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AI 거품론 속에 심화하는 기술 주도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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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kpinews.kr | 2025-12-04 10:31:14

인공지능(AI)이 글로벌 증시의 성장 엔진에서 이제는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월가와 국내 증시 모두에서 'AI 버블(거품)' 논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빅테크 주가가 일제히 조정을 받으며 시장 변동성도 급격히 커진 상태다. 이는 주로 오픈AI, 알파벳, 메타 등 빅테크의 AI 비즈니스가 엄청난 인프라 투자에 치여 실제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재무 분석에서 비롯됐다.

첫 신호는 미국 증권시장에서 나왔다. 11월 들어 미국 증시는 여러 차례 'AI 삼각파도'를 맞았다. 11월 초에는 AI 고평가 우려가 불거지며 글로벌 증시에서 약 8000억 달러(약 1100조 원) 규모의 기술주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중순에 접어들자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대표적 AI 수혜주까지 동반 급락하면서 뉴욕증시 3대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은행과 자산운용사들은 1990년대 닷컴(인터넷) 버블을 상기하며 공포에 질린 차익 실현 포지션으로 전환했다. 그동안의 AI 주가 급등이 실물 이익이나 생산성 개선 대신 과도한 기대와 자금 쏠림에 의해 떠받쳐졌다는 비관 때문이다. 

 

▲ AI 기술 경쟁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공교롭게도 AI 거품론은 '돈을 너무 많이 쓰기'에서 출발한다. 미국 초대형 IT 기업들은 2024~2025년 AI 데이터센터에만 약 7500억 달러(약 1040조 원)를 투자했다. 문제는 이런 막대한 투자가 아직 대부분 '비용'으로만 보인다는 점이다. MIT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이 지난 몇 년간 집행한 300억~400억 달러 규모의 생성형 AI 프로젝트 가운데 95%는 실질적인 투자수익(ROI)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I 투자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만큼의 이익으로 돌아올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다. 거의 유일하게 AI GPU를 대량 공급하는 엔비디아만 이익 행진에 앞장설 뿐이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감기에 걸리는 한국 시장에도 2차 파도가 덮쳤다. 미국발 AI 조정장이 한국 증시에도 즉각 전이된 것이다. 11월 5일 코스피는 AI 버블 우려와 미국발 기술주 급락 여파로 3.9% 하락하며 'AI 충격'을 정면으로 맞았다. 뒤이은 11월 21일에는 코스피가 3.79% 빠지며 8년 만에 최대 외국인 순매도(금액 기준)를 기록했다. 코스닥의 피해는 더 컸다. 11월 19일 코스닥은 AI 버블 우려와 금리 인하 기대 약화가 겹치며 2.66% 급락했다.

그러나 한국·미국 시장 양쪽 모두 '거품론은 과장'이라는 반론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닷컴 버블과 달리 해당 기업들에서 매출과 이익이 나오기 시작했고, AI 인프라 투자 역시 미래를 위한 기초공사라고 옹호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오히려 저가매수의 기회라는 부추김까지 있을 정도다. 해외에서도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의 빅테크는 이미 수백억 달러 단위의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다"며 "과열은 맞지만 '거품'이라 부르긴 이르다"고 반박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시장을 주도하는 빅테크 업체는 선제적인 기술개발과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3년 전 오픈AI의 챗GPT에 첫 일격을 당하며 주가가 폭락했던 구글은 얼마 전 출시한 제미나이 3.0 AI 신모델의 호평에 힘입어 기업가치가 갑자기 5%가량 올라갔다. 더구나 이 모델 개발에 엔비디아의 GPU 대신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인 텐서처리장치(TPU)가 사용됐다. 최신 블랙웰 GPU보다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이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싸고 맞춤형이라 성능도 우수하다. 구글은 AI 상용화에 필요한 모든 구색(full stack)을 갖춰 인터넷 세상에 이어 AI 세상에서도 선두를 지킬 수 있을 전망이다. 자체 AI 칩으로 구축한 데이터센터, 구글 폰 및 아이웨어 등 하드웨어와 AI 모델, 클라우드, 웹브라우저, 콘텐츠 플랫폼 등 소프트웨어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AI 칩 독점 생태계에서 벗어나려는 반도체 자체 개발 붐은 다른 빅테크에서도 관찰된다. 오픈AI는 반도체 주문생산 기업 브로드콤과 손잡고 내년 말쯤 전용 AI 칩을 개발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아마존 역시 자체 칩을 일부 개발했거나 확대할 방침이다. 중국도 화웨이를 필두로 기술자립에 나섰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두나무와 합병해 20조 원 규모의 초대형 디지털 금융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국내 간편 결제 1위 업체와 가상자산 1위 거래소가 합쳐서 미래 핀테크 시장을 선점하려 나선 모양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버블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 어떤 포지션을 가져가야 할까"이다. 국가의 성장전략과 기업의 설비투자는 속도와 양의 경쟁이다. 미국과 한국 증시는 AI를 둘러싼 현실과 과장, 성장과 탐욕의 경계선을 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AI 거품 논쟁이 끝나는 날이 곧 AI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진짜 승자만 살아남는, 더 냉혹한 2막이 오르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 노성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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