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누리호에 실려 우주로 간 바이오 실험
KPI뉴스
go@kpinews.kr | 2025-12-18 11:22:48
누리호가 지난달 4차 발사에 성공했다. 민간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제작과 조립을 주도해 이른바 민간 우주개척,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를 활짝 열었다. 위성을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발사대 국산화에 이바지한 HD현대중공업도 우주기술 자립의 역군 노릇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최초의 야간 발사와 13기의 위성체 탑재 등 새로운 기록도 세웠다. 그런데 이번에 우주로 날아간 한국의 미래 기술 중 바이오(Bio) 분야도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주 바이오'는 최근 급부상한 우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 기술과 함께, 20~30년 내 상용화를 앞둔 근(近)미래 기술이다.
우주로 날아간 누리호가 목표 궤도에 도달한 후 내려준 위성 고객 중에는 국내 최초의 의학 위성 '비천(BEE-1000)'이 있었다. 비천은 초소형 6U 큐브위성이다. 큐브위성의 1U는 10×10×10cm 표준 규격을 말하며, 비천은 '10입방 센티미터 단위 6개로 이루어진(6U)' 형태로 설명된다. 이들은 약 600km급 저궤도(LEO) 목표 궤도로 투입돼 미국 제약사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단백질 결정화 과정을 우주에서 정밀하게 관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신약 설계에 요구되는 고해상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마디로, 초소형 위성 안에 '원격 자동화 생물 실험실'을 넣은, 세계 최초의 첫 우주 의약 R&D 실증기라 할 수 있다. 우주까지 가서 실험을 하는 이유는 지상에서는 중력 때문에 대류·침전 등이 생겨 단백질 결정이 균일하게 자라기 어렵지만, 우주 미세중력에서는 이 같은 교란이 줄어 더 균질하고 품질 높은 결정 성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밀한 구조 분석을 통해 제형(劑型) 혁신과 개발효율 개선에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비천은 우리나라가 위성 기반의 우주 CDMO(Contract Development & Manufacturing Organization, 위탁 개발 및 생산 기업) 산업 육성으로 가는 미래 관문이 될 전망이다. CDMO는 제약업계에서 개발, 임상 실험과 생산까지 모두 외주로 맡기는 사업형태를 말한다. 그냥 단순히 1회성 우주 실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성공을 전제로 우주 바이오 제조의 모델 플랫폼을 실증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비천의 성공 여부는 결정화 샘플 귀환이 아니라 데이터 귀환이 중심이 될 것이다. 비천은 '위성'이므로 국제우주정거장(ISS) 실험처럼 샘플을 회수하기 어렵다. 현재 공개된 임무 설명도 결정 성장 '플랫폼 실증'과 '모니터링 자동화' 쪽에 맞춰져 있다. 즉, 이번 단계의 성과는 결정 성장에 유리한 조건과 제어 가능성, 재현성을 데이터로 증명하는 데 있다.
누리호에 실린 또 다른 탑재체 '바이오 캐비닛(BioCabinet)'은 우주로 날아가 줄기세포 입체(3D) 프린팅과 분화, 배양 기술을 검증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위성 안에서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해 '줄기세포 3D 바이오프린팅과 분화·배양'을 원격 실증하는 한국의 첫 장비라 할 수 있다. '55kg의 탑재형 자동화 바이오랩'으로 요약되는 바이오 캐비닛은 위에서 말한 비천과 달리, 누리호의 13개 위성 중 주요 화물인 차세대 중형위성 3호에 탑재됐다. 그만큼 중량이 나가기 때문이다. 크기도 바이오 3D 프린터와 줄기세포 분화 배양기(인큐베이터)를 포함해 790 × 590 × 249 mm에 달한다. 발사 후 2개월가량 장비 점검 및 임무 준비 등 초기운영을 거친 뒤, 차세대 중형위성 3호가 약 1년간 태양동기궤도에서 본격 임무를 수행할 때 바이오 캐비닛은 60일(연장 가능) 동안 실험을 하게 된다.
개발자인 한림대학교 나노바이오재생의학연구소 박찬흠 교수 연구팀은 11년째 우주의학에 매달리고 있다. 원래 지상에서 3D 프린터로 암 수술환자 이식용으로 인공장기를 만들다가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됐다. 박 교수는 2021년부터 바이오 캐비닛 개발에 착수해 이번 임무에서 심장 오가노이드(organoid)를 만들고 관찰하는 게 목표다. 미세혈관이 복잡하게 분포된 심장은 지상에서 프린팅하기 어려운데다, 먼 미래에 우주 장기이식의 필요성도 대두될 것을 감안해서다. 구체적으로는 역분화 줄기세포(iPSC)로 심장 관련 조직을 3D 프린팅하고, 그 조직이 자발적으로 수축(박동)하는지 우주 미세중력에서 관찰하는 실험, 그리고 편도(tonsil) 유래 줄기세포가 우주 환경에서 혈관 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을 확인하는 실험이 진행된다.
바이오 캐비닛의 산업적 의미는 '우주에서 세포를 다뤘다'는 것보다 오히려 '우주에서 사람이 손 못 대는 상황에서 생물 실험을 자동화·원격화했다'는 점에 있다. 우주에서 생체조직을 신속하게 제작하고 약물에 대한 반응이나 조직 기능의 변화 등 질환 변화를 관찰하는 '우주의료 기술' 실증이 큰 목표다. 그래서 비천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우주 실험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 장기이식용 오가노이드 공급 △ 난치 질환 연구 △ 우주 장기체류 시대의 현장 치료 등 미래 우주산업 개척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바이오 캐비닛 연구팀은 향후 계획으로 귀환형 실험을 공개했다. 우선 교모세포종(뇌종양) 치료를 위한 지구 귀환형 위성(BioRexs)을 오는 2027년 발사할 예정이다. 우주바이오 산업이 본격적으로 커지려면 데이터만 가져오는 단계에서 샘플·제품을 지상으로 귀환(return)시켜 분석·검증하고 필요한 적정 규제까지 만드는 체계로 연결해야하기 때문이다. 바이오 캐비닛이 탑재형 자동화 실험실의 첫 단추라면, 귀환형은 우주바이오 산업의 매출·규제·신뢰를 결정하는 다음 단추다.
이번에 누리호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바이오 실험실 외에도 우리나라 기업 중 우주 바이오 산업에 도전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제약사 보령은 암 같은 난치질환용 신약 개발을 우주에서 한다는 목표로 50여 기업과 제휴계약을 체결하고 민간 우주항공사 액시엄스페이스에도 투자했다. 스페이스린텍, 카톨릭우주의학연구센터도 선두그룹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일라이릴리 등 대형 제약사는 물론 바이오스타트업까지 우주 신약 개발과 실험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우주 주권을 확보하는 과정에 바이오 로켓도 함께 손을 잡고 미래 항로를 개척해주길 절실하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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