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의 주마등] 흑백세상 속 흑백요리사 (*스포주의)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 2024-10-04 14:17:30
뻔할 줄 알았던 대결, 블라인드 심사 하니 예측 빗나가
'흑수저' 무조건 질거란 편견 부끄러워져, 삶의 태도 반성
▶보기도 전에 뻔하다고 생각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유행이 지난지 오래였다. 심심했던 어느 날, 넷플릭스의 '세뇌 광고' 덕에 무심코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6편을 내리봤다. 다 보고 나서야 '아껴볼걸'하고 후회했다. 그다음부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이야기다. '또 백종원?'이던 생각은 '역시 백종원!'이란 생각으로 변했다. 스케일이 남다른 '요리 전쟁' 덕분에 내 일상이 '맛있어지고' 있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큰 틀은 '백(白)수저 '와 '흑(黑)수저'의 대결이다. '백수저'는 한식·중식·일식 유명 셰프 20명으로 구성됐다. 방송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스타 요리사부터 대한민국 명장,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까지 포함돼있다. '심사위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화려한 라인업이다. 반면 '흑수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재야의 셰프들이다. 급식 조리사부터 술집 사장, 만화책으로 요리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흑수저는 그 안에서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린다. 흑수저 80명은 처음부터 고난이다. 20명 안에 들기 위해 깐깐한 심사를 받는다. '흑수저' 아닌 '흙수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상대가 될까 싶었다. '흑수저'들이 이미 실력을 입증한 유명 셰프들과 싸울 수 있을까 하는 '편견 어린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싸움이 된다. 흑수저 20명과 백수저 20명의 일대일 대결 심사는 특이하게 진행됐다. 심사위원인 백종원·안성재가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맛'을 본다. 음식의 외형을 보지 못하고 무엇인지도 모른 채 먹는다. 심지어 누가 만든 건지도 모른다. 오로지 '혀'로만 심사한다. 그러니 게임이 된다. 보이지 않으니 다른 게 보인다. '흑수저'가 마냥 지기만 하진 않는다.
▶나도 모르게 '흑수저'를 응원하게 된다. 물론 '백수저'의 연륜과 실력을 존경한다. 그들도 힘들게 그 자리에 올라갔을 것이다. 흑수저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흑수저에게 끌린다. 오르고 올라 정상을 찍는 걸 보고 싶다. 어쩌면 자수성가가 어려워진 우리 흑백 사회와 다른 결말을 바라는건지도 모르겠다. '언더독 서사'는 이미 만들어졌다. 흑수저 중 한 명은 거듭되는 탈락 위기에도 계속 살아남아 1등으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흑백요리사'를 보면 볼수록 내가 얼마나 편견에 찌들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처음에 흑수저를 보며 "당연히 지겠지"라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내 삶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항상 겉으로만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내 마음의 '흑백 논리'는 '내 눈'이 만든 게 아닐까 싶다. 가끔 내게도 '안대'가 필요한 거 같다.
KPI뉴스 /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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