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제는 '인도 한류 본거지', 오늘은 '국제 골칫덩어리'

송창섭

realsong@kpinews.kr | 2023-11-17 15:16:30

[인도 대표 분쟁지 마니푸르 임팔에 가다]
교전 흔적 곳곳에…불탄 집·차 길따라 방치
마을 들어가려면 인도군 검문소 6번 통과해야
민병대 조직한 주민들 10대도 총 들고 싸워
주민 "정부가 너무 무관심… 분쟁 3년 갈 것"

미얀마와 국경을 맞댄 인도 동북부 마니푸르(Manipur) 주도(州都) 임팔(Imphal). 지난 5월3일 시작된 힌두계 메이테이족과 기독교계 쿠키족 간 충돌로 상처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시 외곽에는 검게 탄 집과 차들이 길 따라 방치돼 있다. 논밭 곳곳마다 포대 자루로 쌓아 올린 간이초소가 있다. 

 

▲ 지난달 30일 인도 마니푸르주 임팔 시내에서 추라찬푸르로 향하는 티딤 로드 양편으로 불에 탄 집이 방치돼 있다. [송창섭 기자]

 

이번 분쟁은 메이테이족이 지난 5월3일 쿠키족을 급습하면서 촉발됐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추라찬푸르(Churachanpur)에 있는 교회 40여 개가 메이테이족 공격으로 불탔다. 강간과 고문에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잔혹한 살인까지 벌어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폭력 사태로 약 6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는 인도 정부가 180여 명이라고 밝혔으나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500명이 넘는다. 대다수가 쿠키족이다. 

 

UPI뉴스는 지난달 30일 추라찬푸르로 향하는 티딤 로드(Tiddim Road)를 찾았다. 국내 언론으로 처음이다.

 

추라찬푸르는 마니푸르에서 경계가 가장 삼엄한 곳이다. 미얀마 서북부인 아라칸 지역과 연결되는 티딤 로드 관문 격인 이곳은 이번 충돌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쿠키족 본거지다.

 

'마니푸르 사태'는 우리에게 덜 알려졌지만 지난 5월 CNN,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과 BBC, 로이터 등 유럽언론은 낙후된 인도 인권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마니푸르는 파키스탄‧중국과 갈등 중인 카슈미르와 함께 인도 대표 분쟁지로 꼽힌다.

 

임팔은 우리와 인연이 깊다. 2000년대 초 마니푸르 주정부는 일시적으로나마 지역 내 힌디어 콘텐츠 방영을 금지한 적이 있다. 그 대안으로 찾은 것이 아리랑TV와 KBS월드였다.

 

전파를 타고 흘러간 한류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니푸르는 한류가 '대박'을 치며 인도 전역으로 확산한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임팔은 인도 내 '작은 한국'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문화적 거리가 우리와 가깝다.

 

▲ 지난달 30일 인도 임팔에서 티딤 로드를 타고 추라찬푸르로 향하는 길에 설치된 바리게이트. 이를 지나면 6개의 검문소가 나타난다. [송창섭 기자]

 

UPI뉴스 취재진이 경계가 심한 추라찬푸르로 진입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군 당국은 외부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차를 타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록탁 호수(Lotak Lake)를 출발해 20분쯤 달렸을 때 첫 번째 검문소가 나타났다. 현지시간 오후 1시 50분쯤이었다. 방탄복을 입고 소총을 어깨에 멘 젊은 군인이 방문 목적을 물었다. 검문소에 앉아 있는 나이 든 군인은 여권 정보를 수기로 작성했다. 그사이 젊은 군인이 트렁크와 보닛을 열고 차 안쪽을 살펴봤다.


취재진이 지나쳐 온 방향 50m 남짓 떨어진 초소에 있던 경찰 5명도 다가왔다. 이들도 국적과 방문 목적 등을 세세하게 캐물었다. 맞은 편에 막 분쟁지를 빠져나온 글로벌 NGO(비정부기구) '국경없는 의사회'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검문소는 1분 거리마다 한 개씩 있었다. 모든 검문소가 처음 실시하는 검문인 것처럼 꼼꼼하게 점검했다. 네 차례 검문을 마치고 나서야 겨우 추라찬푸르 경계로 들어올 수 있었다.


검문을 통과하는 동안 도로 양쪽으로는 불에 검게 그을린 자동차와 외벽이 와르르 무너진 건물이 연달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검문소 외벽에 그려진 마하트마 간디 초상화도 불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추라찬푸르에 들어온 뒤 검문소 2개를 더 거쳤다. 6개 검문소를 지나고 나니 오후 2시 39분. 고작 2km 남짓을 통과하는데 49분이 걸렸다. 평소면 10분 내 지나칠 거리다.


여기서 2분 남짓 더 달리자 이번에는 자치 민병대 바리케이트가 보였다. 추라찬푸르 시내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관문이었다. 촘촘히 박힌 철침 위로 플라스틱 페트병이 꽂혀 있었다.


10대로 보이는 현지 여성들이 둘러앉아 방문 이유를 물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또 검문소가 있었다. 자루에 흙을 채워 쌓은 검문소 곳곳마다 총알 자국이 선명했다. 그 안은 짙은 색 선글라스를 쓴 10대 소년이 지켰다. 민병대 관리자로 보이는 그는 소총을 옆에 세워둔 채 담배를 입에 물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취재 목적을 설명하자 그는 약속되지 않은 방문은 허가할 수 없다며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최근까지 총격전을 겪어서인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듯했다.

 

▲ 지난달 인도 추라찬푸르로 향하는 티딤 로드 양편에 황폐해진 건물이 널려 있다. [송창섭 기자]

 

마니푸르 문제는 카슈미르보다 해법이 더 복잡하다. 마니푸르와 인도 본토는 각기 다른 역사,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양측 분쟁이 내정문제로 간주돼 국제사회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


1824년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마니푸르는 인도 땅이 아니었다. 영국에 강제 복속된 후 인도로 통치권이 넘어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부족 간 뿌리 깊은 갈등은 상존해왔다. 이번 사태는 그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유럽 등 서방국가 의회가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으나 사태 해결은 지지부진하다. 인도 정부가 어정쩡하게 대응하고 있어서다. 유럽 의회는 지난 7월 "인도 정부가 나서 부족 간 폭력을 멈추도록 하고 종교적 소수자를 보호하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냈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되레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9월 4일 "우리는 마니푸르 내 신체적, 성적 폭력과 증오심 표현을 근절하기 위한 인도 정부의 명백히 느리고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6월 미국 민주당 내 진보 성향 의원 일부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미 의회 연설 직전 마니푸르 사태를 거론하며 참석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분쟁 원인은 다양하다. 산악 지대 땅을 매입하는 인‧허가권을 놓고 메이테이족과 쿠키족이 참예하게 대립하고 부족 간 종교 차이도 갈등을 키웠다.

 

충돌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인도 정부는 분쟁지에 군 병력을 보내 충돌을 막는 게 고작이다. 사태 발생 후 모디 인도 총리는 단 한 차례도 해당 지역을 찾지 않았다.


정부의 미온적 대처로 갈등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취재진이 추라찬푸르를 찾은 다음 날 추라찬푸르 동쪽으로 130㎞ 떨어진 미얀마 국경지대 모레(Moreh)에서 한 쿠키족 저격수가 메이테이 경찰을 쏴 1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지난 5월 사태 후 사흘 만에 가까스로 콜카타(캘커타)를 거쳐 수도 뉴델리로 피신한 추라찬푸르 출신 쿠키족 A씨는 "주정부에 메이테이족 출신들이 많아서인지 정부와 싸우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며 "인도 정부의 관심도 받지 못해 이 사태가 꽤 오래 갈 것 같다"고 걱정부터 했다. 현지 주민은 이번 사태가 최소 3년은 갈 것으로 본다.


"Prepare to meet thy God."(너의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성경 아모스서 4장 12절 구절이다. 기독교계가 대다수인 쿠키족 마을답게 성경 구절이 쓰인 커다란 마을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불안과 공포가 일상이 된 추라찬푸르에는 언제 평화가 찾아올까.


마니푸르주 임팔(인도)=탐사보도부 송창섭‧서창완 기자 seogiz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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