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트럼프, '루스벨트 편지' 아닌 '애덤 스미스' 읽을 때
조홍균 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4-11-14 10:37:51
대규모 관세 등 인플레 재점화···중앙은행에 무거운 짐 우려
트럼프에 긴요한 덕목, 애덤 스미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철학
대공황(Great Depression)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위기 극복을 위해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윌리엄 험프리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의장은 비협조적이었다. 연방거래위원회는 독립된 독점규제기관이었다. 루스벨트는 험프리 의장을 물러나게 하려고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귀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연방거래위원회의 정책이나 행정에서 서로 맞지 않는다고 느끼며 솔직히 (귀하가 사임해) 내가 완전한 확신을 갖는 것이 국민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오.(I do not feel that your mind and my mind go along together on either the policies or the administering of the Federal Trade Commission, and frankly, I think it is best for the people of the country that I should have a full confidence.)'
대통령의 압박 편지에도 불구하고 험프리 의장은 사임을 거절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험프리를 해임했다. 법정 다툼까지 간 끝에 미 최고법원인 연방대법원은 법률이 정한 사유가 아니면 의장을 해임할 수 없다고 1935년 판결했다. 연방거래위원회법은 의장이 무능력하거나 직무태만, 업무배임 등의 경우에만 임기 도중에 해임할 수 있도록 했다. 루스벨트는 이 해임 사유가 아닌 연방거래위원회의 정책 방향을 바꾸기 위해 의장을 해임하고자 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법률이 규정한 해임 사유는 대통령의 해임 권한에 대한 합헌적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Humphrey's Executor v. United States, 295 U.S. 602)
미국에서 독립적 행정기관(independent administrative agency)의 개념은 이 판례에 의해 형성되었다. 독립적 행정기관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대통령이 동 기관의 장을 해임하는 데는 타당한 사유(good cause)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독립적 행정기관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의 이번 대선 승리 이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사임을 요구해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대통령의 연준 의장 해임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루스벨트의 편지'는 그 법적 배경을 만들었다. 트럼프가 줄곧 맹비난하며 해임하겠다고 위협해온 파월에게 '루스벨트의 편지'를 쓴다고 하더라도 험프리와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해임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중앙은행에 부여된 책무에 충실하겠다는 파월의 의연한 자세는 중앙은행가로의 진정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90여년 전 '루스벨트의 편지'는 지금 트럼프에게 파월을 해임할 법적 권한이 없음을 새삼 말해준다.
중앙은행의 판단을 존중해온 바이든 행정부와는 달리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통령과 중앙은행 간의 갈등이 우려되는 가운데 트럼프의 공언대로 대규모의 관세, 줄어든 이민, 글로벌 무역 긴장 등이 현실화한다면 미국, 유럽, 중국을 포함한 세계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예측 시나리오를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인해 2021년 초 2% 물가목표에 가까웠던 미국 인플레이션이 2022년 7%대로 급격히 상승했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데 다른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 경계감이 촉발되는 국면이다.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된다면 중앙은행에 힘겨운 시간이 닥칠 것이다. 팬데믹 이후 높아졌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트럼프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었는데 트럼프가 이를 되돌리는 역설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대규모 관세 정책 등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팬데믹을 막 헤쳐나온 중앙은행에 다시금 무거운 짐을 부과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선 승리에 한껏 도취하여 과다확신에 빠져 있을 트럼프에게 앞으로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파월에게 사임 압박을 가하는 '루스벨트의 편지'가 아니라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필요한 통찰력을 갖추기 위해 '애덤 스미스를 읽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집필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언급하며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 조절되는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과 자유무역을 지지했다. 아울러 1759년 집필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공감할 수 있는 룰과 질서를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시장의 또 다른 작동원리인 공감의 룰이 전제되어야 함을 말했다.
트럼프는 과도한 정부 간섭과 규제, 높은 세금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애덤 스미스와의 접점이 일부 있다. 그렇지만 애덤 스미스가 지지한 자유무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거부감을 천명했다. 도덕감정론이 지향하는 공감의 룰, 나아가 신뢰와 법치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법 리스크를 부정해온 트럼프가 취임 이후에 법 앞의 평등과 법치주의를 스스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행정, 입법, 사법을 장악했다고 여길 것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정부는 세수를 초과하여 지출하는 재정적자(deficits)를 일으키고 이를 국가부채(debt)로 메꾸며 다시 화폐 가치의 절하(debasement)를 통해 국가부채를 상환하려 한다는 속성을 설파했다. 애덤 스미스 이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본질과 속성 면에서 긴밀한 상호연계작용의 특질을 띠는 가운데 정치적, 정책적으로 상호독립적 프레임으로 이루어지는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도 국가전략 면에서 균형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필요하다. 통화정책과 중앙은행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애덤 스미스의 통찰력을 국부론에서 읽을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이 시사하는 철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국가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트럼프에게도 긴요한 덕목이다. 자유무역과 법의 지배, 그리고 중앙은행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특히 부족한 트럼프는 지금 애덤 스미스를 읽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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