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AI 생산성 믿는 워시, 제2의 그린스펀 될 수 있을까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6-02-09 13:43:26

그린스펀의 생산성 논거 통화정책 모델, AI로 재현될 수 있을까
관건은 데이터 기반 설득, 금리와 B/S 조합, 트럼프와의 거리관리

케빈 워시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지명자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워시는 중앙은행 경험을 갖추었고 연준의 정책에 대해 매파적 입장의 비판도 제기하는 등 나름대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경쟁을 벌인 후보들에 비해 정통적인 중앙은행 인물이어서 그의 지명 자체가 시장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낸 측면도 있다. 

 

워시는 실제 어떤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이끌어갈 것인가.

'높은 경제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B/S)를 축소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생산성 혁명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금리 인하가 낮은 인플레이션과 양립할 수 있다.' 다소 복합적 의미가 섞인 워시의 생각이다. 특히 AI의 생산성이 핵심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정책관이다.

AI 생산성에 대한 워시의 확신이 옳다면, 그리고 향후 워시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을 설득하여 그의 확신을 지지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저금리, 빠른 성장, 물가 안정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AI라는 새로운 범용 기술이 지니는 잠재력을 고려할 때 매우 낙관적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케빈 워시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지명자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AI 생산성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이 30년 전에 주도했던 생산성 향상 논거에 의한 통화정책 결정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워시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으로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린스펀도 1990년대에 인터넷의 영향에 대해 비슷한 예측을 했다.

 

그린스펀의 생산성과 관련한 남다른 면모는 1996년 9월 연준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하여 금리 인상을 연기하도록 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린스펀은 FOMC 회의에서 생산성 증가율이 공식 데이터보다 빠르다고 주장했다. 

 

당시 연준 이사였던 재닛 옐런은 다수의 FOMC 회의 참석자들이 그린스펀의 주장을 처음에는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그린스펀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방식으로 생산성 향상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덧붙였다. 훗날 연준 의장이 된 옐런을 비롯하여 한 명을 제외한 FOMC 위원 전원이 그린스펀의 생산성 향상 논거를 지지하며 금리를 동결했다.

지금 워시의 생각 뒤에는 바로 그린스펀이 있다. 그린스펀의 1990년대 생산성 논거 통화정책 전략이 워시가 AI로 재현하려는 모델인 것이다. 워시는 AI 붐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미국 중앙은행의 신속한 금리 인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AI 붐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생산성을 가장 크게 높이는 물결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지 않고도 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워시의 이러한 견해는 미 행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금리 인하를 신속하게 추진하려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포함한 인사들이 공유하고 있다. 베센트는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지금 생산성 호황의 초기 단계에 와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하며 빠른 시일 내에 급격한 금리 인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워시는 그린스펀의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워시는 그동안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 연구원으로서 AI 산업의 발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인물이다. 또한 워시는 기술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사모펀드 운용 경험을 통해 기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데 현장 전문성을 쌓아 왔다. 실리콘 밸리에 넓은 네트워크가 있고 AI의 속도와 혁신의 조건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 역시 AI에 대한 기대감은 일부 사실일 수 있음을 시사하며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밀려올 파고와 함께 일부 혼란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기술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신중론자들은 AI가 실리콘 밸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판도를 바꿀 기술인지 아니면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애쓰모글루가 예측한 것처럼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끝날지를 판단하는 데는 워시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애쓰모글루는 경제 이론도 데이터도 기술 낙관론자들의 과도한 기대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중론자들은 AI 혁명이 단기간 내에 실현된다는 증거가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워시에게는 금리 결정과 관련하여 그렇게 오랜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상원이 제때 인준하면 5월 중순 차기 연준 의장에 취임하게 되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현재 연 3.50~3.75% 범위인 정책금리를 대폭 인하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30년 전 그린스펀이 했던 것처럼 워시 또한 FOMC 위원들을 설득하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워시의 기대와 의중대로 FOMC 위원들이 AI 생산성 낙관론에 동의하며 금리 인하에 찬성 표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996년 9월 연준 표결 당시에 FOMC 회의실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린스펀이 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서사가 아닌 데이터에 의존했다고 말한다. 워시가 연준 정책결정자들에게 AI로 인한 생산성의 급격한 증가에 관해 설득하려면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할 수도 있다. 

 

당시 FOMC 회의에 참석했던 도널드 콘 연준 부의장은 그린스펀의 직감은 다른 이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파헤치고 그 이면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뒷받침되었다고 회고했다. 그린스펀의 주장은 단언에 그친 것이 아니고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했다. 옐런 또한 그린스펀은 많은 경제 데이터를 활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워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세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AI 생산성 낙관 서사만으로는 부족하다. FOMC 위원들을 설득하려면 더 현실적인 설명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AI 도입으로 인한 총요소생산성(TFP) 상승과 단위노동비용 억제 효과, 물가에 미치는 실증적 선행 지표, 기술 투자 확산이 수요 과열만이 아닌 공급 확장으로 이어진다는 근거 등이 데이터 분석 등에서 포착되는 변화로 제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금리 인하와 워시가 강조하는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의 정책조합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 워시가 처한 큰 리스크는 정책 신호에 관한 혼선이다. 워시가 단기 금리 인하, 즉 완화 신호와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 즉 긴축 신호를 동시에 발신하는 경우 장기 금리의 급등, 수익률 곡선의 가파른 형성, 금융 여건의 불안정성 확대라는 시장 반응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워시는 어느 정책이 주도적인 신호이며 어느 정책이 보조적인 신호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셋째, 트럼프와의 관계에서 거리 관리를 제도화해야 한다. 한국은행 총재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과 제도적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재정, 부동산, 환율 정책 등과 관련하여 이견 또는 대립 국면에 접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역대 총재들이 선택한 방식이 있다. 정면충돌은 피하되 결정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시에게도 같은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트럼프의 공개 압박에 맞서 워시가 정면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정책의 정치화 위험을 키운다. 대신 FOMC의 집단 의사결정 구조, 현실 속의 데이터 관찰 메커니즘,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전면에 내세워 개인 대 개인의 갈등 구도를 차단해야 한다. 중앙은행과 대통령과의 관계는 제도적으로 접근(institutional approach)해 나갈 필요가 있다.

AI의 생산성이라는 비전은 출발점일 뿐 이제부터의 진정한 시험대는 FOMC 내부의 토의와 설득, 정책조합의 정합성과 신호 관리, 정치권과의 제도적 거리 관리에 있다. 워시는 옳다고 믿는 생각을 중앙은행의 언어와 행동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 그 답은 앞으로 그가 보여줘야 할 과제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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