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종묘?…세계유산 취소 실제 사례 살펴보니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5-11-13 14:55:13

[김덕련의 역사산책 38] '초고층 가능' 서울시 고시 논란
목록 삭제 사례는 3건…문화유산 2건, 자연유산 1건
오만 아라비아오릭스 보호 구역, 최초로 등재 취소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 다리 건설로 자격 박탈돼
영국 '리버풀, 해양 무역 도시', 재개발로 지위 상실

서울 종로구 종묘 인근에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높이 기준을 2배 가까이 올린 서울시 고시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종묘를 돋보이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초고층 건물로 인해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만만찮다. 

 

▲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종묘 주변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뉴시스]

 

세계유산 제도는 1972년 도입됐다. 세계유산은 세계문화유산, 세계자연유산, 세계복합유산 세 가지로 나뉜다. 그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가 목록에서 삭제된 사례는 3건이다. 2건은 종묘와 같은 세계문화유산, 1건은 세계자연유산이 삭제 대상이었다.

등재가 취소된 첫 번째 사례는 오만의 아라비아오릭스 보호 구역이다. 영양의 일종인 아라비아오릭스는 전설 속 동물인 유니콘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아라비아오릭스 보호 구역은 1994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런데 오만 정부가 2007년 1월 보호 구역 면적을 90%나 줄였다. 그러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 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이 보호 구역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또 오만 정부가 직접 해당 구역의 세계유산 목록 삭제를 요청했다. 세계유산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으나 속내는 달랐다. 석유였다. 오만 정부는 보호 구역 내에서 석유 탐사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07년 이 보호 구역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가능케 했던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96년 450마리였던 아라비아오릭스는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인해 65마리로 급감했다.

두 번째 사례는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다. 드레스덴을 관통하는 엘베 강을 따라 궁전, 성 등의 건축물과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18km 정도 구간이었다.


이 계곡은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레스덴 지방 정부가 세계유산 구역 내에서 엘베 강을 가로지르는 대형 다리 건설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찬반 대립이 첨예하자 드레스덴 지방 정부는 2005년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자의 67.9%가 다리 건설에 찬성했다. 유네스코 측은 공사 추진 중단을 드레스덴 지방 정부와 독일 연방 정부에 거듭 요청했다. 이 공사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건설 반대 쪽은 강바닥을 파서 터널을 만드는 대안을 제시했다. 드레스덴 지방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06년 이 계곡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세계유산 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독일 연방 정부는 어떻게든 갈등을 해소해 세계유산 지위 박탈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드레스덴 지방 정부는 다리 건설을 밀어붙였다. 2008년 다리 기반 시설 공사가 완료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09년 드레스덴 엘베 계곡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했다. 등재 취소 후 현지 언론의 설문 조사에서 57%는 '세계유산 지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리 건설 찬성 여론이 높았던 것과 관련해 두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이 사업 목적에 교통난 완화라는 공공성이 일정 부분 있었다는 점이다. 상업용 부동산 개발을 앞세운 사업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다리 건설을 강행한 쪽이 등재 취소를 자초하긴 했지만 주민 투표 등 기본적인 여론 수렴 절차는 밟았다는 점이다.

드레스덴 사례는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독일 쾰른대성당 사례와 대비된다. 이 성당은 인근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2004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2006년 쾰른 시에서 성당 주변 건물 높이를 제한한 덕분에 등재 취소 위기에서 벗어났다.

세 번째 사례는 영국의 '리버풀, 해양 무역 도시'다. 리버풀이 18~19세기 세계 무역의 중심에 있던 항구 도시였다는 점 등을 높게 평가받아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12년 세계유산위원회는 '리버풀, 해양 무역 도시'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훼손을 초래할 수 있는 리버풀 부두 재개발 계획에 우려를 표하며 리버풀 시 당국의 강행 시 세계유산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영국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세계유산 지역 안팎에 대규모 축구 경기장을 짓는 것을 포함한 상업 지구 건설 사업 등을 계속 추진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21년 '리버풀, 해양 무역 도시'의 세계유산 자격을 박탈했다.

세 사례를 통해 등재 때 약속한 사항을 준수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세계유산 지위 유지의 관건임이 확인된다. 이 점은 종묘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구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근 지역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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