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귤이 탱자가 되어버린' 韓로스쿨 15년

조홍균 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4-08-09 10:13:28

기초법학·전문법학 모두 고사 위기 우려
국제 경쟁력 지향 법학 교육·연구 실패
로스쿨 변화 촉진할 인센티브·제도변화 필요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다. 귤을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지만 회수 이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것이며 그 이유는 물과 토질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씨앗을 뿌려도 자라는 토양이나 환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됨을 말해준다.

 

▲ 법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한국에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에 즈음하여 전국 25개 로스쿨의 협의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국회에서 주최한 학술대회가 눈길을 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인 '법학과 법치주의의 위기와 대응방안'이 시사해 주듯 로스쿨 15년에 대하여 로스쿨 스스로 내린 평가는 심각하다. 

 

학술대회에서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법학은 유명무실해졌음을 통렬하게 지적하며 이는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위기로서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법률가를 양성하겠다는 당초의 목표는 공염불에 불과해졌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했다. 

 

미국 로스쿨을 벤치마킹하며 도입했다는 제도가 태평양을 건너서 한국으로 온 이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인가. 귤이 회수를 건너서 그동안 탱자가 된 것인가.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기초법학과 전문법학이 모두 고사 위기에 처해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특히 높았다. 학문으로서의 법학과 국제 경쟁력을 지향하는 전문분야에서의 교육과 연구가 모두 실패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지나치게 많은 분량의 판례 암기를 요구하는 변호사 시험과목 위주로 짜인 로스쿨 강좌가 기초와 원리를 탄탄하게 익혀야 하는 교육방식과는 맞지 않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법을 포함한 폭넓은 학문적 메트로폴리탄 역할을 하며 실무와 함께 하는 이론 개발,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과감한 개척정신을 통해 법률전문가를 포함하여 정치, 언론, 경제, 사회, 과학기술, 문화, 스포츠 등 각계 전문가와 리더를 배출하는 미국 로스쿨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직감케 한다.

 

로스쿨 도입 15년이 지난 한국에서 로스쿨의 실상과 문제에 대하여 치열한 자체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점은 일단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비판이 있어야 해법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로스쿨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질 시기라기보다는 로스쿨이 출범할 당시에 지향했던 로스쿨 설립 취지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할 때라고 본다.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나 있는 부분을 바꾸어나가는 데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성찰, 그리고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선 교육의 핵심 주체인 로스쿨 교수들과 학생들이 이니셔티브와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의 추동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변화를 향한 교수들과 학생들의 이니셔티브와 상호작용은 다양한 방향과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펼쳐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의 예로 필자는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한 바 있어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실무적 관심을 지니고 있는 로스쿨 교수들이 대체로 학제적(學際的) 접근방법(interdisciplinary approach)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필자가 공부했던 미 워싱턴대 로스쿨(2024년 미 로스쿨 랭킹 16위)에서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 교수와 존 드로백 교수(로스쿨 내 'Center for Interdisciplinary Studies' 소장)가 합동으로 법경제학 강좌인 'Theory of Property Rights'를 개설했는데 학생들도 학부 전공과 관계없이 심오한 재산권 이론 분야에 점차 흥미를 나타내며 심취하기 시작했다.

 

로스쿨 내 'Center for Interdisciplinary Studies' 주최로 당시 학교에서 3일간(2005.9.29~10.1) 열린 'Corporate Governance Conference'에는 미국 및 세계 각지의 로스쿨과 비즈니스스쿨 교수들, 미 SEC, 기업활동의 메카 델라웨어주 대법원, 뉴욕타임스, 유수 컨설팅펌 등의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하여 CEO, 이사회 및 주주의 역할 등 기업지배구조의 주요 이슈에 대한 다면적 조명을 시도한 바 있었다. 

 

발제자 중 '일본 금융산업의 발전 과제'를 발표한 동경대 법대 교수의 프레젠테이션에 법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고 금융기관 재무제표 분석으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법대 교수가 맞는지 의아해했는데 '요즘 법 아닌 것 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조크 아닌 조크를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법학계의 석학으로 손꼽히는 학자였다.

 

로스쿨이 출범할 때 지향한 높은 이상과 가치에 부응하는 교육이 지난 15년간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을 바로 세우는 변화다. 그 변화를 향한 교수들과 학생들의 적극적 이니셔티브와 상호작용이 긴요하다. 기초법학도 전문법학도 모두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이번 학술대회의 통렬한 자체 비판이 변화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판례와 교과서를 단순 암기하는 방식에 치우친 기능적 교육은 이제 로스쿨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세계법제사를 공부하고 법철학을 연구함으로써 역사와 인류의 미래를 보는 안목과 통찰력, 생각하는 힘을 길렀을 때 후일 법조계를 넘어 과학기술계를 이끄는 지도자로도 성장할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더 강점이 있을 기능적 법률지식을 보유한 법률가의 역할은 점점 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6급 주무관으로 채용되기 위해 수십대 일 자체 경쟁을 해야 한다는 로스쿨 졸업생들의 현실은 당초 지향했던 로스쿨 설립 취지와 목적에 2% 부족하다.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가 그러하듯 로스쿨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 인류 복리(human welfare) 증진에 이바지하는 높은 이상을 품어야 한다. 전문성 연마와 함께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실현할 수 있는 각계 리더로 성장하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 로스쿨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로스쿨이 변화해야 한다.

 

아울러 로스쿨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센티브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정치경제학자이며 노벨상을 수상했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제임스 뷰캐넌 3인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은 인센티브 문제다. 인센티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스쿨 교육 문제의 소재를 규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제도변화에 나서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동안 로스쿨이 본질상 덜 중요한 다른 목적을 추구하게 하는 유인(예: 판례 암기 위주의 기능적 시험 준비에 안주)이 있었을 수 있기에 이를 교정하는 제도변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귤이 회수를 건너도 귤이 될 수 있도록 물과 토질을 바꾸어야 할 때다.


 

▲ 조홍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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