글둥글 착한 눈에 부드러운 선이 마음에 든 때문일 게다.
며칠 전에 한국을 방문한 챗GPT 고위 관계자는 "신규 가입자 수가 한 달 새 2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 모든 현상은 3월 25일 챗GPT-4o에 강화된 이미지 생성 기능이 추가되면서 벌어졌다. 샘 올트먼 오픈AI 사장이 이 기능을 이용해 지브리 풍으로 바꾼 자신의 프사(프로필 사진)를 엑스(X)에 올리자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이 너도나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문화적 현상을 분석하거나, 일각의 저작권 논란을 다룰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인들이 또 다른 'AI 모먼트(Moment)'를 맞았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에 경남 창원시청 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특강을 했다. 창원은 과거 마창진(마산·창원·진해)으로 불리던 행정구역이 통합된 대도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LG전자·현대로템·효성중공업·한국GM 등 기계 및 중공업 업체들이 밀집한 국가 산업단지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헤비인더스트리의 본산에 어울리게 강연 주제는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으로 잡았다. 앞선 칼럼에서 강조했듯, 우리나라 산업 구조조정의 핵심 중 하나다. 한국이 20년 가까이 세계 선두권을 달리는 반도체, 자동차, 화학, 전기전자통신기기, 조선, 철강 등 일류 제품군이 AI와 유연하게 접목돼야 한다.
다른 기회에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공장에 AI 기능이 들어간 공작기계만 들여놓는다고 AI 공장이 되는 건 아니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생산의 앞·뒤 전체 과정에 AI가 사령탑으로 들어가 부드럽게 연결 통합돼야 하기 때문이다. 즉, 제품 구상(기획)-개념 구체화(설계 디자인)-테스트(파일롯 생산)-본격 양산으로 이어지는 전(前)단계와 유통(물류)-판매(마케팅)-고객만족(CS)으로 연결되는 완제품의 소비자 전달 후(後)단계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흘러가야 한다.
제조업의 AX를 독일어로는 CPS라고 한다. Cyber(가상)와 Physical(실물)의 통합 시스템이란 뜻이다. 가상은 데이터, 실물은 제품과 생산설비 등을 말한다. 우선, 실물에 센서를 붙여 여기서 데이터를 수집한다. 사물인터넷(IoT)이다. 이 데이터로 가상 공장을 만든다.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 팩토리다. 컴퓨터 3D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가상 공장이 실물 공장의 움직임과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생산의 전 단계와 후 단계까지 모두 CPS에 통합돼야 한다. SCM(공급망 관리), CRM(고객관계관리)에다 ERP(전사적자원관리)까지 모두 AI로 묶어진다.
이렇게 되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무인 공장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알아서 제품 재료를 주문하고 판매에 재고가 남지 않도록 적정량만 생산한다. 고객이 까다롭게 주문한 개인 취향에 맞는 맞춤형 완성품을 집 앞까지 대령한다. AI 공장은 생산의 스마트 변신뿐 아니라 공급과 소비까지 하나로 일관되게 꿰어 맞추는 것이다. 미국과 독일에 일부 선도적인 공장이 있지만 완벽한 건 아니다. 이제 막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인들은 2016년 최초의 AI 모먼트를 경험했다. 절대로 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던 바둑 고수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4대1로 지는 충격을 맛보았다. 이후 국민의 AI 문해력이 확 높아졌다. 시중에 책이 쏟아져 나오고 학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는 일부 전문가에 국한된 일이었다. 의사, 법조인, 금융 종사자 중 얼리버드만 깜짝 놀랐었다. 미국에 비해 AI를 업무에 적용해 실제 활용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았다. 2022년 11월 공개된 오픈AI의 챗GPT 3.5는 역대 IT 서비스 중 최단기간 최다 가입자 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의 활용도는 여전히 바닥을 맴돌았다. 2025년 두 번째 AI 모먼트가 지브리 풍으로 왔다. 전문가 아닌 일반인도 생성 AI를 옆에 두고 자주 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세 번째 AI 모먼트를 기다리고 있다. AI 시대는 아직 초기에서도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이 재미있고 편리하게 일상생활에 쓰는 정도다. 진정한 AI 승자는 산업에서 결정된다. 소비형 AI가 아니라 생산형 AI야말로 승부처다.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이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이 AI로 무장한 새 산업으로 채워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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