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금융학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갈림길에 선 미국 산업정책

차현진 객원논설위원

cha@kpinews.kr | 2025-08-30 10:29:53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원수들이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그것을 묘사하는 표현도 다양하다. 타협(reconciliation)은 가치판단이 빠진, 비교적 중립적인 말이다. 절충(eclecticism)도 비슷하지만, 다소 부정적 뉘앙스도 풍긴다. 그에 비해 융합(fusion)은 상당히 긍정적이며, 야합(promiscuity)은 극단적으로 부정적이다. 야합은 본래 개나 소가 들판에서 벌이는 교미를 말한다.

인간의 역사가 그러하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잉태되어 치열하게 각축했지만, 그 과정에서 타협, 절충, 융합 또는 야합이 진행되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에 비해 많이 좌경화되었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흠뻑 물들었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미국을 살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이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정부는 반도체 생산업체인 인텔사의 주식 9.9%를 사들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미국 정부가 최첨단 분야의 민간 영리기업을 소유하는 것을 자본주의 시각으로는 설명하기가 군색하다.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이유였다니 역설적이기도 하다. 미국의 산업정책은 사회주의와의 타협인가, 절충인가, 융합인가, 야합인가?

이야기의 시작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로나19 사태로 산업 전반에 걸쳐 공급망이 무너진 가운데 특히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중국에서 조달하던 반도체가 없어서 생산을 중단할 처지에 이르렀다. 미국 내 반도체 조달 비중이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악한 바이든 대통령은 허겁지겁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제정했다. 반도체 분야의 R&D와 인재 양성을 위해 예산 투입을 늘리고, 삼성전자나 TSMC 등 외국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세액을 공제(약 25%)하는 인센티브를 담았다. 그 법에 따라 TSMC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고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미국 인텔사는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에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비슷한 혜택을 누렸다. 거기까지는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89억 달러(지분율 9.9%)를 투입해서 인텔사 주식을 매입했다. 뱅가드 그룹(9%), 블랙록(8.5%) 등을 제치고 미국 연방정부가 단숨에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이쯤 되면, 산업정책보다는 국유화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국유화 시비를 막고자 트럼프 행정부가 꾀를 부렸다. 보통주임에도 불구하고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겠다면서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미국 정부를 수동적 투자자(passive investor)로 등록한 것이다.

희토류 생산업체인 MP 머테리얼스(MP Materials) 사 주식 매입은 더욱 노골적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자원과 물자의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국방물자생산법(DPA)을 최초로 발동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MP 머테리얼스 사 주식 4억 달러 매입을 결정했다. 조만간 워런트(추가 주식 매입 권리)를 행사하여 지분율이 15%로 올라가면, 기존 CEO를 제치고 최대 주주가 된다. F-35 전투기, 드론, 미사일 제작에 필요한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라지만, 명백한 국유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게 정상인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분명 사회주의를 향해 달음박질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 사회가 조용한 것을 보면, 미국인들은 지금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좌경화도 불사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결국 정부의 주식 매입 가격과 산업 보호 효과가 관건이다. 희망이 없는 사양산업 업체를 비싼 값으로 매입하면, 그것은 기존 주주에게 특혜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인텔사가 TSMC,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MP 머테리얼스 사는?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는 주식 매입 가격의 적정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애국심, 혜안, 그리고 결단만 강조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MAGA를 외치는 미국인들은 중국 견제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생각이 없다. 그러나 경쟁 기업에게 밀려 장래가 불투명한 기업의 주식을 사는 데 재정정책이 투입되는 것이 견제받지 못하면, 국가신용도는 좋아질 수 없다.

때마침 지난 5월 무디스사가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다. S&P사(2011년)와 피치사(2023년)에 이은 세 번째 등급 하락이다. 그것은, 기축통화 국가로서 미국이 누리는 특이성(singularity)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은 국가부채가 얼마든지 늘어나더라도 항상 최고 신용도를 갖는다'는 미국 예외주의의 종말이다. 이런 마당에 트럼프 행정부가 감세를 통해 민간 기업 주식 매입을 위해 국가부채를 더 늘린다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한 번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가 관세 수입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도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한 쇼일 수 있다. 

 

▲ 국가신용등급과 국가부채 상관관계

  

물론 반론도 있다. 인텔사나 MP 머테리얼스 사의 주식 매입에 든 돈이 전체 재정지출에 비해서는 크지 않으며, 주식 소유가 항구적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 두 회사의 주가가 상승할 때 주식을 매각하면, 이익을 얻는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는 시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 AIG 등의 주식을 싼값에 샀다가 비싸게 팔아서 큰 이익을 거뒀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이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buy low, sell high)"면서 미래에 초점을 맞추지만, 금융시장은 "비싸게 사려고 더 많이 빌린다(buy high, borrow higher)"면서 현재의 재정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접근이 옳을까? 역사는 후자를 지지한다. 구 소련은 엉망진창인 동구권 우방국가 지원이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서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었다가 붕괴되었다. 사회주의적 접근에 대한 자본주의적 응징이었다. 지금 미국이 그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 영리기업 소유와 같은 사회주의적 정책을 펴지만, 그 때문에 자본주의적 응징을 맞을 처지에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진짜 성장'을 목표로 돈을 쏟아부을 구석과 이유는 많다. 그중에는 민생회복 지원금처럼 논란의 소지가 있는 지출도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6년도 예산안에 다르면, 지출 증가율이 역대 최대폭인 8.1%에 이른다. 그럼으로써 명목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확실하게 50%를 돌파할 것이며, 2029년에는 5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지출만 줄인다고 좋은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사상 지출을 가장 많이 줄였던 앤드류 잭슨 대통령(제7대)은 역사상 최악의 경제난(1837년 금융위기)을 일으킨 사람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재정지출의 구성과 완급은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래서 기업이나 야당과의 타협, 절충, 융합, 심지어 야합까지 필요하다. 좋은 정부는 돈을 '제대로' 쓰는 정부다.

 

▲ 차현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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