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한국경제 최대 과제 '제조업 AI혁신' 어떻게
KPI뉴스
go@kpinews.kr | 2025-04-03 10:42:26
인공지능(AI) 혁명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21세기 지구촌에서 우리나라가 직면한 최대 과제는 '제조업의 AI 혁신'이다. 얼마 전 한국은행 총재가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은 10년째 변동 없는 순위로 정체돼 있다. 반도체 및 전기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제품의 삼대장이 견인하는 한국 수출군단은 중국의 맹추격으로 조만간 추월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 같은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 배경에는 AI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한국 제조업의 AI 혁신은 단순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AI 전환에 성공하지 못하면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 삼류 정치가 아무리 발목을 잡더라도 산업구조만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혁신창조형(型)으로 거듭나야 대한민국의 장래 생존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류가 붐을 이루며 무역수지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저작권과 과학기술 특허 기반의 '연기 없는 산업', 즉 무형의 지식재산 서비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조업은 한국의 고용과 국부 창출을 책임지고 있는 산업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국의 산업단지를 돌아보면 창원, 거제, 구미 등 전통 제조업의 메카로 불리는 공장 지대에 불이 꺼져감을 느낄 수 있다. 현장의 한 관계자는 "퇴근 후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로 북적이던 공단 주변 술집과 노래방이 줄줄이 폐업해 밤에는 유령도시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간 노동개혁은 지지부진하고 신규 자본투자도 이뤄지지 못했다. 새로운 신수종 사업 발굴도, 작업장 노동 생산성 개선도 까마득한 옛 구호로 퇴색해가고 있다. 중진국 함정, 이른 선진국병에 걸려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탓이다. 그렇다면 우리 제조업의 미래를 여는 'AI 혁신'이란 무엇인가.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이란 대변신을 최초로 시도한 곳은 독일이었다. 벌써 14년 전인 2011년 독일 정부는 제조업 혁신전략 '공업 4.0(Industrie 4.0)'을 수립하고 단계별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주요 개념은 사이버물리시스템(CPS)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컴퓨팅, 공정 자동화와 로봇 도입이었다. CPS란 가상(Cyber)과 실물(Physics)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말한다. 가상은 생산현장과 기업 활동에서 나오는 디지털 공정 및 경영 정보이다. 전사적 자원관리(ERP), 공급망 관리(SCM), 고객관계관리(CRM) 등 공장 물류에서 마케팅 영업까지 생산과 판매의 전 과정을 데이터화한 것이다. 실물은 공장의 생산 재료와 기계설비, 판매시설의 완제품 매대 및 물류창고 등이다. 여기에 센서를 부착해 온도, 압력, 수량, 스피드 등 공정 및 경영 정보를 모두 수집한다. 이것이 IoT이다. 사물(Things)끼리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며 적정 생산이란 최종 목표에 맞춰 자동적으로 상호 조율을 반복한다.
CPS는 가상과 실물의 데이터를 통합해 공장의 재료부터 일선 영업현장의 재고관리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다품종 소량, 실시간 최적화 생산을 가능케 한다. 1단계 CPS 완성 후에는 AI를 투입해 사람이 필요 없는 무인 지능형 생산의 2단계로 넘어간다. 최근 3단계에서는 대규모행동모델(LAM)로 학습한 AI 안드로이드가 인간 협동형 또는 단독형 작업으로 일하는 로봇 공장으로 바뀌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운영 중인 테슬라 메가 팩토리는 공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능형 로봇이라 할 수 있다. 독일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은 AI와 IoT를 결합해 생산 오류를 0.001%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종래 아날로그 방식의 공장 자동화(FA)에 AI가 결합해 사람 없이 스스로 생산하는 지능형 공장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 AI 혁신을 공정 효율화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주로 공장의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지만 비즈니스 전체의 가치사슬에서 보면 생산의 전후 단계에서 생산성을 더 높이기 때문이다. 즉 제품의 구상과 설계, 연구개발 및 디자인, 브랜드 구축의 생산 전(前)단계에서 AI의 효용은 빛난다. 또 생산된 최종 제품의 유통과 마케팅, 판매 후 서비스(AS)하는 생산 후(後)단계에서도 AI가 초능력을 발휘한다. 요컨대, 백지 상태에서 제품을 구상하고 이름을 짓고 광고 안(案)을 짜는 기획 작업과 다수의 소비자를 상대로 더 빠르고 개인화된 정밀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매 업무에서 AI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제 산업 경쟁력을 고품질 제품 생산이란 과거 일본 소니식(式) 품질경영 위주로 볼 게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애플처럼 멋진 디자인과 직관적 사용법, 넓고 유연한 연결망 등 인간친화적 가치 제고로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AI를 제조업 혁신의 촉매제로 당장 투입하긴 어렵다. 대기업을 제외한 중견·중소기업은 관련 인력도 투자 여력도 부족하다. 게다가 AI 적용은 하고 싶어도 하기 쉽지 않은 난제다. 사내에 AI를 잘 아는 전문가도 부족하고 돈 들여 투자해도 금방 성과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적응기간 동안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막막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앞서 경고한 중국의 AI 약진 때문이다. 무섭게 변신 중인 중국 제조기업의 생산성 향상은 옛날처럼 싼 노동력이 아니라 AI 자동화에서 나오고 있다. 인프라, 인재, 데이터의 모든 측면에서 중국은 AI 제조업 선진국의 길로 가고 있다. 그러하면 한국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중국에 1위를 뺏긴 조선 산업은 후판 용접 등 3D 생산현장의 대부분을 외국인 노동자에 위임한지 오래다. 이를 AI 로봇으로 대체해보자. 근로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험 사업장에서 인간을 대신해 일할 수 있는 AI 지능형 설비는 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를 줄여줄 것이다. 모든 공장 시설을 일거에 AI화하기보다 기존 설비의 일부를 교체하며 서서히 지능화로 변신하는 단계별 개혁도 필요하다.
다음에 AI 인재는 내부에서 육성하는 중장기 계획을 실천하자. 외부 전문가는 절대적 숫자도 부족할뿐더러 모셔오기도 쉽지 않다. 회사에서 영역별 전문지식(Domain Knowledge)를 축적한 사내 인재를 AI 집중 교육으로 재훈련시켜야 한다. 겁먹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수하면서 고쳐나가는 실천형 AI 전환이 요구된다. 여기까지가 기업의 몫이라면 정부는 GPU, 데이터 같은 공공 AI 인프라 구축과 인재 양성 중장기 교육훈련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공 자원의 지원 시스템과 민간 산학연의 연구개발 역량이 조화된 AI 생태계가 조성된다면 한국 제조업도 부활의 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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