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서 5세기 조개껍질 섞인 대형 토목현장 확인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 2024-10-22 12:07:22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24일 유적 발굴현장 공개 설명회 예고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약 1600년 전에 이뤄진 대규모 공사 흔적이 발견됐다.

 

▲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 현장 전경 [김해시 제공]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소장 오춘영)는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5세기대에 대지 확장을 위한 금관가야의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을 확인했다"며 "오는 24일 오후 2시 유적 발굴현장에서 공개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봉황대 구릉 동편의 경사면과 평지를 조사하던 중에 대규모 패각 성토층을 발견, 그 성격 규명을 위한 세부조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구릉 북동편의 저지대를 다량의 조개껍질을 섞어서 경사지게 켜켜이 다져 쌓아 대지를 조성 및 확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구조물은 가야 당시의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게 연구소 측 설명이다.

이렇게 조개껍질을 쌓아 성토한 것은 지반강화를 위한 당시 토목기술로 받아들여진다. 패각 성토층의 최대 깊이는 4m이고, 길이는 주변의 봉황토성의 성벽까지 이어질 것을 고려하면 100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 봉황동 유적 벽토층 [김해시 제공]

 

이러한 성토 방법은 주로 넓은 대지를 조성할 때 이용되는 것으로, 경주 황룡사터와 부여 금강사터 등 삼국시대 절터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봉황동 유적의 성토층은 이들 유적보다 조성 시기가 앞서고 조개껍질을 섞어 사용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밑지름 6~8m 내외, 높이 1m 내외의 둔덕을 쌓고, 이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개의 동심원 모양의 성토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평면 구조가 새롭게 밝혀진 것에 의미가 있다고 연구소는 강조했다. 

과거 봉황대 구릉 주변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일부 확인됐던 봉황토성의 토축 성벽 조사결과와 이번 조사결과 등을 종합해 보면, 5세기에 봉황대 구릉 전체를 둘러싸는 둘레 1.5㎞ 정도의 토축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대지 조성 및 확장이 함께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 봉황동 대형건물 터 흔적

 

24일 발굴성과 공개 설명회에서는 이와 같은 가야의 토목기술뿐만 아니라 대형주거지와 그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된 중요 유물도 함께 선보인다. 대형주거지는 4세기대에 조성된 것으로 지난 2017년 일부 공개된 바 있다. 그 이후로 추가 조사와 연구를 거쳐 내부의 아궁이 시설과 주거지 벽체의 세부 구조를 새로 밝혀냈다.

 

한편 김해 봉황동 유적은 1963년 회현리 패총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1990년대에 진행된 봉황대 구릉 일대의 발굴 성과를 더해 확대 지정된 곳이다.

그간 발굴 조사를 거쳐 배가 드나드는 접안 시설, 철을 생산하고 벼리는 작업을 하던 야철(冶鐵)터, 토성 등 청동기 시대부터 금관가야에 이르는 흔적이 확인됐다. 이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1∼4세기 시대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KPI뉴스 / 최재호 기자 choijh199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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