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군이 '백강(白江) 전투' 참가?…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전시 논란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3-12-08 10:46:56
'백제 부흥군 요청→탐라군 백강 전투 참가→5개국 국제전' 주장
역사학자들, 박물관의 자의적 해석 지적하며 "있을 수 없는 일"
사서엔 탐라군 참전, 백제 부흥군의 지원 요청 기록 없어
백제 멸망 3년 후인 663년 백강(白江·유력 추정지는 금강 또는 동진강) 입구에서 백제 부흥군·왜군과 나당 연합군이 일전을 벌였다. 전투는 나당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났고 백제 부흥 운동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백강 전투'에 대해 지난달 연합뉴스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참전국은 4개국이 아니라 탐라를 포함한 5개국이라는 주장이 담긴 것이었다. 주장의 출처는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하 박물관)의 특별 전시 '섬나라 탐라, 잃어버린 천년을 깨우다'다.
박물관은 전시에서 백강 전투가 "역사상 최초의 한·중·일 5개국(백제·탐라·왜 vs 신라·당)이 맞붙었던 유례없는 국제 전투"이며 그 중심에 탐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별도 제작 영상을 통해 "백제 부흥군이 … 지원 병력을 요청함에 따라" 탐라에서 출병했다고 주장했다.
'백제 부흥군의 지원 요청 → 탐라군 참전 → 5개국 국제전'이라는 설명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국제 학계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다. 백강 전투는 해외, 특히 일본 학계가 오랫동안 매달렸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UPI뉴스가 접촉한 백제사 연구자들은 "처음 듣는 얘기", "주장의 근거가 무엇일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위가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8일 "백제 부흥군이 탐라에 지원 요청을 했다는 기록도, 탐라가 참전했다는 기록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가지를 논거로 제시했다. 하나는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舊唐書)'의 유인궤(劉仁軌) 열전이다. 당군 장수 유인궤의 열전에는 백강 전투 후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거짓 왕자 부여충승·충지 등이 사녀(士女)와 왜인 무리를 거느리고 탐라국사(耽羅國使)와 함께 일시에 모두 항복했다."
'거짓 왕자'는 백제 왕자, '탐라국사'는 탐라국 사신을 가리킨다. 박물관 측은 "탐라군이 참전했다가 패한 게 아니라면, '탐라국 사신이 왜인 무리와 함께 항복했다'고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탐라군이 참전했다면 백제 부흥군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백제 부흥군의 지원 요청이나 탐라군의 참전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구당서에 없다. 박물관이 구당서에 나온 '탐라국사' 표현 하나를 갖고 탐라군 참전 등이 사실일 것이라고 추론했다는 얘기다.
백제 부흥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김영관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탐라군의 백강 전투 참여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론은 경계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박물관이 제시한 두 번째 근거는 당나라 황제 고종이 666년 중국 태산에서 행한 제천 의식인 봉선(封禪) 자리에 신라, 백제, 왜는 물론 탐라 사신도 있었다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백강 전투에서 패했기 때문에 탐라 사신이 간 것 아니겠느냐"고 추론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태산 봉선 참여는 백강 전투와 큰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당나라가 권위를 과시하려 가급적 많은 주변 국가들을 들러리로 세우려 했고, 그래서 탐라는 물론 망한 나라의 대표까지 봉선에 참여시켰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짚어볼 또 하나의 사안은 이른바 '주체적·자주적 해석'의 문제점이다. 박물관 측은 "사료를 보면 탐라 사신이 봉선에 볼모로 끌려간 것 같긴 한데, 이를 주체적·자주적으로 해석하면 반대로 볼 수 있겠다 싶어 영상에 '당 고종의 초청을 받아'라고 표현했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볼모와 초청이 전혀 다른 것임을 알지만, "독자적 역사서가 없는 탐라를 새롭게 보자는 취지에서 박물관장을 포함한 내부 논의를 거쳐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로 인해 박물관에 '너무 과도한 해석 아니냐'고 우려하는 역사학자들의 전화가 온 적도 있다"고 전했다.
입증할 사료가 없는데도 '탐라군이 백강 전투에 참가했다'는 추론을 박물관이 마치 확인된 사실처럼 제시한 것도 '주체적·자주적 해석'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는 역사 왜곡을 초래하는 자의적 해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백제학회 회장을 지낸 정재윤 공주대 사학과 교수는 "(주체적·자주적 해석은) 역사학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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