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의 주마등] 엘리베이터 인생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 2025-06-13 15:20:25

아파트 엘리베이터 6주간 교체 공사, 사형 선고 같아
아들과 '18층' 계단 오르며 여름 공사 걸린 불운 원망
엘리베이터서 많은 시간 보내…돌아오면 잘해주고파
▲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에 출입금지 간판이 서있다. [김윤주 기자]

 

▶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바로 '엘리베이터 교체일'이다. 우리 아파트는 나이가 제법 됐다. 엘리베이터도 '늙었다'. 보내줄 때가 온 것이다. 3개월 전부터 관련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었다. 공사 기간은 무려 '6주'인데다 쌀·생수 등 무거운 생필품은 미리 준비하라고 쓰여있었다. 중환자·임산부·노약자는 세대별 대책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요 며칠 이웃 어르신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식들 집에 이미 피난을 가신 것 같았다. 어찌됐건 매우 친절한 엘리베이터 공사 안내문은 체감상으론 살벌한 '사형선고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18층'이다.

 

▶ '하원 담당자'인 나로서는 저녁이 걱정이었다. 유치원생 아들과 함께 올라갈 생각에 진땀이 났다. 아들에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켜야 했다. 공사 시기가 되면 태권도를 다녀와 계단 18층을 올라가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놀이터에서 오래 놀면 귀가가 버거울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가족과 지인에게도 공사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은 이번 여름 우리 집에 발길을 끊겠다고 했다. 여름휴가때 놀러 오고 싶다는 친구는 "내년 여름에 오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제 택배도, 음식 배달도 어려울 터였다. 마치 산에 사는 '자연인'이 된 기분이었다.

 

▶ 아들과 험난한 레이스를 시작했다. 1층에 놓인 택배를 찾는 일도 잊지 않았다. '공짜 운동을 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올랐다. 혹시 몰라 챙긴 작은 생수통도 손에 쥐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아들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리 아파' 소리를 달고 살던 평상시와 달리 재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왠지 모를 배신감까지 들었다.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놓은 듯한 의자가 4층마다 있었다. 쉬었다 가란 배려가 느껴졌다. 훈훈했던 기분은 12층을 넘으니 사라졌다. 2500여 세대의 대단지에서 왜 하필 우리 동이 '여름' 공사에 걸린 것인가를 되뇌었다. 마음속으로 '18~층'을 욕처럼 외쳤다. 한 100번쯤 외치니 집이 보였다.

 

▶ 새삼 엘리베이터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엔 복장 점검을 하고 귀갓길엔 거울 속 아들과의 '행복한 찰나'를 눈에 담는다. 하루 중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점심 메뉴부터 쇼핑 리스트, 업무계획 등이 엘리베이터에 '담긴다'. 또 이웃·동료와 짧게 사담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다. 귀동냥으로 맛집·세일 소식을 접하는 '정보의 공간'이기도 하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일생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보내는 시간을 환산하면 200일 정도라고 한다(※고층, 90세 기준). 참 오래도 함께한다. 없어봐야 소중함을 알듯, 난 지금 엘리베이터를 여실히 그리워하는 중이다. 엘리베이터가 돌아온다면, 늦게 온다고 화내지 않고 닫기 버튼 덜 누르며 잘해줘야겠다.

 

▲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올라가는 아들의 뒷모습. [김윤주 기자]

 

KPI뉴스 /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