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창남, 앵글과 빛으로 그리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4-11-08 16:32:55

한국과 프랑스서 회화 전공...우연이 낳은 사진 인연
매서운 동해와 맞서 담은 빛의 향연 '파스텔 아우라'
"사진, 겸손을 알려줘...스스로 다스리며 채우며 살려"

19세기 중반 발명된 사진기는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화가들이 더는 사실적인 묘사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클로드 모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빛과 색을 강조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이나 추상 혹은 개념미술의 포문을 연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등 같은 작가들이 등장한 이유다. 하지만 사진도 오랜 시간 독립적인 구성이나 프레이밍에 미술적 요소를 얹어 어엿한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아직 한국미술계에 사진은 보도나 일상 기록을 위한 수단쯤으로 여겨지는 풍토는 여전하다.
 

▲ 라메시스 Lamesis 2 100X15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세이아트(SayArt)]

 

이런 현실에 새로운 사진 기법을 도입해 자기만의 미술 세계를 펼치는 이가 있다. 사진작가 창남이다. 그의 작품들은 화면 가득 파스텔 색상이 아우라를 뿜는다. 특히 사진이라기보단 오히려 수채화로 보이니 관객들은 금방 관심을 보인다. 애초 화가를 꿈꾸다 사진작가로 돌아선 창남은 무엇을 앵글에 담을까.

창남은 일찍 한국과 프랑스에서 회화를 수학했다. 어릴 때부터 보인 재능은 능히 주변인의 부러움을 샀고 스스로 언젠가 큰 화가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살았다.

하지만 결혼은 운명을 갈랐다. 아이를 돌보고 살림에 매달리자니 도통 그림 그릴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스스로 "말로만 화가"라며 자책하기 일쑤였다. 마치 우물처럼 심연에 차오르는 예술적 욕망은 지탱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테이블 위에 덜렁 놓인 사진기를 보았다. 이내 그는 셔터를 눌러댔다. 밤마다 사진기를 들고 여기저기를 누볐다. 묵힌 체증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카메라가 손에 익어가자 그는 아예 사진기를 붓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예술혼은 형식을 달리하며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 아티스트 창남 [작가 제공]

 

마흔이 돼서야 전업 작가로 나설 수 있었다. "늦었지만 2007년에 충무로에서 처음 전시를 열었어요. 선호도가 낮은 감도 높은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했어요. 이런 필름은 미술의 마띠에르(matière·재료) 같은 거친 질감을 표현할 수 있어요. 누드 작품은 여러 레이어를 조합해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구성했어요."

이후 그의 주요한 작품 대상은 바다다. 바다는 그에게 자기만의 공간이었다.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밤바다를 주로 앵글에 담았어요. 처음부터 밤에 사진을 찍다 보니 밤에 찍은 작품에 색을 조절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터득했죠. 바다는 모두 같지 않아요. 동해는 서해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적어 사진 찍기 좋죠. 작은 조명도 여럿 챙겨 가지만 자연스럽게 설치된 바닷가 조명들은 아주 좋은 장치들이죠."

작품의 관건은 카메라 조리개를 얼마나 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앵글을 빛에 노출하는 타이밍이나 파도의 속도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추운 겨울 밤바다에 서성이며 긴 시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는다. 이런 과정을 거친 그의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빛의 파스텔 색상을 띤다. 추운 겨울 바다를 마다하지 않던 그의 노고가 봄처럼 따뜻한 색상으로 관객을 덮치는 것이다.

▲ 라메시스 Lamesis 4 100X6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세이아트(SayArt)]

 

2022년부터 그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바다를 실내로 끌어들인 파격적인 발상이다. 동해에서 가져온 여러 소품을 무대에 올리고 천을 늘어뜨려 파도를 연출한다. 뒤엔 전작들을 배치한다. 실재하지 않는 바다, 관념의 바다는 그렇게 태어난다. 여기에 조명 빛이 투과되면 창남은 그 속에 나타나는 색과 이미지를 앵글에 한 아름 담는다. 물론 나중에 채집된 파일을 컴퓨터로 불러들여 미세한 후속 작업을 거치며 인화 과정을 마친다. 전문가들은 '메이킹포토'라고 부른다. 방법이야 어떻든 그는 바다를 실내에 끌어들여 내재한 자기의 '카타르시스'를 한 올씩 풀어낸다.

김성호 평론가는 "이전 연작은 두려울 만치 변화무쌍한 바다와 맞서며 대자연의 '숭고 이미지'를 얻었다면 이번 연작은 그 숭고의 풍경 이미지를 자가 경험 속 기억과 회상을 통해 '안온한 정물 이미지'로 치환한다"고 설명한다.

"제 작품 뒤엔 욕망이 득실거린다. 더러 작품에 슬픔이 배어나오지만, 오히려 관객은 따뜻함과 행복을 느낀다. 이는 어쩌면 욕망의 찌꺼기가 해방을 맞는 순간을 관객이 포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창남은 2022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와 미 뉴욕에서 전시를 연거푸 열었다. 유명 쉐프와 콜라보도 했다. 세계를 돌며 음식을 선보이는 유명 쉐프는 그의 작품과 어우러지는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여러 나라에서 호평을 얻었다.

▲ I Saw The Sea Archival Pigment Print on Fine Art paper 67X100cm 2010 [세이아트(SayArt)]

 

그는 색은 미리 계획하지만, 순간 감정이나 작업 당일 기후나 파도 등 여러 요소가 작품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했다. 자기는 그저 산파일 뿐 작품 완성엔 보이지 않는 대자연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사진가라고 불리는 건 맞지 않는듯해요. 어릴 땐 최고가 되고 싶고 최고라는 교만이 있었죠. 사진을 찍으며 겸손을 알게 됐죠.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면 채워지지 않죠.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 들어요."

최근에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그림과 사진 혹은 붓이나 사진기는 단순한 형식이자 도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보다 그는 '자기의 방식'대로 꾸려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나에겐 나의 것만이 온전하죠. 이제 최고가 아니라 나의 삶을 꾸리고 채우려 해요"고 했다.

그의 개인전 라메시스(Lamesis)는 경기도 양평미술관에서 이달 12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엔 그의 페인팅 작품 7점도 무대에 오른다.

그는 2010 월간사진예술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으며 작품들은 현재 종로구청, 한라인재개발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소장돼 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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