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4행으로 압축하는 생의 노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7-19 17:42:19

첫 사행시집 '생이 빛나는 오늘' 펴낸 최동호 시인
향가 전통 이어받아 디지털시대 걸맞은 형식 실험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노래가 되는 시로 나아가야
"시를 통한 구도의 길에서 궁극의 빛을 찾는 여정"

짝을 부르는 뻐꾹새 주둥이// 연록의 악기 부푸는 목덜미// 은빛 윤슬이 물결치는 한낮// 실바람 타고 봉긋한 젖꼭지 _'연록의 악기'

4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편에 초봄 숲속 풍경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짝을 부르는 뻐꾹새 소리 들리고 부푸는 목덜미까지 섬세하게 보이는데, 숲에 부는 바람에 춤을 추는 나뭇잎들이 햇빛에 반사돼 수해(樹海)의 윤슬처럼 다가오고, 실바람 사이로 뭇생명의 젖꼭지는 봉긋하게 일어선다. 

 

▲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 대학로 카페에서 만난 최동호 시인. 그는 향가와 민요의 전통 형식에서 디지털시대 시의 길을 찾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최동호 시인이 4행으로만 창작한 시들을 모은 사행시집 '생이 빛나는 오늘'(서정시학)을 펴냈다. '사행시'는 시의 궁극을 향해 걸어온 오랜 구도의 길에서 그가 당도한 득의의 형식이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보다 효율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형식으로 향가의 전통 형식인 '사구체'를 빌려와 하이쿠와 시조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사행시'를 제시한다.

"시라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구조가 있어야 되거든요. 기승전결이라는 구조의 최소 형식이 사행시라는 거예요. 길게 쓰든 짧게 쓰든 이런 구조가 들어 있어야 시적인 감동이 우리에게 전해지는데, 사실 이 사행시의 기원은 민요나 신라 시대 '풍요' 같은 민중들의 노래로부터 시작됐죠. 사행시가 깨지고, 시가 확장되면서 소위 자유시가 들어와 근대시 현대시가 됐다고 보는데, 중요한 것은 이 형태가 깨지면서 음악성이라든가 시의 고유한 구조 같은 것도 많이 깨졌다는 거죠."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 서울 대학로 오래된 클래식 다방에서 만난 시인은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들이 긴 시를 감당하지 못한다"면서 "짧고 간결한 형식의 구조를 가진 사행시를 통해서 밀도 있게 어떤 것을 전달하는 그런 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마구 길어져서 시인지 수필인지 알 수 없는 장황하고 긴 시들이 많은데 특히 젊은 시인들이 그렇게 긴 시를 쓰는 이유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저 그냥 토해내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형식적인 절제가 필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내용과 형식은 늘 고민이 따르지만, 구조적 견고성이 없는 시는 일시적으로 유행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 생명력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현대시 100년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로 많은 시인들이 꼽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그것도 아주 견고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틀에 박히면 안 되지만 지속적 생명력을 위해서는 형식적 견고성이 필요합니다."

최동호 시인은 그동안 시가 드라마틱한 구조를 가지는 '극서정시'를 지향해왔거니와 단형의 극서정시가 궁극으로 도달한 지점이 '사행시'라고 했다. 그는 '시인의 산문'에서 "복고적이라는 비판이 먼저 날아올 수도 있겠지만 디지털적 상황을 전제한 사행시는 그 이전과 다르게 언어적 밀도와 농축을 집중시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야 할 형태"라면서 "디지털적 상황에서 현대시의 진로에 대해 지금까지 필자가 천착한 방향 모색은 고대 시원의 시가 형태로 돌아가 새로운 대안을 찾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틀 안에서 지난 3년 동안 구도의 길을 가듯 갈고 닦은 시편들 중 68편을 이번 시집에 수록했다. 희로애락의 인생사를 사계절에 대입해 사행시로 만들어내는 맥락에서 계절 감각에 맞춰 4부로 구성했다. 자연 풍광을 묘사하며 생의 화두를 꺼내드는 시편들이 많다.

옥수수수염이 부쩍부쩍 자라// 밤바람 서걱대는 어둠 속// 피 먹은 붉은 수염 귀신 웃음소리// 먹물 한 점으로 잡아두는 밤 _ '먹물 한 점'

밤에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잡으려면 그 귀신을 이겨내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한데, '먹물 한 점'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는 경지는 살아 있는 인간이 지향하는 정신의 극점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옥수수밭에서 길어올리는 깨달음이다. "전어 굽는 뽀얀 가을 연기// 꽁지에 타오르는 노을빛// 사립문짝 인기척에 소스라쳐// 쫑긋 세운 노루 귀"나 "세상을 적실 수 없어도// 마음 한 구석, 마른// 보푸라기 먼지 위 갈바람// 떨어트리는 가을비"에도 생명의 율동과 근원이 담겨 있다.

시와 시인에 관한 성찰이 담긴 시편들도 눈길을 끈다. "봄비가 시비를 적시고 있다// 글자가 흐려지고 돌이 마모되고// 사람들 마음도 점차 지워지고// 남는 것은 글자도 시도 아니다"('시비')고 쓰면서도 "죽어라 쓰는 사람, 목숨까지// 걸었다는 풍문이 떠돌았지만// 세상 저 너머까지 가서도 결코// 멈추지 않을 허깨비 그림자" 같은 '허깨비 시인'의 집념을 토설한다. 모든 것이 다 풍화하고 사라지는 마당에 '시'라는 것만 남을 리 없다. 그 허망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거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조차도 사라져서 없어지는, 하나도 남김없이 산화하는 그 지점까지 나아가보고 싶은 소망인 것이죠. 서양의 허무주의와 동양의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는 다릅니다. 유(有)도 무도 없는, 시도 인생도 없는, 육체도 정신도 없는 그런 경지를 말하는 거죠. 한용운 시인이 말한 '타고난 재'가 화한 '기름'은 완전한 것을 소생시키는 원천이라고 볼 수 있어요."

최동호 시인은 '타고난 재의 기름'에서 '빛'을 보았다고 했다. 그가 "육신을 태워 하늘에 공양하고// 잿더미에서 얻은 불사의 생명// 덧없는 육신을 뛰어넘은 구도자// 경이로운 빛, 성스러운 법신"이라고 쓴 '경이로운 열반'이 그 생각의 핵심이다. 이번 사행시집의 표제를 '생이 빛나는 오늘'로 삼은 것은 단순히 환하다는 의미의 '빛'에 주목한 것은 아니다. '빛'은 정신주의자 시인이 찾아가는 구도의 궁극인 것이다. 


꿈속의 피비린내까지// 다 지우고 난// 해골바가지 우물통 맑은 물// 푸른 하늘 흰 구름 _ '해골바가지 우물통'

"원효는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데, 생사를 넘어섰다는 의미이겠죠. 해골통 속 맑은 물을 보면서 깨달음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어떤 정화된 모습을 거기에 비춰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해골통 이미지는 전에도 다른 시들에 썼는데, 그 해골통을 '우물 바가지'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바꿨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최동호 시인은 '타고난 재'가 기름이 되어 밝히는 '빛'을 찾아 시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해골바가지'와 함께 이번 시집에서 뿌듯한 시편으로 '굴뚝새'를 꼽았다. "뽀얀 한기에 잠긴 석등// 새벽 절 마당 기침 소리// 아랫마을 꽃피는 굴뚝 연기// 박명을 품는 부처 눈길"이 그것이다. 마지막 4행의 '박명을 품는 부처 눈길'이란 바로 굴뚝새의 눈길인데, 굴뚝에 더부살이 하고 있는 작은 새에 불과하지만 이 미물이 어둠이 걷히고 생이 시작되는 겨울을 바라보는 넓고 그윽한 그 눈길은 부처의 눈길과 다를바 없다는 시각이다.

그는 처음에는 '바라보는' 이라고 썼다가 '품는'으로 바꿨다고 했다. 이 작은 굴뚝새조차도 절에서 수도하는 사람들, 민가에 있는 사람들, 범종 소리,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생명 전체를 품에 안는 부처의 눈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굉장히 의미를 확장시킨 것인데, 처음에는 '부처'가 아니라 그냥 '굴뚝새'였다고 했다. 오랫동안 시를 들여다본 결실이다.

최동호 시인은 디지털 시대에 시가 노래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5월 이탈리아 코모시립박물관에서 열린 유럽시(Europa in Versi) 국제시축제에서 '올해 최고시인상'(Best Poet of 2024)을 받았거니와, 이 자리에서 노래가 된 그의 시 '코모 호수'(김상균 작곡·임선혜 노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이탈리아·한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친선 노래로 밀라노 총영사관에서 소개했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금언은 굳이 고대 시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새삼스러운 언설이지만, 전생과 현생과 후생을 동일선상에 놓은 표제시 '생이 빛나는 오늘'의 4행은 죽비처럼 다가온다. 후생을 기약하기 위해 현생을 유보하는 것도, 현생의 고통을 전생의 업보로 치부하는 것도 다 부질 없다. 시인의 4행은 구구한 설명을 압도한다.

전생을 묻지 마라// 금생이 전생이다// 후생을 묻지 마라// 금생이 후생이다 _ '생이 빛나는 오늘'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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