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광복군] ① 인도·미얀마에서 日에 맞선 우리 광복군 아시나요?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3-11-13 14:59:26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를 찾아서]
2차 대전 때 최전선에서 연합군과 함께 싸운 유일한 韓광복군 부대
최대 격전지인 임팔 전투에서 인상적 활약…미얀마 탈환전에도 동참
UPI뉴스, 한국 언론 최초로 인면전구공작대 유적지 전반 현지 조사
콜카타방송국 위치 새롭게 확인…세계 2번째로 추라찬푸르 현지 취재

 

▲ 인면전구공작대원들과 영국군 연락 장교 롤랜드 클린턴 베이컨(Roland Clinton Bacon) 대위(1943년 11월쯤 인도 델리 근교로 추정). [국사편찬위원회]

 

시작은 1941년 5월 김원봉이 이끈 조선민족혁명당이 항일을 촉진하고자 동남아에 공작원을 파견하려 한 것이었다. 일본의 서진(西進)을 막아야 했던 인도 주둔 영국군사령부는 1942년 10월 조선민족혁명당에 대원 파견을 요청했다.

 

양쪽은 파견에 합의하지만 실제 파견은 조선민족혁명당이 아니라 임정 산하 광복군 명의로 이루어진다. 조선민족혁명당이 임정 참여를 결정하고 중국 국민당 정부가 '9개 준승(準繩)' 강제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9개 준승은 1941년 11월 중국이 광복군에 채운 족쇄다. '광복군은 중국군의 명령·지휘·통제를 받아야 하며 임정은 명의상으로만 통수권을 갖는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내용이 굴욕적이었으나 국민당 통치 지역에서 활동해야 했던 임정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수용했다.

중국은 공작대를 광복군 소속으로 편제하도록 압력을 가한 다음 9개 준승을 앞세워 거듭 간섭했다. 공작대의 활약에 고무된 영국이 여러 차례 대원 증파를 요청하지만, 이를 가로막은 것도 중국이었다. 임정의 노력 끝에 1944년 8월 9개 준승이 취소된 후에야 광복군은 공작대를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

파견 과정부터 우여곡절이 많았고 수가 적었음에도, 공작대는 꿋꿋이 활동했다. 대원들은 콜카타와 델리에서 훈련을 받은 뒤 영국군과 함께 움직이며 일본군을 상대로 대적 선무 방송, 포로 심문, 노획 문서 해독 등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인도·미얀마 전선의 최대 격전이던 임팔 전투(1944년 3~7월)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금의 인도·미얀마 국경 일대에서 전개된 이 전투 당시 일본군에 포위된 영국군 제17사단은 공작대원이 적군 문서를 정확히 해독한 덕분에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그 활약에 영국군 제17사단 사령관이 경의를 표했다는 내용이 공작대원 증언은 물론 영국 자료로도 확인된다.

1945년 공작대는 임팔 전투 참패 후 미얀마로 퇴각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영국군의 작전에도 동참했다. 그해 5월 양곤을 되찾고 7월 미얀마 탈환 작전이 마무리되자 콜카타로 돌아온 공작대는 8·15 소식을 접하고 9월 10일 충칭으로 귀환했다.

공작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전선에서 연합군과 함께 싸운 유일한 광복군 부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대원 수는 적었지만 주목할 만한 활약도 했다.

그럼에도 광복 후 오랫동안 잊혔다. 오늘날 한국인의 대다수는 공작대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도에서 2년 동안 특파원으로 근무했지만 델리 한복판 레드 포트가 광복군 훈련지로 쓰인 것도 몰랐다"고 한 언론인이 2021년 고백했을 정도다.


공작대 활동을 조명한 학술 논문도 몇 편 안 된다. 공작대 유적지 답사도 광복 60주년인 2005년에야 독립기념관 주관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됐다.

 

▲ 인면전구공작대 관련 주요 활동 일지. [UPI뉴스]

 

UPI뉴스 탐사보도부는 공작대 파견 80주년을 맞아 지난 9월 미얀마 양곤·만달레이·핀우린(7박 9일), 10~11월 인도 델리·콜카타·임팔·코히마·디마푸르(8박 10일)의 공작대 유적지를 답사했다. 2005년 독립기념관팀에 이어 18년 만에 진행한 두 번째 답사이자, 인도와 미얀마의 공작대 유적지 전반에 대한 한국 언론 최초의 현지 조사이다.

 

UPI뉴스는 이번 조사에서 공작대가 활동한 콜카타방송국 위치를 새롭게 확인했다. 독립기념관팀이 지난 2005년 확인한 콜카타방송국은 1957년 지어진 건물에 자리해 공작대와는 무관하다. 공작대가 활동할 때 콜카타방송국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도보 약 15분) 떨어진 세인트존스 교회 뒤편에 있었다. 

 

▲ 인면전구공작대가 활동하던 2차 대전 시기 인도 콜카타방송국이 있었던 건물. 독립기념관팀이 지난 2005년 확인한 콜카타방송국에서 북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세인트존스 교회 뒤편에 자리해 있다. [UPI뉴스 서창완]

 

이에 더해, 대원들이 격전지 아라칸에서 콜카타로 귀환할 때 이용한 하우라(Howrah)항 위치가 독립기념관팀이 확인한 프리챕역 근처가 아닌 하우라역 맞은편이 유력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또 지난 5월 종족 간 갈등으로 인한 대규모 폭력 행위가 발생한 인도 마니푸르주 추라찬푸르(Churachandpur, 임팔 서남쪽)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 국제적으로는 영국 BBC 다음으로 현지 취재했다. 추라찬푸르는 공작대가 활동한 티딤(Tedim) 로드가 관통하는 곳이다.

이번 조사는 인도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국립대학인 마니푸르대 역사학과 교수들은 한자리에 모여 취재진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공통된 반응은 "임팔 전투에서 영국군 소속으로 일본군과 싸웠다는 한국군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는 것이었다. 학과장이자 인도 근현대사 전공자인 수디르 호드 교수는 "한국에서 자료를 보내주면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겠다"며 "사실로 확인되면 한국과 인도가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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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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