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워시의 시험대는 정책 아닌 중앙은행 리더십…차기 한은 총재는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6-03-16 11:31:14
차기 한국은행 총재 지명, 공감의 중앙은행 리더십이 관건
미국 중앙은행 총재에 지명된 케빈 워시는 지난 위기 대응 과정에서 비대해진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축소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미 지난 3년간 이른바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프로그램을 통해 대차대조표 규모를 약 9조 달러에서 약 6조6000억 달러 수준까지 줄였다. 그러나 워시는 연준의 대차대조표가 여전히 금융시장의 가격 형성과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며 시장 기능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 때문에 시장의 관심은 워시가 연준 의장에 취임한 후 실제 정책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가 있다.
현재 워시와 가까이 소통하고 있는 인사들에 따르면 워시는 금융기관과 시장 참가자, 일반대중과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야 연준의 대차대조표 변경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워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대된 연준의 대차대조표 규모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며 대차대조표 축소 조치에 들어가기에 앞서 연준 내부에 연구와 논의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차기 연준 의장 지명 경쟁에서 워시에게 패배한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대차대조표 축소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것이며 단기 금융 시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정책 결정자들이 단기 금리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연준 이코노미스트 버쿠 듀이건-범프와 제이 칸은 이에 관한 삼중 딜레마(trilemma)를 제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중앙은행은 소규모 대차대조표, 안정적인 단기 금리 유지, 제한적인 시장 개입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워시가 대차대조표 규모를 축소할 수는 있으나 이는 중앙은행의 개입 빈도 증가 또는 심각한 금융시장 변동성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일부 위원들은 현재로서는 연준 대차대조표를 더 축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FOMC는 지난해 12월 양적 긴축을 중단했다. 월러 연준 이사는 워시의 대차대조표 축소 논의를 비판하면서 희소성(scarcity)은 경제학의 목표가 아니며 과거에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니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은행의 자산 규모를 줄이는 것 그 자체가 정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 등을 감안하여 일각에서는 워시가 연준 의장 취임 이후 대차대조표 관리에 관한 제3의 유연한 모델을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연준 대차대조표를 장기적으로는 점진적으로 줄이되 금융시장 안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새로운 운영 프레임워크를 설계하는 등의 방식이다.
여기서 논쟁의 본질은 더 이상 정책이 매파냐 비둘기파냐 하는 이분법적 구분에 있지 않다. 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은 워시가 연준이라는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institutional memory)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연준 대차대조표 논쟁이 던지는 질문, 그리고 워시가 마주하는 시험대는 정책 방향 그 자체라기보다는 중앙은행의 리더십에 관한 이슈가 되고 있다.
연준 역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의장들은 공통적으로 조직으로서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활용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앨런 그린스펀은 개인적 직관으로 유명했지만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연준 내부 연구와 데이터 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최근 연준을 이끌어 온 제롬 파월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연준이 과거에 축적해 온 위기 대응 경험을 정책 판단에 반영했다. 이 점에서 워시가 직면한 진정한 시험대는 그가 주장해 온 대차대조표 축소론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가 아니다. 연준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연구와 정책 경험, 그리고 서로 다른 견해를 어떻게 통합해 하나의 정책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하는 과제다. 결국 중앙은행 총재 리더십의 본질은 특정 주장이나 이론을 관철하는 데 있지 않다. 조직이 축적해 온 지적 자산과 경험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며 그것을 정책 판단으로 연결하는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차기 미국 중앙은행 총재에게 필요한 이와 같은 리더십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기 한국은행 총재 인선을 앞두고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몇몇 인사들의 면면은 중앙은행 리더십의 관점에서 보면 고민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능력과 경력을 지닌 인사들이더라도 한국의 중앙은행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딘가 2%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 특유한 현장 경험과 현실 철학과 정책 성찰이 부족한 채 관찰자적 입장에서 원론적 시각을 강조하게 될 위험성이 있는 인사들, 예컨대 국제기구나 일반학계 출신 일부 인사가 중앙은행가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법하다. 한국 특유의 시장 구조와 정책 메커니즘을 체득하는 데에는 상당한 경험과 시간, 그리고 치열한 정책 고민의 과정이 요구됨은 당연하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역량이나 성향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유능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요리에 관한 부단한 모색과 노력으로 축적되는 현장 경험이 필요한 것과도 같다.
미국 연준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중앙은행 업무에서 핵심적으로 중시되는 요소는 중앙은행이 조직으로서 지니는 지적 자산과 경험이다. 이는 리더가 중앙은행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감(sympathy)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한다.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리더십이다. 중앙은행 조직에서 이러한 공감은 내부 신망과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점에서 앨프리드 마셜이 강조한 정책가의 덕목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마셜은 냉철한 이성(cool head)과 따뜻한 마음(warm heart)을 함께 지니는 덕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중앙은행 구성원들의 진정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 리더십의 덕목이 될 수 있다.
케인스 또한 먀셜에게 헌정한 에세이에서 이상적인 정책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일반과 특별을 함께 고려하고 추상과 현실을 동시에 다루며 목적성과 객관성을 함께 지녀야 한다. 예술가처럼 오염되지 않되 정치인처럼 세상과 가까워야 한다.
중앙은행 총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이처럼 그 폭과 깊이가 있다. 정책가의 덕목, 금융경제 현실에 대한 식견과 풍부한 현장 정책 경험,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이끄는 역량, 정책 판단의 전문성에 대한 조직과 시장의 신뢰, 국민경제 발전에 헌신하는 공적 책임감 등이 동시에 요구되는 자리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러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차기 미 연준 의장 워시의 시험대는 정책 방향보다 중앙은행 리더십이다. 차기 한국은행 총재 지명에서 판단의 관건은 무엇인가. 공감의 중앙은행 리더십이다.
KPI뉴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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