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휠체어 논란, 다음 수순은 침대 출석?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5-07-02 14:53:48
휠체어 출석 원조, '머슴 망언' 정태수 한보 회장
재벌 총수 등 유력자들, 불리할 때 휠체어 활용
휠체어 출석에서 진화한 침대 출석 사례도 등장
김 여사, 특검에 어떤 모습으로 출석할지 관심사
"자금이라는 것은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어떻게 압니까."
1997년 4월 7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한 국회의원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국회의원이 한보 임원의 검찰 진술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자 대놓고 받아친 것이다.
정 회장 발언은 많은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재벌 회장이 자신을 주인으로 규정하면서 임원을 머슴으로 차별하고, 또 그런 발언을 TV로 생중계된 국회 한보사건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거리낌 없이 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정경유착 역사를 살필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노태우 정부 최대 권력형 비리로 불리는 1991년 수서 비리(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의 주역이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의 서막을 연 한보그룹 부도 사태도 정태수식 정경유착의 산물이었다.
그해 1월 한보그룹 부도 후 정 회장은 구속됐다. 그런데 4월 28일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3주 전 '머슴 망언'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생중계를 지켜본 수많은 시민의 염장을 지르던 때와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 후 재벌가 인사를 비롯한 유력자 다수가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거나 수사 기관에 출두하는 등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공개 행보를 해야 할 때 휠체어를 애용하는 장면이 되풀이됐다. 정 회장은 이른바 '휠체어 출석'의 원조로 꼽힌다.
사례를 몇 가지만 되짚어보자. 2006년 비자금 조성, 횡령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했다. 2005년 안기부 X파일이 공개된 후 은밀히 출국해 도피 논란이 불거졌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듬해 귀국할 때 휠체어를 타고 공항에 나타났다.
2007년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항소심 법정에 나왔다. 김 회장은 이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보복 폭행 사건으로 구속돼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상태였다. 외화 밀반출 등 혐의로 구속됐던 1993년에 이은 두 번째 구속이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서 세간에서는 '재벌 총수는 체어맨(chairman)이 아니라 휠체어맨(wheelchairman)'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영국 언론 파이낸셜타임스는 2007년 "한국 재벌 총수들은 곤란할 때마다 휠체어를 탄다"고 비꼬고 그런 재벌 총수들에게 솜방망이 처분을 하는 사법 제도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휠체어 출석보다 '진화'한 형태도 출현했다. 이른바 '침대 출석'이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어머니이자 비자금 의혹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의 2011년 서울서부지검 출석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이 상무는 응급차를 타고 지검에 도착했다. 그리고 병원 담요로 몸을 덮고 환자 이송용 간이침대에 누운 채 나타났다. 건강 문제를 이유로 소환에 거듭 불응하다가, 검찰이 강제 소환 가능성을 내비치자 그렇게 출석한 것이었다.
검찰은 언론에 "(이 상무가) 의자에 꼿꼿이 앉아 조사에 무리 없이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침대 출석의 진정성을 일축한 셈이다.
김승연 회장도 침대 출석을 한 적이 있다. 2012년 배임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세 번째로 구속된 김 회장은 이듬해 호흡기 호스를 꽂고 간이침대에 누운 상태로 구급차를 타고 항소심 법정에 출석했다.
근래 유력 인사의 휠체어 행보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주인공은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다.
주가 조작, 공천 개입 등 숱한 의혹에도 검찰의 출석 요구를 거부한 김 여사는 지난달 16일 우울증을 이유로 돌연 입원했다. 그리고 11일 후인 지난달 27일 휠체어를 타고 퇴원했다.
하지만 동정적인 여론은 찾기 힘들다. 입원도, 퇴원도 쇼 아니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국내에서 활동하며 외신에 기고하는 라파엘 라시드 기자는 김 여사 퇴원을 전하며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수사를 받으면 누구나 휠체어 단계를 거친다"고 논평했다.
김 여사는 특검의 소환을 앞두고 있다. 앞서 김 여사 측은 "특검의 정당한 소환 요청에 대해 성실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소환 요청에 부당한 부분이 있다'며 불응할 여지를 뒀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끝까지 거부하며 버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여사는 어떻게 출석할까. '자신이 대통령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던 윤석열 정부 시절 같은 모습일지, 아니면 휠체어 또는 침대 출석 같은 모습일지 지켜볼 일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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