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강국에는 늘 '황금세대' 있었다
임혜련
| 2019-06-16 03:22:08
우리도 모처럼 도래한 황금세대 잘 키워내야
비록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국제대회 첫 우승이라는 국민적 염원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번 폴란드 U20 월드컵 대회는 한국 축구에도 바야흐로 '황금세대'가 열리고 있음을 전 세계에 유감없이 알렸다. ‘황금세대(黃金世代)’는 돌출한 재능을 가진 인재가 다수 등장할 때 쓰는 용어다. 축구 역사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가진 ‘황금세대’들이 등장하며 세계 축구 무대를 호령해왔다.
나치가 끝낸 황금기…오스트리아 축구의 비극
오스트리아 축구 대표팀은 1930년대에 일찍이 세계 축구 무대를 평정하며 짧고 굵은 황금기를 누렸다. 인구 1천만 명에 불과한 국가였던 오스트리아는 ‘기적의 팀(Wunderteam)’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저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하면서 해체의 불운을 맞는다. 이후 나치는 오스트리아 대표팀 선수들에게 나치 독일을 위해 뛸 것을 강요한다.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마티아스 진델라’는 끝까지 이를 거절했고 얼마 후 의문사를 당한다. 진델라는 지금도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로 평가된다.
‘매직 마자르’ 헝가리 축구팀의 쇠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세계 최강팀이었던 헝가리 ‘매직 마자르(Magic Magyars)’는 1950년대 축구 무대를 지배했다. 1952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1954년 FIFA 월드컵에선 준우승하는 등 국제무대를 누볐다. 헝가리는 6년 동안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데 스웨덴은 6-0, 이탈리아는 3-0, 잉글랜드는 7-1, 서독은 8-3, 한국은 9-0으로 이기는 등 여러 경기에서 경이로운 승리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50전 42승 7무 1패의 역사를 써내려간 헝가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유일하게 서독에 패한다. 헝가리 축구의 황금빛 역사는 소련의 침공과 함께 쇠락했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황금기 맞은 프랑스
월드컵 2회 우승국으로, ‘올타임 No.1’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프랑스는 유럽의 전통적인 축구 강국이다.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지네딘 지단의 활약으로 브라질을 3-0으로 물리치며 우승컵을 쥐었다. 2000 유로 대회에서 연속해서 우승하며 승승장구한다.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8강 진출, 2016 유로 대회에선 준우승에 그치는 등 다소 부진한 성적을 보이기도 했지만 최근 월드컵 우승을 하며 다시금 황금기를 열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를 4-2로 누르며 1위에 등극한 것이다. 승리를 이끈 평균 연령 26세의 프랑스 대표팀 유망주들은 프랑스 축구의 두 번째 황금기를 열고 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세대교체
‘축구 종주국’으로 1930년대까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활약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이후 미진했다. 데이비드 베컴,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 웨인 루니 등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로 꾸려진 잉글랜드 축구팀은 황금세대로 기대를 모았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2004 유로 대회 8강, 2006년 독일월드컵 8강 진출에 머물렀다. 이에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전면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고 평균 연령 26세의 젊은 피들이 대표팀의 주축이 됐다. 이들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28년 만에 잉글랜드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3회 연속 우승…재도약 노리는 스페인
유럽의 축구 강호 스페인은 2008년부터 특히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며 전성기를 이뤘다. 스페인 대표팀은 2008년 유로 대회에서 44년 만에 우승하며 황금기의 시작을 알렸다. 이 기세를 몰아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1-0으로 물리치며 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2012 유로 대회 결승에선 이탈리아를 4-0으로 제치고 연이어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선 10위에 머문 스페인이 황금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유소년 선수 양성’으로 황금기 맞은 벨기에
피파랭킹 1위를 이끈 원조 ‘붉은 악마’ 벨기에 대표팀은 그동안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벨기에의 최고 기록은 1986년 멕시코 대회 4위에서 멈췄다. 그러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벨기에가 월드컵 역대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을 이기고 최종 3위를 차지한 것이다. 승리를 이끈 최고의 공격진 ‘에덴 아자르-케빈 데 브라위너-로멜루 루카쿠’ 등은 벨기에의 황금세대로 불린다.
벨기에 약진의 배경에는 ‘유소년 축구 선수 육성 프로그램’이 있다는 분석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소년 축구선수 육성을 위해 노력해온 벨기에 축구협회는 젊은 유망주를 발굴, 영국·네덜란드와 같은 축구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원석을 찾아 다듬는 등 유소년 육성에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벨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함께 황금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아프리카 축구의 희망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부아르’
유럽과 남미 대륙 국가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축구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있다.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부아르이다.
나이지리아는 1993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황금기를 열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두 차례 우승했으며 월드컵 16강에 계속해서 진출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아르헨티나와 벨기에를 제치고 9위를,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선 벨기에와 스페인을 제치고 12위를 하는 등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축구 강국을 물리치고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남자 축구 금메달을 따냈다. 최근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남자 축구 동메달을 수확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그라지아노 펠레는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오기 전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가져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예언은 틀렸지만, 코트디부아르는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최강 반열에 오르며 예언을 현실화하고 있다. 비록 월드컵에서 매번 ‘죽음의 조’에 걸리는 바람에 계속 불운을 겪었지만 코트디부아르는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하며 실력을 증명한다.
코트디부아르 축구 대표팀은 ‘검은 예수’라 불리는 디디에 드로그바의 일화로도 유명하다. 드로그바는 2005년 독일 월드컵에서 코트디부아르의 본선 진출을 이끈 뒤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휴전을 호소한다. 당시 내전 중이었던 코트디아부르는 실로 드로그바의 요청 이후 5년간 이어지던 전쟁을 멈췄고 2007년 결국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돌이켜보면 일세를 풍미한 축구강국들에게는 모두 ‘골든 제너레이션’(황금세대)이 있었다. 이제 한국에 그 시대가 열리고 있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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