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쿠팡 사상최대 1400억 과징금, '투명 알고리즘'의 계기될까
KPI뉴스
go@kpinews.kr | 2024-06-14 10:56:30
세기의 재판이 열릴 것 같다. 국내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이 꼼수로 자기상표 제품(PB)을 검색 상단에 무리하게 올려 소비자가 더 싸게 쇼핑할 기회를 빼앗고, 입점업체에 불리한 차별적 대우를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로부터 유통업계 최대 규모인 14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검찰에 고발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자사 PB 상품이 검색 1순위에 오르도록 랭킹 알고리즘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임직원을 시켜 엉터리 "좋아요" 후기를 달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수법을 통해 검색 순위 100권 안에 드는 쿠팡 PB 상품의 비율이 조작 전 56%에서 88%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쿠팡은 "상품 진열은 유통업체의 고유권한"이라고 즉각 반박하며 행정소송을 예고해 향후 국내 최초로 '알고리즘의 공정성'과 관련한 법원 판단이 나올지 주목된다.
쿠팡이 의도적인 알고리즘 조작으로 소비자 기만행위를 했는지, 아니면 공정위가 무리한 법 적용을 한 것인지는 앞으로 재판 과정을 통해 차례로 밝혀질 것이다. 사실 온라인 유통업체가 알고리즘을 조작한 혐의로 처벌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에도 네이버가 같은 죄목으로 267억 원의 과징금을 처분 받은 바 있다. 쿠팡도 이번 공정위 고발에 대해 반발하면서 "다른 주요 온·오프 유통업체들도 비슷한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왜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그것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블랙박스'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I 블랙박스란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추천순위가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인공지능 기술의 원천적 한계를 말한다. 사람이 다루기 힘들만큼 엄청난 양의 빅 데이터를 AI에 입력한 후, 슈퍼컴퓨터에 버금가는 강력한 내부 반도체 칩에서 고도로 복잡한 연산을 마쳐야 출력 값이 나온다.
문제는 왜 이런 답이 나왔는지 AI를 설계한 기술자조차 모두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의 계산능력을 넘어서서 일일이 분석하기가 불가능하다. AI의 결정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면 책임을 묻기도 힘들어진다. 자율주행차가 회전하다가 보행자를 치었는데 그 잘못의 원인이 AI 제조사인지, 자동차회사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따질 수 없게 된다.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이 바로 '설명가능 인공지능'(XAI)이다. XAI를 연구하던 한 국내 학자가 이걸로 스타트업을 차렸을 정도로 미래 유망기술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100% 투명한 인공지능은 현재 없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투명도를 높이는 게 목표다.
알고리즘의 투명성은 국내나 유통업계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미국은 2020년 구글, 페이스북, X(옛 트위터)의 최고경영자(CEO)를 줄줄이 의회로 불러 돈 벌기에 급급한 빅테크의 알고리즘 조작을 따졌다. 순다르 파차이, 마크 저커버그 등 업계 거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앞으로 과도한 상업 광고를 자제하고 청소년이 SNS에 중독되지 않도록 개선하겠다"고 다짐하는 영상이 남아있다. 유럽연합(EU)도 지난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아동들에게 확증편향과 행동장애를 유발한다며 법 위반 조사에 착수했다.
쿠팡의 1400억 원 과징금 소송이 우리나라 AI 알고리즘의 투명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투명 알고리즘은 공정 시장질서 확립뿐 아니라, 신뢰 가능 AI로 이어져 한국 경쟁력 제고의 원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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