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영생을 노리는 바이오 혁명, 과연 타당한가
KPI뉴스
go@kpinews.kr | 2026-03-12 13:34:25
오는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체력증강 약물을 먹고 출전해도 되는 스포츠 대회가 열린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를 기치로 내건 이 경기의 공식 명칭은 '강화 게임(Enhanced Games)'이다. 호주 출신의 벤처사업가 애런 디수자(Aron D'Souza)가 자신이 설립한 회사 이름을 그대로 따서 처음 개최하는 대회이다. 인간 능력을 인위적으로 강화하는 과학적인 보조수단을 숨기거나 금지할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허용해 새로운 스포츠 대회를 만들자는 역발상이다.
그는 2023년부터 기존 스포츠 규칙의 핵심인 '도핑 금지'를 아예 폐지하고, 대신 의학적 관리 아래 선수들이 약물·생명공학 기술을 적극 활용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도록 허용하자고 주장해왔다. 매스컴이 일명 '도핑 올림픽'으로도 부르는 이 경기의 주최 측은 현재까지 기록 비교가 명확한 수영, 육상, 체조, 역도 등 몇몇 분야에서 여러 명의 국제적인 스포츠 스타를 참가자 후보 목록에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종목별 우승자에게 최대 25만 달러(약 3억70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하고, 세계신기록 달성 시 최대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의 보너스까지 줄 계획이다.
대회 명분은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은 '강화 인간'이야말로 미래 트렌드이며, 인조 철인들이 겨루는 스포츠가 인류의 한계를 경신할 것이라는 논거이다. 최소한의 의료 안전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도 내걸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경기에서 금지된 경기력 향상 약물(PED·Performance Enhancing Drugs)을 모두 허용키로 한 대회 방침은 기성 체육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강화 게임이 공개된 직후 스포츠계는 즉각적인 거부 반응을 보였다. 가장 강한 반발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 나왔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도핑을 제도화하는 대회는 스포츠 정신을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체육인들은 첫 번째로 스포츠 윤리의 붕괴를 우려했다. 올림픽은 인간의 신체능력을 공정하게 겨루는 경기라는 철학 위에 세워졌다. 약물 경쟁이 허용되면 경기는 결국 '누가 더 강한 약물을 쓰느냐'의 경쟁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선수의 건강보호 문제다. 세계반도핑기구는 바디빌딩 등 과거 사례를 들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EPO, 성장호르몬 등은 심혈관 질환, 호르몬 이상, 정신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핑 경쟁이 합법화되면 선수들은 기록 경쟁 때문에 위험한 약물을 과도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셋째, 스포츠계 내의 불평등이다. 고가의 유전자 치료나 첨단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부유한 팀과 그렇지 못한 선수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스포츠에 미치는 악영향도 문제로 지적됐다. 강화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경우 젊은 선수들이 성적 향상을 위해 약물 사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찬성론도 만만치 않다. 기술지상주의자로 꽉 찬 실리콘밸리 투자업계는 이 프로젝트에 재빠르게 관심을 보였다. 피터 틸 등 전설적인 기술 투자자와 트럼프 주니어가 후원자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쟁은 더욱 커졌다. 특히, 최초 제안자인 디수자 CEO는 반대론자들을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로 비판하며 자신의 대회를 "과학 시대의 새로운 스포츠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논리는 명확하다.
첫째, 스포츠는 이미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고 있다. 탄소섬유 러닝화와 마찰감소 수영복, 스포츠 영양학, 고지대 훈련, 데이터 분석 등은 모두 인간 능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둘째, 투명성이 더 안전하다는 반박이다. 금지된 도핑은 오히려 음성적으로 이루어져 선수 건강을 위협한다. 셋째,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한 기록 경쟁은 새로운 스포츠 산업을 만들 수 있다. 강화 게임은 기존 올림픽을 대체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 강화 스포츠'란 별도의 리그를 창설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경주가 인간 달리기와 경쟁하지 않듯, '금지된 도핑을 공개적으로 허용하는 최초의 국제 스포츠 대회'라는 파격적 실험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고 강조한다. 넷째, 과학과 인간 진화의 실험을 통해 인류 복지에 기여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부 기술 낙관론자들은 강화게임이 유전자 치료, 재생 의학, 노화 연구 같은 분야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화게임 창설자의 의도가 내부적으로 영리사업 목적의 네거티브 마케팅임은 분명해 보인다. 홈페이지에서는 벌써 선수들이 복용할 체력강화 의약품을 전시, 예약 판매하고 있다. 기업 가치를 올리고 글로벌 투자도 유치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할 채비도 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도가 어찌됐든 강화게임 논쟁의 본질은 단순히 도핑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순수한 육체 경쟁"이라는 올림픽 철학과 "기술로 인간을 증강할 수 있다"는 트랜스휴머니즘적 사고가 충돌한 사건이다. 단순히 스포츠계 내부의 작은 갈등이 아니라, 노동과 오락 같은 인간의 사회적 활동에 AI를 포함한 기술 증강을 얼마만큼 허용할 것인가 하는 가치 경계선의 획정 문제인 것이다.
19세기 말 쿠베르탱 남작이 그리스 전통을 부활시킨 근대 올림픽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이상을 강조했다. 반면 강화 게임은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래 스포츠를 주장한다. 휴머니즘의 정의를 고전적으로 유지할 것인가, 바이오 과학기술과 결합한 개념 확장을 허용할 것인가?
나의 제안은 이렇다. 인공지능의 도전을 가장 먼저 받아 업계 내로 흡수한 체스와 바둑의 전례를 따르자. 유서 깊은 양대 지능게임은 인간끼리 붙는 고전 대회와 AI 증강 하이브리드 대회로 전체 판을 키웠다. 기술 발전은 막을 수 없는 미래를 향한 물결이다. 변화를 수용해 다음 단계로 이동해야한다.
단, 한계는 명확히 지어야한다. 바이오 증강 스포츠를 통해 불멸불사, 영생을 추구하는 '프랑켄슈타인 과학'까지 나아가선 안 된다. AI 증강게임의 발전이 인간 생명을 자율적으로 제거하는 치명적 자율살상무기(LAWS)로 이어지지 않게 브레이크를 거는 지혜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클로드 AI의 군사 전용에 반대한 앤트로픽은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국방부에서 축출을 감수하고 저항하고 있다. 이에 동조하는 민간 개발자와 사용자 집단도 늘고 있다. AI 양심의 발현이다. 스포츠의 경계를 확장하되, 바이오 양심의 준수도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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