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한세상 견디며 사는 일 또한 사랑인 것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10-02 17:12:37
내 안의 평화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 숲속에 들어와
명상과 사유로 궁극의 '나'를 찾아 나가는 과정 담아
"사랑은 이미 나를 가득 채우고, 시작부터 완성된 것"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있으면 강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강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두텁나루의 아침은 또 다른 세상이다. 새들은 날아오르거나 자맥질하거나 바위에 외다리로 서 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경이로운 풍경 속 점 하나로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다. _ '뒷간에 앉아 보낸 세월' 부분
섬진강변 시인의 뒷간에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다 보면 강과 숲 풍경이 자연스럽게 한눈에 들어온다. 쭈그리고 앉아 있기는 새들도 마찬가지다. 뒷간 사람이나 새들이나 풍경 속 한 점일 따름이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생이 가지만 그들이 무용한 존재들인 것은 아니다. 지리산 구석에서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구절초처럼 홀로 피었다 지지만 그들은 타고난 생명의 충일함으로, 그 사랑으로, 제 일을 조용히 수행하다 갈 뿐이다. 섬진강변 숲에 스며든 지 17년째인 박두규 시인이 새 시집 표제로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솔)를 내세운 것은 자신의 이런 지향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는 그가 다양한 NGO 활동을 하다가 자신 안의 평화를 먼저 도모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온 이래 사유한 상념들을 종합해낸 시들로 채워졌다. 그가 찰나의 섬광으로라도 만나고 싶었던 '그대'가 저무는 강변에서 '사랑'으로 완성되는 여정이다. 그는 "두꺼비 섬蟾 , 나루 진津, 섬진을 풀어 당호를 '두텁나루숲'이라 짓고, 이 숲 그늘에 앉아 밑도 끝도 없는 고요를 기다렸다"면서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세상까지를 아울러 절대 균형을 이루는 우주의 저울추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사랑이며 무엇보다도 사랑은 끝내 과정에 있다는 것을, 사랑은 한 생명의 탄생처럼 시작부터 완성된 사랑이며 그토록 삶의 온 과정이라는 것을 겨우 짐작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썼다.
'붉어진 서산西山은 금세 어두워지고// 세상 가득한 어리석음의 혼망昏忘// 가녀린 허리 세워 깊은 숨 내쉬니// 더듬거려 한 발짝 떼는 일이 이렇구나// 깊고 투명한 그 마음// 그토록 바라던 그대' _ '어쩔거나, 이 기쁨' 부분
'이 그리움의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인가. 찰나의 섬광처럼 그대를 만나면 나는 파옥破獄할 수 있는 것인가. 빗방울에 잠긴 세상도 고스란히 찾을 수 있는 것인가.' _ '깊은 고요의 급류에 휩쓸려' 부분
'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은 숲에 가고 싶다. 숲 어귀 파초 잎사귀 아래 비를 긋고 있는 휘파람 소리 하나 있을 것이다. 그 소리의 반경 안에 그대가 있을 것이다.' _ '비가 그치기 전에 숲에 갈 수 있을까' 부분
-애타게 찾는 '그대'란 어떤 존재인가.
"숲에 들어갈 무렵 탄트라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명상의 궁극적 바람은 합일이다. 지고의 의식과 내 안의 신성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문학적으로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그냥 '그대'라고 썼는데, 말하자면 또 다른 '나'인 셈이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에고(ego)와는 다른 나이다. 에고를 지워내야만 합일을 이룰 수 있는데 나 자신을 현실에서 잃어버릴 수는 없다. 다만 순화되고 정제된 그 에고가 '그대'에 가까워진 '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상태가 이상적인 바람인데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했고,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다."
-세속과 멀어진 명상과 사유는 반쪽짜리 문학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많았다. 두텁나루에 들었다고 해서 세상과 차단돼서 면벽하듯 사는 건 아니다. 여기에 있으면서도 사회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있는 삶의 환경 안에서 모든 현실적 실천을 해내야 된다. 현실을 그렇게 살아내야만 강화시킨 내면의 힘을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실행해낼 수 있다. 표리表裏의 일치를 스스로 다짐하면서 노력하는 것이다."
-두텁나루 숲에 집을 지으면서 현판에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 를 새긴 배경은?
"살다 보면 스스로 드러내고 싶은 욕망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많은 실수와 오류와 왜곡이 생기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처럼 드러나지 않으면서 많은 것들을 다 하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런 시도 썼다. 지리산 골짜기에 꽃 한 송이가 피었거나 나무 하나가 있어도, 그 나무는 아무도 모르는 골짜기에 있고 나무로 서 있지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그늘을 만들고 새들에게 열매를 주고 모든 것들을 다 하고 있다는…."'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한 마리/ 태어난 그곳으로 거침없이 오르는 맹목盲目의 끝// 가까스로 이른 그곳에 生의 선물 같은// 사는 동안의 슬픔과 절망, 고통과 회한// 마침내 몸과 마음의 모든 통증을 비워낼 수 있는 곳// 늘 어딘가에 이르고 싶었던// 환한 빛의 그곳// 아, 얼마나 다행인가.' _ '사자死者의 서書 1 - 죽음'
-죽음을 다룬 연작으로 시집을 연다. 죽음을 바라보는 근본 시각은?
"죽음이 특별한 건 아니라고 본다.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이나 우주관 차이들이 있겠지만, 죽음이 특별한 무엇은 아니고 하나의 환경이 바뀌는 그 무엇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에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일상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안타까움, 생존 욕구 이런 것들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다. 현실을 사는 한 완전히 극복하는 건 힘들겠지만 그러한 상태를 직시하면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박두규는 소설가 송기원(1947~2024)을 부제로 삼은 '사자의 서2'에서는 "송기원 형은 늘 자기는 죽은 사람이라고 했다"면서 "나는 그렇게 말년의 망자하고 한 시절 술을 마셨다"고 썼다. 송기원은 그 말년에 행복해했다고 첨언한다. '사자의 서4'에서는'아름다운 생을 증거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라면서 어머니가 남긴 이승의 마지막 한 마디 '참, 곱다'를 새겨넣었다.
'숲과 저잣거리를 잇는 오롯한 길/ 오로지 그 생각에 몰두하는 것/ 두려움 가득한 나와 두려움 하나 없는 나/ 오로지 그 사잇길을 걸어가는 것/ 사랑은 그토록 과정에 있는 것/ 사랑은 시작부터 완성된 사랑' _ '사랑의 완성-빛이 온다 8' 부분
'사랑은 아침을 맞아 눈을 뜨고/ 밤이 되어 눈을 감는 일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처럼/ 이미 나를 살고 있는 것/ 넘쳐나는 샘물처럼/ 매일매일 쉼 없이 나를 차오르는 것/ 먼바다의 수평선처럼 이미 가득/ 나를 채우고 있는 것' _ '사랑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빛이 온다 9' 부분
-모든 생명들은 그 자체로 완성된 사랑이라는 사유가 느껍다.
"사랑의 개념은 상당히 폭넓고 다양한 편이다. 각각의 시적 상황에 맞게 사랑을 말할 수 있는데 일관되게 한마디로 사랑을 정의하는 건 어렵다. 궁극의 합일을 이루기 위한 것도 사랑이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사랑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에 대해서 좀 더 폭 넓고 정직하게 봐야 될 부분들이 있는데 현대인들은 그게 많이 막혀 있는 편이다. 매번 서로의 에고들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데, 사랑을 아주 이상적으로 그려서 너무 작위적인 사랑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많다."
-시작부터 완성된 사랑이라는 의미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심성을 지닌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완성돼 있는데, 완벽하게 태어난 것인데, 그것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모든 생명은 완벽한 존재로 태어난 것이고, 그 안에 빛과 신성, 사랑을 지니고 있다."
박 시인은 두텁나루숲에 들었던 무렵 펴낸 '숲에 들다'에 수록된 '문풍지'에서 '바람이 멈추고 울음을 그쳐도/ 문풍지는 문풍지,/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다/ 차라리 바람에 온몸을 치떠는 것이,/ 몸부림치며 우는 것이, 살아있는 이승의 시간인 것을'이라고 썼거니와, 두텁나루숲도 그에게는 기실 안과 밖의 경계인 셈이다. 그는 "이번 시집이 조급하고 불안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쉽게 읽히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생명의 근원적 가치를 인지하고 관심을 갖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고마운 사랑.
'고맙습니다, 한세상 견디며 사는 일 또한 사랑인 것을/ 강물이 흐르고 새가 날고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사소한 일상의 모든 길이 다 사랑인 것을'_ '길항拮抗의 그대' 부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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