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금융학교] 거대한 물결 '스테이블코인', 성공하려면

차현진 객원논설위원

cha@kpinews.kr | 2025-07-10 14:29:39

이재명 대통령이 '하얀 코끼리'를 받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치 곤란한 선물이다. 9월 3일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치러지는 제80차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달라는 중국의 초청이다. 하지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시진핑 주석부터 찾아가기는 껄끄럽다. 10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 우방국가로서는 유일하게 그 행사에 참가했다가 그 뒤 한미 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그런데 한 달 뒤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의 참석을 바란다면, 중국의 제안을 모른 척하기도 어렵다.


외교 문제와는 달리 금융 문제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눈치 보지 않는다.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선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전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5년 전부터 CBDC를 발행하고, 지금은 이를 외국에 확산시키려고 한다. 동시에 민간이 발행하는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견제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연준의 CBDC 발행 연구를 금지했다. 대신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에 엄청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후보 시절 가상자산산업 육성을 약속했고, 지금 우리 정부와 국회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지원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CBDC는 2017년 말 BIS(국제결제은행) 산하의 CPMI(지급결제 및 시장인프라 위원회)가 만든 개념이다. 그 회의에 참석했던 필자는 처음부터 회의적이었다. 미 연준 관계자도 공감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CBDC 발행은 금융시스템의 명백한 후퇴다. 중앙은행이 일반인에게 CBDC를 발행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은행이 일반인과 예금 거래를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핀란드중앙은행은 1990년대 초 신용카드 형태의 CBDC(Avant 카드)를 발행했다가 3년 만에 포기했다. 중앙은행이 선불충전카드 사업을 통해 민간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둘째, 기술혁신 면에서는 중앙은행보다 민간 IT 기업이 절대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언젠가 실물화폐가 사라지고 전자화폐가 등장한다면,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이 발행을 담당하는 것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합당하다. 블록체인기술과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96년 미국 재무부가 저명 경제학자들과 논의해서 내린 결론이다('Toward Electronic Money and Banking: The Role of Government').
 

▲ CBDC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던 BIS 자료의 일부. '돈 꽃(money flower)'이라는 그림의 한가운데 CBDC가 있다. [BIS 'central bank cryptocurrencies(2017)' 캡처]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기관 간 CBDC(wholesale CBDC)라는 개념이다. 중앙은행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상업은행을 상대로만 CBDC를 발행하고, 상업은행이 그것을 바탕으로 민간에게 다시 토큰예금을 발행하는 모델이다.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서 중앙은행과 민간의 공생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극히 중앙은행 중심적인(통화주의적) 발상이다. 상업은행이 중앙은행한테 CBDC를 공급받기 전에 스스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도 있다. 바로 그것이 최근 한국은행이 2단계 CBDC 실험을 중단한 이유다. 상업은행들이 한국은행의 CBDC 실험에 들러리 서기를 중단하고 자신들의 수익 모델을 직접 모색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은행이 1년 이상 준비했던 '프로젝트 한강'(디지털화폐 테스트)은 스테이블코인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자격과 감독 권한을 두고 제2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할 것을 기대하는 정부와 IT업계는 발행 자격을 넓히려고 한다. 반면, 한국은행을 포함한 은행계는 일단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자격을 은행으로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을까?


▲ 스테이블코인 관련 정부·여당 vs 한국은행 입장 차이. [KPI뉴스 편집부]

 

지금 모든 사람이 상상하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의 상품권이나 선불전자지급수단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안전하다. 어음이 아니라 수표에 가까울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점이 중요하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원칙이 엄격히 적용되는 우리나라는 수표와 어음을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히 구분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처벌 수위도 다르다.

수표는 어음의 일종이다. 즉 수표는 은행이 지급인으로 지정된 어음을 말한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에서는 수표법이 따로 없으며, 어음법이 수표법을 겸한다. 부도가 났을 때 처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한국, 일본, 유럽 대륙에서는 제네바 협정(1930년)에 따라 어음법과 수표법을 따로 두고 있다. 수표는 현금에 버금가는 보편적 지급수단이므로 훨씬 엄격하게 발행과 유통을 통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부정수표단속법도 있다. 어음의 부도는 민사 재판을 통해 해결되는데, 수표의 부도는 엄중한 형사 처벌로 다스리는 것이다. 즉 수표를 부도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수표 금액의 10배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인이 발행한 수표가 부도나면, 대표 이외에 대리인(임직원)까지도 처벌받는다.

그렇다면, 은행계 스테이블코인과 비은행계 스테이블코인도 구분하는 것이 마땅하다. 은행계 스테이블코인은 기존의 자기앞수표와 마찬가지로 지급준비의무가 따르고, 예금보호제도의 적용을 받을 것이다. 반면 은행 이외의 자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에는 그런 의무와 보호장치가 없다. 그래서 기존의 상품권이나 선불전자지급수단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일 비은행계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 보편적 유통성을 부여하고 신인도를 높이려면, '(가칭) 부정 스테이블코인 단속법'과 같은 강력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 처벌이 빠진 보호는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

또한 제도의 주무부처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급수단마다 주무부처가 다르다. 상품권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용카드는 금융위원회가 관장한다. 반면 어음과 수표는 법무부가 관장한다. 보편적 지급수단일수록 상거래 질서 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상법은 법무부가 관장한다). 그렇다면 보편적 지급수단으로서 스테이블코인은 법무부가 관리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관해서는 엄격한 허가 절차와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제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니어스법(GENIUS Act)에 따르면, 은행이 아닌 자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는 재무부와 연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만장일치의 의결을 받는다. 상업은행 설립 인가보다도 훨씬 까다롭다. 설립 인가 절차가 까다로운 것이 관련 산업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코인런' 사태나 통화 주권의 잠식을 우려하고, 탈세와 자본유출의 가능성을 지적한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과장도 섞여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산업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면, 되는 일이 없다. 포르노 제작을 염려하여 카메라 생산과 영상물 제작을 금지하거나 통제하려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대책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으로 교환된 뒤 해외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1993년 8월 전격적으로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자금은닉과 탈세를 막는 중요한 조치였다. 마찬가지로 소유자 신원과 자금출처 파악이 부실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정부가 어느 때라도 유통과 매매를 금지해야 한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의 교환 비율이 안정적일 뿐, 교환 자체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국회와 정부가 그런 장치를 잘 고안하면, 자랑스러운 K-금융 사례로서 외국에도 모범이 될 것이다.

지금 스테이블코인의 거대한 파도가 닥쳐오고 있다. 외국의 동향만 살피거나 당장의 업계 이익과 여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리석다. 은행법, 어음법, 수표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기존의 금융법 체계와의 조화와 일관성 유지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세계의 모범이 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요컨대 더 넓은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용산과 국회는 긴 호흡으로 대응하시기를!

  

▲ 차현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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