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의 'Oh, HappyDay'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5-04-23 17:08:14

아픈 과거 잊고 "I'm so happy right now"
바이올린·비올라 합체 악기로 선보인 '즉흥연주'
"'유진박문화재단' 만들어 세상 밝히고 싶다"
▲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피앤피컴퍼니>

 

2003년 태풍 매미로 아수라장이 된 마산 '가고파문화센터'.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은박 돗자리 하나가 덜렁 깔린 보잘것없는 무대에서 유진박은 혼신을 다해 바이올린을 켰다. 그 시절 유진에게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무대라도 상관없었다. 음악 장르조차 모두가 하나라고 얘기하던 유진이었다.

유진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 일렉트릭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가 2009년 돌연 음악이 아닌 다른 것으로 세상에 회자했다. 소속사가 조울증을 앓고 있던 유진을 착취하고 구타를 일삼았다는 충격적인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거다.


그렇게 잔혹한 세상에 물어뜯기고 상처받는 유진은 한동안 은둔했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공백기를 지나고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는 대중 앞으로 돌아왔다. KPI뉴스가 지난 15일 공연을 앞둔 유진 박을 만났다. 조심스레 아픈 과거를 물었다. 

 

"그 사람들 나쁜 사람, 사기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but, I'm so happy right now!"(그러나 난 지금 행복해요)라며 웃었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그는 이날 인터뷰 내내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 시작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들이었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 너바나, 펄 잼을 좋아했다고 했다. 요즘엔 유튜브로 그들의 생전 연주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공부하는 게 제일 즐겁다고 했다.

그는 또 자기 음악 핵심은 즉흥 연주(jam session), 즉 재즈의 즉흥성(improvisation)이 연주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그의 즉흥 연주가 아무렇게나 이뤄지는 건 아니다. 나름의 방식과 규칙 속에서 자유롭게 이뤄진다. 그런 방식을 몇 가지로 분류하면, 그는 기존 주 멜로디의 코드 진행에 기반한 즉흥연주(Chord-based Improvisation)를 하거나 모달 즉흥(Modal Improvisation)이라 불리는 모드(음계 종류)를 선택해 자유롭게 연주하기도 한다. 

 

또 때론 프리 임프로비제이션(Free Improvisation)이라 할 수 있는 형식, 코드, 템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연주를 펼친다. 그러고 보면 애초 그가 즉흥 연주에 기반을 둔 블루스나 그런 블루스에 기반을 둔 록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 같은 배경일 것이다.  

 

▲ 공연하는 유진 박.<피앤피컴퍼니>

 

유진의 천재성은 아기 때부터 도드라졌다고 한다. 세 살때 고사리손으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해 8살에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줄곧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줄리아드의 권유로 16세에 줄리아드 스쿨 학사과정(The Juilliard School)에 입학했다.

그가 들려준 줄리아드 시절 재미난 일화. 교내에서 열린 바이올린과 비올라 대회에 하루 간격으로 참가해 모두 우승했다고 한다. 세계 음악 천재들이 즐비한 줄리아드에서 연일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신동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 대가로 적잖이 유명세도 치러야 했다.


유진은 청소년 시절부터 뉴욕 워싱턴 스퀘어 파크(Washington Square Park)에서 거리 공연을 하며 관객과 호흡했다. 또 미국의 전설적인 라이브 공연장이자, 밥 딜런의 첫 공연 장소로 유명한 뉴욕 명소인 'CAFE WHA?'엔 직접 찾아가 하우스밴드와 즉흥 연주를 하고 싶다는 배짱도 보였다.

그는 여러 면에서 천재다. 상당수 천재가 그렇지만 그도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가 가진 문제는 양극성 장애(躁鬱症, Bipolar Disorder).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들뜨는 상태(조증)와 비정상적으로 가라앉는 상태(우울증)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양극성 장애는 국내에 데뷔하던 1996년경에도 나타났다. 당시엔 더러 환청까지 동반했는데 여러 전문가는 유진 박이 이런 독특한 상황이나 에너지를 자기만의 음악으로 승화하고 있어 그 천재성이 뛰어난 듯하다고 했다.

유진은 자신이 지나온 여러 행복했던 이야기를 쉼없이 이야기했다. 17세 때 클래식에서 전기 바이올린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 공연을 비롯해 슈퍼볼 전야 축제 오프닝 공연, 아스팬 재즈앙상블 협연뿐만 아니라 블루노트(Blue Note)에선 윈튼 마설리스 등 세계 최고의 뮤지션과 협연을 했다. 그런 그의 활동상은 당시 뉴욕타임스나 뉴욕포스트가 기사를 낼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그는 1996년 줄리아드 스쿨 졸업 당시 뉴욕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스카시 스켓과의 계약을 거부하고 KBS 열린음악회 출연을 계기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정통 클래식이 아닌 올터너티브 록, 재즈, 팝, 펑크,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음악을 한국 팬에게 소개하며 한국 최초로 일렉트릭 바이올리니스트로 음악계의 중심에 섰다.

유진박을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말하지만 그가 든 악기는 '비올라와 바이올린'이 하나로 결합한 악기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각각 4개의 줄(현)로 이뤄진 악기다. 그 가운데 3개의 줄은 공통분모다. 이 3개 줄에 높은 쪽에 줄 하나를 추가하면 바이올린이고 반대로 낮은 쪽에 줄 하나 추가하면 비올라가 된다. 유진박은 이런 비올라와 바이올린의 모든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비올라와 바이올린이 섞인 5줄짜리 악기를 사용한다. 이 악기로 유진박은 더 넓은 음역을 활용할 수 있다.

인터뷰 당일 그는 다음날 열리는 콘서트를 위해 서울 반포에 있는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세션이 시작하자, 장난스럽던 그는 한순간 소리에 몰입하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칼 위에 올라선 무당처럼 신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에 쥔 활은 바이올린 위에 올라타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왼손가락은 다른 현 위를 넘나들며 가뿐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때론 안으로 숨기도 하고 밖으로 튕겨 나오며 까랑까랑한 소릴 내기도 했다. 

 

▲ 연주하는 유진박.<피앤피컴퍼니>

  

그는 최근 근황도 소개했다. 함께 하는 팀이 있다고 했다. 밴드 헤이유진(Hey Eugene)이다. 현재 그는 충북 제천에 작은 연주홀을 개장했다고 한다. 주변 여러 사람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의 연주를 좋아하는 팬들과 더는 그가 타인의 탐욕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의 힘이 모였다는 얘기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그래서 소중한 소통공간이라고 했다.


꿈이 뭐냐고 묻자, 그는 '유진박문화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재단을 만들어 생활이 어려워 재능을 못 피우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또 그런 재능들을 모아 세상을 밝히고 싶다고도 했다.

유진박은 올해 지천명(知天命·50세)이다. 그는 리허설 중 Edwin Hawkins Singers의 'Oh, HappyDay'를 연주했다. 새롭게 다가올 '해피데이'를 꿈꾸듯.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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