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국가유공자 취소 검토" 지시한 박진경은 누구?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5-12-16 11:05:01

보훈부, 국가유공자 등록 결정…근거는 무공훈장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 부정"…제주 지역 분노
'4·3사건 초기 강경 진압 밀어붙여' 평가 지배적
"박 대령, '제주도민 30만 희생시켜도 무방' 발언"

4·3사건이 발생한 1948년에 제주도 현지에서 진압 작전을 펼친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한 국가보훈부 결정이 논란이다.

보훈부는 지난 10월 박 대령 유족이 낸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승인했다. 과거에 박 대령이 무공훈장을 받았다는 것이 핵심 근거였다. 지난달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권오을 보훈부 장관 직인이 찍힌 국가유공자 증서를 유족에게 전달했다.

이 사실이 10일 알려지자 제주도 지역 사회에서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자격 즉각 취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 4·3사건 관련 단체들로 이뤄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보훈부의 이번 결정이 "수많은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 대통령은 14일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를 검토하라고 보훈부에 지시했다.

 

▲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등 16개 단체가 2022년 3월 제주시에 있는 박진경 추도비 주변에 설치한 감옥 형태 조형물. 그해 5월 제주도보훈청은 '박진경 추도비를 역사의 감옥에 가둔다'는 의미를 갖고 있던 이 조형물을 철거했다. [뉴시스]

 

강한 반발이 인 것은 박 대령이 4·3사건 초기에 강경 진압을 주도해 무고한 제주도민을 다수 희생시킨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2003년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자.

1948년 4·3사건이 일어났을 때 제주도에는 조선경비대 제9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조선경비대는 국군의 모체가 되는 조직이었고, 9연대장은 김익렬 중령이었다. 그해 5월 6일 김 중령은 연대장에서 전격적으로 해임됐다. 김 중령은 4월 3일에 봉기한 무장대와 협상해 유혈 사태 확산을 막으려 노력하다가 미군정 눈 밖에 난 상태였다.

강경 진압을 결정한 미군정은 박진경 중령을 후임 9연대장으로 발탁해 제주도로 보냈다. 박 중령은 영어에 능통하고 미군정 인사들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으로서 제주도에 주둔했던 경험도 연대장 발탁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얼마 후 부대 편제가 바뀌면서 박 중령의 보직은 제11연대장으로 변경됐다. 미군정은 박 중령이 수행한 진압 작전 결과를 흡족하게 여겼다. 6월 1일 박 중령은 선임자를 앞지르며 대령으로 특진했다. 미군정이 배려한 결과였다. 미군정 고위층이 서울에서 제주도로 직접 내려와 박 연대장에게 대령 계급장을 달아줬다는 얘기도 있다.

같은 달 18일 박 대령은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를 비롯한 자신의 부하들에게 암살됐다. 박 대령의 작전 방침에 대한 부하들의 불만이 쌓여 벌어진 일이었다. 2년 후인 1950년 12월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일각에서는 미군정을 흡족하게 한 동시에 상당수 부하들의 반발을 초래한 박 대령의 작전 방침을 옹호한다. 당시 박 대령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채명신은 박 대령이 양민을 죽음에서 구출하려 했고, 토벌보다는 입산한 주민들의 하산에 작전의 중점을 뒀다고 2001년에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과 달리 박 대령이 연대장으로서 미군정 입맛에 맞는 강경 진압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임 9연대장인 김 중령은 박 연대장이 취임식 때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했다고 증언했다. 박 대령 참모였던 임부택 대위도 박 대령이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재판정에서 진술했다. 김 중령과 임 대위는 박 대령 암살과 무관한 사람들이다.

박 대령을 암살한 부하들은 재판정에서 "박 대령은 동포를 학살하고 진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대원들이 아버지 시체를 껴안고 있는 소년을 죽인 사례 등을 제시하며 무고한 민간인 살상을 다수 초래한 박 대령의 토벌 작전을 막는 것이 암살 동기였다고 밝혔다.

강경 진압은 인명 살상만이 아니라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 대한 무차별 연행도 초래했다. 박 대령 피살 이틀 전인 1948년 6월 16일 작성된 미군 비밀 보고서에는 이 무렵 전개된 진압 작전으로 3000여 명이 체포됐고 575명이 제주의 포로수용소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박 대령의 토벌 작전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중산간 마을을 누비고 다니면서 불과 한 달 사이에 수천 명의 '포로'를 양산해낸 박진경 연대장의 작전은 주민들을 더욱 산으로 도망치게 했고, 자신은 암살당함으로써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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