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시즌 2'…대주주 장악력 약화, 경영권 지각변동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 2025-07-10 14:52:26
배임죄 우려 감안해 패키지로 이달 통과 추진
집중투표제 의무화, 소액주주도 이사 선임 가능
삼일 "경쟁력 강화 위한 기회로 인식해야"
추가적인 상법 개정이 다가오고 있다. 여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에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담은 개정안을 이달 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한다. 개정안은 대주주의 이사회 구성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기업 지배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해 주주들의 이익을 높여주는 법안도 발의됐다. 기업들은 새 정부 출범 후 몰아치는 바람에 반발하고 있으나 역부족으로 보인다. 길게 봐서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10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경제계와 오는 11일 공청회 등에서 의견을 수렴해 상법의 보완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1일 국회 법사위의 공청회를 기점으로 다시 상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당 '코스피5000특위' 오기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지난 3일 상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도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상법 개정으로 소송이 남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감안해 배임죄 요건 완화도 검토하되 추가 상법 개정은 이달 중 매듭짓는다는 방침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단순투표제와 달리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를 3명 뽑는다면 100주를 가진 주주가 300표를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소액주주들도 원하는 후보에 표를 몰아줘 선임할 수 있다. 현행 상법에도 가능하나 회사가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도록 해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많다.
오 위원장은 "도입 여부를 회사 재량에 맡겨뒀더니 2023년 기준 대규모 상장회사의 약 90%가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다"며 "그래서 대규모 상장회사에 대해서만이라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독립성을 확보하는 제도인데 민주당은 현행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려 한다.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는 역할을 보다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시민단체들은 감사위원 전원의 분리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8개 경제단체들은 지난 3일 "국회에서도 경제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필요 시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배임죄 개선,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등에 대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희망과 달리 또 다른 타격을 입게 된 셈이다. 한경협과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매출액 상위 상장사 112곳을 대상으로 지난 2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내용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40.2%)에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34.8%)가 꼽혔다.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자사주의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안은 전날 민주당 김남근 의원이 발의했다. 원칙적으로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보유를 허용하되 반드시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자사주 취득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었으나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허용됐다. 김 의원은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해 신주 배정을 허용하고 있어 이를 통해 지주회사로의 전환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부당하게 확대하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이 발생하고 있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에도 태광산업이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3200억 원 규모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해 논란이 일었다.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 이사들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발행 움직임은 일단 중단된 상태다.
제약사인 파마리서치는 지난달 투자 담당 존속법인과 에스테틱 사업 신설법인으로 나누는 인적분할을 하기로 했으나 지난 8일 철회했다. 지배주주 이익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물러섰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부의 증시 밸류업 정책에 역행하는 듯한 낙인 효과를 우려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초기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자칫 반기를 드는 사례로 찍혀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차제에 기업들이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삼일회계법인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거버넌스 부문 정책 변화는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도록 전환하려는 전략"이라며 "중장기적으로 투자자 신뢰 확보, 기업 가치 상승,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은 ESG 중 G(거버넌스)가 빠져 있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며 "기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회로 인식하고 책임 있는 거버넌스 확립을 통해 지속가능경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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