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삶과 죽음 관통하는 마지막 사랑의 벽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3-29 16:55:11
출간하지 말라던 마지막 작품, 사후 10년 만에 햇빛
'백년의 고독'으로도 완성하지 못한 '불구의 사랑'
"외로움, 침묵에서 벗어나 이제야 사랑을 말하는 것"
'묘지 관리인과 무덤 파는 용역 인부는 관을 파냈고, 장터의 마법사 같은 기술로 한 치의 동정심도 없이 무자비하게 관을 열었다. 아나 막달레나는 전신 거울을 볼 때처럼 열린 관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다. 미소는 얼어붙어 있었고, 양팔은 가슴에 십자로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날 자기와 같은 나이에 자기와 똑같이 생긴 얼굴을 보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쉬면서 준비해 둔 것처럼, 결혼할 때 썼던 면사포와 화관을 쓰고, 붉은 에메랄드가 박힌 머리띠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무덤을 열었더니 어머니가 딸의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햇빛을 보는 순간 바스라져 뼛가루로 부서져내렸다. 딸은 어머니의 골분(骨粉)이 든 자루를 메고 섬에서 집으로 돌아간다. '백년의 고독'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유작 '8월에 만나요'(송병선 옮김, 민음사)는 그렇게 한 여성의 '불륜'을, 8월의 만남을 마무리한다.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사랑 혹은 그 허무에 대해 마르케스 만큼 헛헛하게 묘파한 작가도 드물 것이다. 마르케스 사후 10년 만에 출간하지 말라던 그의 뜻을 아들들이 거슬러 햇빛을 본 유작이다. 번역된 분량 기준으로 200자 원고지 300장 안팎에 불과한 짧은 소설이지만 '백년의 고독'에서 방대한 스케일로 풀어낸 이야기의 여운은 마지막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그의 필생의 역작에서 백년 동안 사랑이 없는 이들의 역사를 비극으로 그려냈다면, 유작에서는 다시 이어지는 후대들의 욕망을 여성의 관점에서 표출시키다 그 덧없음을 죽은 어머니의 유골과 대면시키는 장면으로 맺은 셈이다.
이 작품은 1999년 마르케스가 1장을 처음 공개했다. 이후 계속해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5부작을 쓰겠노라고 공언했는데 14년 동안 9번 수정을 거듭했지만 끝내 이 소설은 출간하지 말라는 당부를 한 채 생을 마감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암투병을 하면서도 집필의 끈을 놓치 않았지만 알츠하이머까지 겹쳐 더이상 기억력이 받쳐주지 못하면서 그의 사후 이 작품은 텍사스 대학교 기록보관소로 옮겨져 몇몇 전문가들에게만 열람이 가능한 상태였다.
작품 출간을 거부했던 마르케스의 아내 메르세데스 바르차가 남편 뒤를 이어 6년 후 사망하자 그의 아들들이 출간을 결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마르케스는 그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 영화화를 생전에 극렬하게 거부했거니와, 이마저도 그의 아들들은 이미 영화 제작을 허락한 터였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투자해 2년째 제작 중인데 금년 말쯤 개봉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마르케스 가족이 출판을 거부한 이유는, 번역자 송병선(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 출판 검토서의 부정적인 평가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검토자는 "반복적이고 긴장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출간 가능성을 일축"했는데 후일 다른 평자가 검토한 결과는 달랐다. 한 평자의 의견이 마르케스의 유작을 10년 동안이나 무덤 속에 방치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작가의 생전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기도 하지만, 어느 작품이든 호오가 갈리게 마련인 현실을 감안하면 대가의 마지막 생각을 담은 작품을 접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마지막 유작만으로 작가를 평가하는 독자는 없을 터이다.
송 교수는 "아나 막달레나는 자기 어머니의 시신에 비친 자신을 보고 두 사람의 공동 운명을 이해하는데, 이것은 가히 그의 문학 세계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명장면"이라면서 "인생이라는 길의 끝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유골 담긴 가방의 이미지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 유작의 중심인물 아나 막달레나 바흐라는 여성은 매년 8월 16일이면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섬을 홀로 방문한다.
'8월 16일이 다시 돌아오길 한순간도 잊지 않고 꿈꾸었지만, 지난 두 번의 경험으로 분명하게 배운 바에 따르면, 일 년 내내 기다리다가 하룻밤의 우연에 나머지 인생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첫 번째 모험엔 행운이라는 우연이 따랐지만, 그 행운을 선택한 사람은 자기라고 굳게 믿었다. …그녀는 그가 마술사와 같은 멋진 솜씨로, 그러니까 손가락 끝으로 거의 자기를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마치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이 자기 옷을 하나씩 벗기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음악 가족인 이 여성의 남편은 각광 받는 지휘자이고 아들도 첼로 연주자다. 아나 막달레나 바흐라는 이름 또한 마르케스가 좋아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아내 이름에서 착안했다. 이 여성의 딸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누리지만 엉뚱하게도 수도원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엄마가 만류해보지만 소용없다. 딸은 정작 수도원에 들어가는 캐릭터인데 엄마는 매년 섬을 방문해 그날 만큼은 최대한의 자유 혹은 일탈을 도모한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과감한 시도가 매년 펼쳐지거니와, 그 과정은 아무리 암세포와 알츠하이머까지 방해를 해도 마르케스의 공력이 쉬 바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바람둥이 남편과 일견 무탈하게 살아가는 아나 막달라나는 '궁극의 사랑'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깨닫고야 마는 결말을 보여주면서 사랑이라는 것의 덧없음을, 그 불구의 운명을 쓸쓸하게 덧칠한 맥락으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송 교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평생 고독을 생각하면서 보냈고, 그 수수께끼에 대한 해결책과 답을 사랑에서 발견했다"면서 "이 마지막 소설의 아이러니는 사랑에 대한 그의 마지막 말이 거부당했고, 그렇게 십 년 동안 침묵과 외로움의 운명을 선고받았다가, 이제야 그 질곡에서 벗어나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라고 후기에 밝혔다.
'비로소 자기 어머니가 매년 섬으로 세 번, 심지어 네 번까지 방문한 비밀과 낯선 땅에서 자기가 나쁜 병에 걸려 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곳에 자기를 묻어 달라고 결정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딸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육 년 전에 자기가 여행했던 바로 그 열정을 가지고 여행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여행 이유가 자기와 같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슬픈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삶의 기적은 죽은 어머니의 삶을 계속하는 것이었음을 불현듯 깨닫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백년의 고독'에서도 '레베카'라는 여자 아이는 부모의 뼈를 넣고 다녀서 딸가닥 딸가닥 딸가닥 소리가 나는, 천막용 천으로 만든 자루를 들고 마꼰도에 나타났다. '그때까지 죽은 사람이 없던 마꼰도에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에 매장할 적당한 장소를 찾을 때까지 뼈가 들어 있는 자루를 집에 보관하기로 했는데, 오랫동안 그 자루는 알을 품은 암탉이 꼬꼬꼭 꼬꼬꼭 하고 울듯 항상 뼈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사방에서 사람의 발길에 채이거나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굴러나오기 일쑤였다.' (조구호 번역 '백년의 고독')
마르케스의 첫 소설 '썩은 잎'에서도 퇴역한 대령의 딸 '이사벨'이 죽은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목이 나오거니와, 마르케스가 생전에 모친과 나누었던 유별나게 깊은 교류가 배어든 바탕일 것이라고 송 교수는 보았다. 마술적 판타지를 구사하지만 정작 마르케스는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 작품은 결코 쓰지 않았다고 송 교수는 말한다. 마지막 유작에도 흔적을 남긴 모친과의 교감, 생과 사를 관통하는 모티브로서의 유골과 같은 비중으로 그려내는 쾌락과 욕망은 마르케스가 평생 그려온 벽화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 셈이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두 아들의 변.
우리는 독자들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머지 모든 이유보다 우선시하면서 가보의 뜻을 어기기로 했습니다. 독자들이 이 작품을 기린다면, 가보 역시 우리를 용서할 겁니다. 우리는 그걸 굳게 믿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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