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광복군] ⑥ "일본군 몰아내기 대성공"…미얀마 탈환전 대활약
서창완
seogiza@kpinews.kr | 2023-11-23 16:44:17
공작대, 양곤상륙작전과 만달레이 언덕 공방전 등 격전지 곳곳 참여
한국 언론 최초 광복군-영국군 연락장교 베이컨 대위 묘 찾아 추모
침략국 일본의 쓸쓸한 위령비 보며 항일 의미 다시금 되새겨
78년 전인 1945년 당시 이곳에서 인면전구공작대(이하 공작대)는 사선을 오갔다. 그 한 해 전인 1944년에도 그랬다.
오늘날의 인도 임팔 일대와 미얀마 서북부에서 2년 가까이 일본군과 싸워온 공작대는 1945년 드디어 미얀마 탈환전에 참전한다. 당시 일본군은 임팔 전투에서 영국·인도연합군에 대패하고 미얀마로 물러난 상태였다.
공작대는 어땠을까. 임팔의 대충돌이 끝난 뒤 이들은 인도 콜카타에서 1개월 정도 쉬고 다시 전장에 뛰어들었다. 1945년 5월 연합군이 양곤 탈환에 성공하면서 우리 공작대 대장정은 화려하게 끝을 맺는다.
양곤에서 택시로 40분 거리인 타욱짠 전쟁 묘역(Taukkyan War Cemetery). 이곳에는 당시 공작대와 연락 업무를 맡았던 영국 특수작전집행부(SOE, Special Operations Executive) 소속 롤랜드 클린턴 베이컨(Roland Clinton Bacon) 대위 추모비가 있다.
9월 21일 묘역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 19 문제였으나 2021년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 영향도 있는 듯했다. 관리인은 UPI뉴스 취재진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문을 열어줬다.
'18.D.18.' 전사자 목록에 적힌 베이컨 대위 추모비 위치다. 공식 사망일은 1945년 3월 15일로 양곤 탈환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 5장 8절 문구다. 베이컨은 1931년 한국에 와 10년간 감리교회 선교사, 교사로 활동했다. 제2의 고향인 한국을 사랑했기에 임팔 전투에서 한국인 동지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 그리고 일본군에 맞서다 아쉽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노고에 우리 정부도 감사를 표했다. 2020년 8월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정부는 베이컨에게 훈장을 추서했다. UPI뉴스는 한국 언론 최초로 베이컨 대위 묘를 찾아 추모했다.
당시 공작대원들이 3개 팀으로 나뉘어 미얀마 탈환전에 투입됐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확인된다. 취재진은 먼저 양곤상륙작전에 참여한 공작대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 위해 여객선을 타고 양곤강을 건넜다.
양곤 탈환전 당시 영국군과 함께 양곤강 하구를 통해 상륙작전을 펼친 공작대는 문응국, 송철 대원이다. 양곤 시가지로 들어오기 위해 현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서 상륙작전을 펼쳤을 것으로 보인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북쪽으로 1㎞ 남짓한 거리에 양곤 시청이 있다. 그 우측 800m에 있는 건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얀마에 주둔한 영국군사령부로 쓰인 곳이다. 그곳은 현재 양곤시 사무국(The Secretariat Yangon)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에 개방돼 있다. 1896년부터 미얀마를 식민 지배한 영국이 1900년대 초반 지은 건물이다.
양곤 사무국에서 북서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있는 랭군 전쟁 묘지(Rangoon War Cemetery)는 영국이 1945년 5월 양곤을 탈환한 직후 묘지로 사용한 장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숨진 영국군 1300여 명의 비석이 놓여 있다.
만달레이는 양곤에 이어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양곤에서 비행기로 50분 거리에 있다. 한지성·박영진·김성호 대원은 미얀마 중북부에서 남진하는 부대에, 최봉진·김상준·이영수 대원은 미얀마 중부 지역을 우회해 북상하는 부대에 편성됐다.
만달레이 궁성은 양곤 탈환 전까지 영국군사령부로 쓰인 곳이다. 유명 관광지이기에 군부 쿠데타 이후 감시가 삼엄하다. 총 8㎞ 둘레 정사각형 모양인 만달레이 궁성은 양측 간 전투로 대부분 파괴돼 전후 복구됐다.
궁성 내부 안내소 직원은 취재진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실된 영국군사령부 건물을 묻자 가장 높은 누각인 그레이트 파빌리온(The Great Pavillion) 우측 잔디밭을 알려줬다. 유리 궁전(Glass Palace Apartment)이란 명칭의 건물 오른편으로, 현재는 빈터만 남아 있다.
궁성 중앙부에서 나와 차를 타고 좀 더 이동해 포로수용소나 처형 장소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도 둘러봤다. 궁성 관리인의 말이지만 정확하게 진위를 확인하긴 어렵다. 건물 내 미얀마어로 적힌 비석에 1200년대 처형기록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만달레이 언덕에서는 일본군 위령비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수타웅피에 파고다에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면전방면피아전몰제정령(緬甸方面彼我戰沒諸精靈)'이라고 적힌 비석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2002년 2월 남태평양우호협회가 건립한 것이다. 전쟁에서 희생된 일본인, 미얀마인, 영국인들 영혼이 편안하게 쉬길 열망하는 기원문이 적혀 있다.
공방전 때 격전지 중 하나였던 밍에(Myitnge)에도 일본군 위령비가 있었다. 만달레이 공항과 언덕의 중간쯤 위치한 밍에라는 도시의 한 사원에 2개의 위령비가 들어서 있다.
사원에서 만난 에이따뤽 스님은 "원래 방치돼 있던 비석을 지금은 돌아가신 스님이 일본인들과 함께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고 알고 있다"며 "왼쪽은 일본인, 오른쪽은 미얀마인과 함께하는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곳도 사실상 방치돼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쓸쓸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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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뉴스 / 탐사보도부 서창완 기자 seogiz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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